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토 디렉터 아놀드 박은 브룩스 대학원에서 사진을 전공했다. 한국에 돌아온 그는 렉서스 광고를 시작으로 다양한 자동차 광고를 작업하고 있다. <기아자동차 스팅어>, <르노 삼성 QM6>, <현대자동차 EQ900> 등 다수의 회사에서 캠페인을 진행했다. 지난 2015년 현대차 브릴리언트메모리즈 전시회에도 참여해 작업 결과물을 선보였다. 현재 그는 국내뿐만 아니라 전세계의 클라이언트를 대상으로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인터뷰 진행 | 이준식 교수(신구대학교) / 편집•교정 | 김묘진 기자 / 사진 | 이상민 기자

 

 

한국에서 대학을 다니실 때는 중어중문을 전공하셨어요. 그 때의 전공과 달리 미국에서 사진을 전공하셨고 현재까지도 사진일을 하고 계신데 특별한 계기가 있을까요?

군에서 전역한 이후에 새롭게 시작하고 싶다는 맘이 강했어요. 우선은 영어를 배워야 겠다는 생각에 미국에 있는 대학교에 들어가 영어를 배웠어요. 처음부터 사진을 배워야겠다는 생각으로 미국으로 간 건 아니었죠. 막상 갔는데 어떤 것을 전공해야 할지 몰라서 고민하던 시기에 어머니가 사진을 배워보는 건 어떻겠냐는 제안을 하셨어요. 거부감 없이 선택했던 것 같아요. 그 때부터 대학교에서 사진 수업을 듣기 시작했어요. 이후엔 사진과 영상만 전문적으로 가르치는 브룩스 사진대학을 알게 됐고 ‘꼭 이곳에서 사진을 배워야겠다’는 마음이 들었죠. 지원할 때는 어떤 학교인지 잘 몰랐는데 입학하고 생활하다 보니 굉장히 유명한 학교란 걸 깨달았었죠.

 

고민하던 작가님에게 어머니께서 사진을 추천 하셨던 이유가 있을까요?

사실 저희 아버지 취미가 사진이었어요. 집에 암실까지 만드셔서 현상, 인화까지 직접 하셨어요. 카메라수집도 굉장히 많이 하셨죠. 집에 500대가 넘는 카메라가 있었어요. 취미 치곤 꽤나 스케일이 컸죠. 어머니도 아버지의 영향을 받으셨는지 사회교육원에서 사진을 배우셨어요. 시간이 조금 흐른 뒤에는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온팍스’라는 종합현상소를 차려주시기도 했어요. 슬라이드, 네거티브, 흑백 현상과 인화를 하는 꽤나 큰 곳이었죠. 현상소에는 스튜디오도 붙어있었어요. 아마 먼저 사진을 시작하신 부모님이 사진 일에 대해 만족감이 크셨던 것 같아요. 그래서 저에게도 사진일을 제안하시지 않았을까요. 

 

 

유학시절, 학교생활과 공부는 어떻게 하셨나요?

학교에서 패션사진과 광고사진을 전공했어요. 그 때만 해도 제가 패션 포토그래퍼가 될 줄 알았어요. 하지만 필드에서 진행하게 될 일이 꼭 패션사진이라는 법은 없잖아요. 실제로 작업을 시작하게 되면 무슨 일이 들어올지 모른다는 생각을 했죠.

학교 생활과 일을 병행하면서 제품, 건축, 음식, 웨딩 등 다양한 분야의 사진을 많이 찍고 또 배웠어요. 그 때 경험했던 크고 작은 일들이 지금 사진일을 하는데 재산이 된 것 같아요.

 

한국에서 일을 하기로 결심한 계기가 있을까요?

미국에서 스튜디오 643을 운영할 때 글로벌기업들의 작업을 많이 진행해 봤어요. 아시안 마켓 광고들까지는 다 해봤죠. 그런데 어느 순간 한계가 느껴지더라고요. 주류에 속하는 일을 다 의뢰 받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죠. 미국사회에서 메인 스트림의 일을 맡기란 정말 힘들었습니다. 간혹 큰 일이 들어오는 경우는 대부분 회사의 대표가 동양인인 곳이었죠. 알게 모르게 사진업계에도 보이지 않는 차별이 있다는 것을 느꼈어요. 내 나라에서 당당히 메인의 일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에 한국으로 들어오게 됐어요.

 

 

작가님이 하신 작업 중에 자동차 광고가 가장 많은 것 같아요. 주로 자동차 사진을 하려고 계획하셨었나요? 아니면 특별한 동기가 있었나요?

처음부터 자동차 사진을 주로 찍어야겠다고 결심했던 건 아니었어요. 신기한 게, 미국에서 사진을 배울 땐 한 번도 자동차를 촬영한 적이 없었거든요. 자동차 촬영을 시작하게 된 건 에피소드가 있어요. 제가 한국으로 돌아오던 시기에 한국에 있는 친구 중 하나가 유명한 회사의 아트디렉터로 일하고 있었어요. 친구에게 귀국했다는 소식을 전했죠. 소식을 들은 친구가 포트폴리오를 가지고 오라고 하더군요. 그 당시 친구가 일하던 회사에서 진행하려던 캠페인이 있어서 이미 국내외 작가들의 포트폴리오가 빼곡히 쌓인 상황에서 제 포트폴리오도 추가가 됐어요. 어떻게 될 지 모르는 상황이었는데 제 포트폴리오의 사진 중 영화 스틸 사진을 보고는 작업을 제안했어요. 그 사진의 느낌이 캠페인에서 원하는 컨셉과 일치했던 거죠. 그렇게 맡게 된 광고가 렉서스 광고였어요.

