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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기자의 영화 속 그곳영화 <최악의 하루> 촬영지를 가다

가끔 영화 속 배경은 잔상이 오래 남는 경우가 있다. 그 곳은 주인공들의 이야기가 담긴 장소일수도 있고, 실제로 지나가다 한 번이라도 봤을 법한 장소일 수도 있고, 소중한 사람과 함께 가보고 싶은 곳일 수도 있다. 하나의 씬이 담기는 장소는 그 나름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SF 영화나 세트장 촬영이 주가 된 영화들은 그 모습을 제대로 만나보기 힘들지만, 일상의 소소한 이야기를 담은 영화들은 언제 가더라도 그 모습이 남아있다. 내가 좋아하는 영화 혹은 드라마의 주인공들이 있던 그 곳에서 나만의 이야기를 써보는 것은 어떨까. 영화 속 이야기와 영화 촬영지 촬영법을 소개한다.

글•사진  유진천 기자

 

<최악의 하루>를 따라간 하루

장소가 명확한 영화가 필요했다. 무조건 한국영화. 서울 근교에서 촬영된 영화여야 했고, 가급적이면 고집스럽게 특정 장소에서 오래 머문 영화였으면 했다. 그래서 찾아낸 작품은 2016년 8월에 개봉한 <최악의 하루>. 로케이션이 주로 서촌과 종로 일대, 남산 근처를 배경으로 하고 있고 그 사이의 거리가 아주 멀지는 않은 편이었다. 이 영화는 김종관 감독이 연출을 맡았고 한예리, 이와세료, 권율, 이희준 등의 배우가 출연했다. 이와세료가 맡은 ‘료헤이’와 한예리가 연기한 ‘은희’의 하루를 차근차근 따라가는 영화였기 때문에 촬영 컨셉을 잡기에도 수월했다.

영화의 도입부, 은희의 하루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낮 시간을 담은 서촌에서 촬영을 시작해 오후에는 남산 일대를 담았다. 여건상 영화의 결말부인 야간 남산 장면을 담지 못한 게 아쉬움으로 남는다.

 

장면 속에 답이 있다 | ‘길 찾기 요령’

은희는 남자친구를 만나러 서촌에서 출발해 남산으로 향해 가던 중 길을 잃은 일본인 료헤이를도와 갤러리 류가헌까지 동행한다. 오픈 시간이 되지 않은 탓에 인근 카페에서 잠깐 같이 있어주기도 한다. 여정의 시작은 이 장면부터였다. 본격적인 촬영에 앞서 장소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했다. 서촌과 남산 일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정확히 어디에서 어떤 장면을 찍었는지 알아 내기란 쉽지 않았다.

류가헌 갤러리를 찾아갔으나 보수 공사가 진행 중이라 영화 속 모습은 담기가 어려웠다. 아쉬운 대로 인근 풍경을 함께 담았다.

 영화를 보면서 찍고 싶은 장면을 미리 스크린 샷으로 담아 큰 지도 위에 표시해 놓고 인근을 걸었다. 걷다 보니 생각보다 많은 힌트들이 영화 속에 있었음을 발견했다. 예를 들어 은희가 연기수업을 마치고 나와 료헤이를 마주치고 길을 안내해 줄 때는 근처 집에 붙은 도로명 표지판이 살짝 보인다. 그리고 둘이 찾아가는 '류가헌' 은 네이버 지도에 검색하면 나오는 장소다. 남산 산책길은 비슷한 곳이 많아 찾는 게 어렵지 않을까 걱정됐다. 다행히 영화 속 케이블카가 보여 산책로 초입부라는 것을 금새 알아챘다. 은희가 트위터에 사진과 함께 글을 올리던 벤치는 주변의 큰 나무들이 그대로 남아있어 단번에 찾아냈다.  이렇게 소소하지만 친절한 힌트를 통해 어렵지 않게 영화속 장소를 찾을 수 있었다.

SNS에 풍경 사진을 올리는 은희, 그리고 그녀가 앉은 벤치가 보인다. 우측에 큰 나무와 좌측의 펜스가 있는 것을 힌트로 장소를 찾아냈다. 그러고 보면 이 사진을 보고 찾아왔던 전남친의 능력이 대단하다.

 변수도 있었다. '류가헌' 인근은 보수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어서 영화 속 장면을 재현하기가 어려웠고, 남자 주인공 료헤이가 책 발간기념 행사를 위해 출판사 직원을 만난 대로변 건물 역시 리모델링 작업이 한창이었다. 팔레드 서울의 테라스 역시 겨울 탓인지 인적이 드문 휴식공간으로 바뀌어 있었다. 남산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푸른색의 나뭇잎이 무성하던 영화 속 모습과는 달리 아직까지는 앙상하고 마른 가지뿐이라 조금 다른 느낌의 사진이 나왔다. 그래도 카메라 한 대만 메고 찾아가면 영화 속 이야기를 자신만의 시각으로 풀 수 있다.

갤러리와 카페를 운영하는 ‘팔레드 서울’의 테라스. 취재 온 기자와의 인터뷰를 진행하는 료헤이의 모습이 담겨있는 씬이다. 주변 조형물이 없고 식물들이 없어 분위기는 사뭇 달랐다. 현재는 직원 쉼터로 쓰이고 있다고.

 

주인공이 되어보자 | ‘따라 찍기’

영화 촬영지에서 할 수 있는 가장 쉬운 촬영 방법은 영화 속 모습을 그대로 재현하는 것이다. 료헤이의 씬은 혼자 움직이는 씬이 많아 촬영하기가 수월했다. 길거리를 헤매는 모습이나 카페에 홀로 앉아있는 모습, 우두커니 무언가 생각하는 모습들이 담긴 장면은 혼자 촬영하는데 별 어려움이 없었다. 초행길이었던 터라 길을 많이 헤맸다. 덕분에 길을 찾지 못하고 골목을 빙빙 도는 료헤이의 마음으로 촬영을 진행할 수 있었다.

길을 잃고 지도를 보고 있는 료헤이와스마트폰을 하고 있는 은희. 낯선 두 사람의 첫만남을 다중노출 촬영으로 담았다.

 은희의 씬은 이전에 만났던 남자 운철(이희준), 지금 만나고 있는 남자 현오(권율), 우연히 만난 남자 료헤이(이와세료)등 세 남자와 만남이 계속 이어지기 때문에 혼자서 두 명 분을 감당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서 간단한 합성과 다중노출 기능을 이용해 촬영했다.

 

다르게 찍어보는 나만의 영화

촬영지가 생활 공간 가까이에 있다 보니 영화 속 모습과 똑같은 장면을 재현하기엔 어려움이 있어서 새로운 방법을 모색해야 했다. 료헤이와 은희가 처음 만나는 씬이 인상적이어서 그 장면을 따라 찍으려 했지만 그 장소를 찾지 못해 비슷한 곳에서 촬영 구도를 살짝 바꿔 담아보았다. 남산 산책로 중에서도 비슷한 장면들을 그대로 담기 보다는 넓고 한적한 장면으로 담아보았다. 영화 촬영지 출사는 사실 어려울 게 없다. 좋아하는 영화를 따라 걸으며 찍다보면 어느새 나만의 영화가 완성된다.

남자친구와 싸우고 내려와 혼자 시간을 보내고 있는 은희에게 접근하는 전남친. SNS에 올린 사진을 보고 찾아왔다고 말한다. 이 장면에서는 건너편에 있는 푸른색 건물들을 힌트로 찾았다. 정확한 위치는 아니었던 것 같지만 비슷한 느낌의 컷으로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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