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백 사진>하면 노랗게 색이 바란 오래된 사진이 떠오릅니다. 먼지가 소복이 쌓인 앨범을 열고 아버지 어린 시절이 담긴 흑백사진을 들여다봅니다. 아련하고 정겹습니다. 캐미있는 사진 생활 백서, 이번 달은 흑백사진입니다.

글•사진 | 조주현 기자

 

빛은 밝고 어두움을 결정하는 데 그치지 않습니다. 이미지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합니다. 이해를 돕기 위한 사진을 준비했습니다. 태양의 고도가 낮은 해질 녁 촬영한 사진입니다. 심심한 화면구성입니다. 하지만 빛이 화면 일부에 작용하면서 사진에 힘을 더합니다.

 

흑백 사진, 이것만 알아도 절반은 성공.

몇 해 전 여행 사진작가의 사진수업에 다녀온 일이 생각납니다.
작가는 “사진은 빛으로 그리는 그림이다.” Photography 어원을 언급하며 빛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또 빛을 보는 눈을 가져야한다고도 말합니다. 그런데 강의에 참석한 사람들은 빛을 본다는 것이 도대체 어떤 의미인지 도통 모르겠다는 표정입니다. 듣는 기자에게도 그건 연금술사의 돌처럼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아득히 먼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과연 빛을 보는 눈은 무엇일까요? 고민만 하셔도 절반은 성공입니다. 기자도 열심히 공부하고 있습니다.

 

 

색이 빠진 세상

색이 사라진 세상을 상상해보셨나요? 비 갠 뒤 하늘 저편에 흑백 무지개가 떠오릅니다. 흑백 무지개는 밝기가 다른 회색 띠로 표현될 것입니다. 농도가 다른 회색이 무지개의 빨주노초파남보를 대신합니다. 단색 드로잉을 배운 분들은 아마 흑백 사진을 한 번도 찍어보지 않아도 흑백사진에 일가견이 있다고 자부하셔도 될 것 입니다. 오직 명도로만 색을 볼 수 있는 능력이 화가들에게는 있습니다. 이게 왜 중요하냐고요? 디지털 흑백 사진은 색상이 어떻게 흑백으로 전환될지 예측하는 것이 관건입니다. 인간의 육안과 달리 카메라는 색을 구별할 수 없습니다. 오직 18% 반사율을 갖은 회색을 기준으로 노출을 결정하지요. 촬영 시 색을 흑백으로 볼 수 있다면 카메라의 눈을 갖게 됩니다. 모든 색상이 명도에 따라 배열할 수 있는 전지전능한 능력을 얻게 되는 것이지요.

 

세상에서 색이 빠지면, 싱그러운 빨간 장미는 칙칙한 회색 장미가 됩니다.
세상에서 색이 빠지면, 싱그러운 빨간 장미는 칙칙한 회색 장미가 됩니다.

 

콘트라스트를 결정하자

흑백사진은 콘트라스트에 따라 다양한 표현이 가능합니다. 컬러사진과 달리 오직 명암만으로 표현되는 흑백 사진에서 콘트라스트는 절대적입니다. 동일한 사진이라도 콘트라스트에 따라 주제가 달라질 정도입니다. 콘트라스트가 약한 사진은 부드러운 표현과 회색조의 잔잔함을 즐기는 묘미가 있습니다. 안개 낀 한강공원을 걷는 느낌이랄까요? 반대로 콘트라스트가 강한 사진은 강한 표현과 흑백의 대조가 두드러집니다. 거친 표현이나 세부묘사가 필요한 사진에는 강한 콘트라스트의 사진이 효과적입니다.

콘트라스트는 선택의 문제입니다
콘트라스트는 선택의 문제입니다

 

 

미래를 내다보는 촬영

흡백 사진은 촬영부터 보정에 이르는 모든 작업 과정이 명확한 방향을 갖고 진행돼야 합니다. 만약 인화지에 프린트를 한다면 그 과정까지 포함됩니다. 만약 하늘을 나는 갈매기를 찍는다면, 릴리즈 버튼을 누르기 전에 인화지에 표현될 갈매기 사진을 그려낼 수 있어야하지요. 갈매기가 아닌 갈매기 사진을 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안셀 아담스가 말한 ‘예측’입니다.

일부 카메라의 경우 흑백 사진 모드를 포함합니다. 물론 후보정 과정을 거치지 않고 흑백 사진을 바로 얻을 수 있다는 점은 편리한 기능입니다. 하지만 디지털 흑백 사진은 컬러로 촬영하는 것이 좋습니다. 몇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1. 후보정 과정의 유연성이 떨어집니다. 포토샵은 색을 특정해 보정할 수 있는 기능을 포함합니다. 따라서 컬러사진을 찍어 흑백으로 전환할 경우 톤을 변화시킬 수 있는 폭이 비교적 넓어집니다.

2. 흑백사진 모드로 촬영한 사진은 JPEG 파일로 저장됩니다. JPEG 파일은 압축 파일이지요. 포함하고 있는 데이터 정도가 작습니다. 카메라의 DR(다이내믹 레인지) 전체를 사용하려면 아무래도 RAW 파일이 좋습니다. 필름 시절에는 이를 관용도라고 불렀습니다.

3. 컬러사진을 흑백사진으로 변환하는 과정에서 흑백으로 보는 연습을 할 수 있습니다. 촬영을 백번하는 것보다 컬러사진을 흑백으로 변환하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이 도움이 됩니다.

 

하이키& 로우키

촬영에 조금만 주의를 기울인다면 단 한 장의 하이키와 로우키 사진을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하이키는 사진에 밝은 부분이 주를 이루는 사진을 말합니다. 로우키는 반대겠지요. 사실 흑백 사진을 만드는 과정에서 카메라의 역할은 미미합니다. 하지만 다이내믹레인지가 넓은 카메라를 사용하는 것을 마다할 이유는 없습니다. 기자는 EOS M6를 사용했습니다. 캐논의 최신 이미지 프로세서 DIGIC 7이 탑재돼, 다이내믹레인지가 비교적 넓은 편이며 자동 밝기 최적화 기능으로 노출차가 큰 장면도 놓치지 않고 잡아냅니다.

하이키(High Key)
하이키(High Key)
로우키(LOW Key)
로우키(LOW Key)
메뉴 화면
메뉴 화면

 

흑백 사진을 힘있게 만드는 방법

고인돌과 하늘의 명암대비
고인돌과 하늘의 명암대비
인삼 밭의 반복적인 패턴
인삼 밭의 반복적인 패턴

피사체와 배경의 명암 대비가 클수록 힘있는 사진입니다. 피사체의 톤이 어두우면 배경은 밝게, 반대로 피사체의 톤이 밝으면 배경은 어두운 톤이 효과적입니다. 반복적인 패턴을 사용하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사진의 디자인적 요소가 가미되면 화면 내에 긴장감이 조성됩니다.

 

픽쳐 스타일

흑백 사진의 맛은 세밀한 묘사에 있습니다. 손에 잡힐 듯 까칠까칠한 디테일이 흑백 사진에 맛을 더합니다. 컬러 사진에서 색에 묻혀 강조되지 않았던 디테일이 흑백 사진에서는 힘을 얻습니다.

메뉴 화면
메뉴 화면

EOS M6 픽쳐 스타일 이용하면 세세한 디테일이 강화됩니다. 픽쳐 스타일 모드를 ‘상세’로 변경하거나 세부설정을 통해 조절을 통해 사진에 맞는 설정을 찾아나가는 과정이 요구됩니다.

 

진짜 적정노출을 찾아서

적정노출의 진정한 의미는 촬영자가 의도한 사진의 밝기입니다. 여기서 가장 의미심장한 단어는  <의도한>입니다. 적정노출은 카메라가 지시한 표준노출과는 조금 다른 개념이죠. 이를테면 실내에서 창밖을 촬영할 경우 촬영자가 의도에 따라 적정노출은 달라집니다. 실내를 중점적으로 담기 위해선 과감히 창밖 풍경은 포기해야 합니다. 반대로 창밖을 담으려면 실내를 보여주는 것을 포기해야합니다. 물론 최근엔 HDR 기능이 탑재돼 다이내믹 레인지를 높일 수 있는 길이 열렸지만 인위적인 느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습니다. 노출계가 지시한 노출에 촬영자의 의도한 만큼의 보정치를 반영하는 방식으로 촬영하는 것이 좋습니다.

 

디지털 암실 시대

디지털 흑백사진은 후보정 과정이 결정적인 역할을 합니다. 흑백 필름으로 촬영하는 사진 역시 마찬가지 입니다. 기본적인 데이터를 잡는데 짧게는 수 개월 길게는 평생이 걸리는 작업이 아날로그 흑백 사진입니다. 미세한 변화에도 민감하게 반응합니다. 약품의 종류, 필름의 종류, 희석액의 온도, 교반 정도와 속도, 암실의 습도와 물의 산성도와 공기포화도에 이르기까지 데이터를 확보하기까지 사진가는 인고의 시간을 견뎌내야 합니다. 하지만 디지털 카메라 덕분에 흑백 사진은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영역으로 몸을 낮췄습니다.

 

마치며

EOS M6는 흑백사진을 위한 다양한 옵션을 갖추고 있는 카메라입니다. 자동 밝기 최적화기능과 하이라이트 톤 우선 기능을 지원해 노출 차이가 큰 화면도 문제없이 잡아냅니다. DIGIC 7이 탑재돼, 다이내믹레인지가 확대되면서 풍부한 흑백사진을 만들 수 있는 가능성 역시 늘어났습니다. 특히 하이라이트를 표현하는 능력이 인상적입니다. 무엇이든 표현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카메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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