 

촬영하실 때 남다른 느낌이 있었을 것 같아요.

그 광고를 촬영할 때 페이를 한 푼도 남기지 않고 제작비로 다 써버리자  생각했어요. 높은 퀄리티의 사진을 만들고 싶었거든요. 로케이션  촬영으로 진행됐는데 캐노피에 저의 로고 새겨 넣었고, CF 조명팀과 살수차도 불렀어요. 스텝도 거의 30명이 넘는 큰 규모의 촬영이었어요.

촬영한 사진의 리터칭도 미국에서 가장 잘 나가는 스튜디오에 맡겼죠. 결과물을 컨펌 받는 자리에서의 일화도 생각이 나요. 함께 완성된 시안을 보는 자리를 가졌는데 이 현장을 우연히 그 회사 회장이 보게 됐다고 해요. 회장님이 하신 코멘트는 후에 전해 들었죠. 제 사진을 보고 서는 ‘이게 바로 아트지’ 라고 말을 남기셨대요. 긍정적인 평가 덕에 그 이후로도 촬영을 계속하게 됐죠.

 

Renault Samsung QM6 Key visual
Renault Samsung QM6 Key visual

 

특별히 자동차만을 공부한 것이 아니었는데 기회를 잘 캐치하셨군요.

가끔 광고주들이 저에게 자동차 촬영을 가르쳐 준 사수가 누구냐고 물어보는 경우가 있어요. 저는 따로 사수가 없어요. 자동차 작업과 관련해서는 해외에 유명한 자동차 사진작가들의 작업을 많이 찾아보고 있어요. 자동차 사진은 딱히 배울 만한 곳이 없거든요. 이외에도 작업에 필요한 영감은 수많은 사진이나 그림, 영화 등에서 얻는 경우가 많아요. 이렇게 공부한 덕에 남들과 다른 독창적인 작업을 할 수 있게 된 것 같아요. 그 동안 한국에서 볼 수 없었던 사진을 보여주겠다는 사명감을 갖고 촬영에 임하고 있어요. 처음 한국에 들어왔을 때는 국내에서 만나보지 못한 이미지들을 만들려고 스케일에만 집중했었어요. 시간이 조금 지나고 나서는 자동차 사진에서도 ‘사람 냄새’가 나게 찍고 싶었고요. 제가 찍은 사진엔 항상 저마다의 스토리가 있어요. 그냥 자동차만 찍는 경우는 없어요. 대부분 이야기를 가지고 있는 인물이 꼭 들어가는 편이에요.

 

운영하고 있는 스튜디오 643은 어떤 뜻을 가지고 있나요.

조금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요. 2006년에 처음으로 미국에서 동기랑 작업실을 열었어요. 원래는 제 이름을 걸고 오픈하려고 했는데 현지법 상 유학생인 저는 제 이름을 걸고 상호를 낼 수가 없었어요. 어쩔 수 없이 다른 식의 네이밍을 하게 됐죠. LA 다운타운과 한인타운 가운데 있는 643번지에 위치한 스튜디오라 이름을 그렇게 지었어요.

 

GQ Magazine '4월은 잔인하오'
GQ Magazine '4월은 잔인하오'

 

국내로 들어와 작업할 때 느끼셨던 어려움이 있다면 어떤 게 있을까요

처음 국내에 들어와 일할 때 스타일의 차이 때문에 많이 어려웠어요. 국내 대행사나 광고주들이 원하는 사진 스타일이 미국에서 작업하던 것과는 달랐죠. 일하는 과정도 달랐고요. 처음엔 한국 사람들의 사진취향에 맞춰야 되나 고민도 많이 했습니다. 이런 고민들로 힘들게 보내던 시기에 주변 분들이 꼭 한국 스타일에 맞출 필요는 없다며, 자신만의 색깔을 살려야 한다 조언을 해주셨어요. 그 말을 믿고 저만의 색깔을 살리려고 노력했죠.

 

사진 작업을 하면서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들려주세요.

아무래도 광고사진만 작업하다 보면 한계가 있어요. 이름을 알리는 것도 한계에 부딪히게 되죠. 그래서 생각한 것이 작업물을 리플렛 형태로 만들어서 잡지사에 전달해 보자는 거였어요. 어느 날 밤늦게 ‘GQ’에서 연락이 오더군요. 아홉 명의 포토그래퍼가 아홉 대의 자동차를 자신만의 컨셉으로 찍는 작업을 진행해 줬으면 하는 의뢰였죠. 이후 GQ 의뢰인이 제 사진을 제일 맘에 들어 하셔서 그 다음달에도 제 사진만으로 아홉 페이지짜리 자동차 사진 화보를 진행할 수 있었습니다. 폐차장에서 촬영했던 작업인데 아직도 기억에 남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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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촬영을 진행하시다 보면 갑작스럽게 아이디어가 떠오르는 순간도 있을 것 같아요.

한창 의미 있는 작업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던 때가 있었어요. 편하게 친구랑 수다를 떠는 자리었는데 갑자기 한 가지 아이디어가 떠올랐어요. 친구에게 “자동차 영정사진 한 번 찍어볼까” 라는 말을 던졌었죠. '나의 차, 나의 동반자(My Car, My companion)'라는 컨셉을 기획하게 됐죠. 아이디어가 괜찮아서 한 회사에 진행을 물어봤는데 반응이 시원치 않더라고요. 시간이 좀 지난 이후 현대자동차 자문위원으로 들어갔는데, 이 아이디어를 말했더니 긍정적으로 반응을 해주시더군요. 마침내 '브릴리언트 메모리즈(Brilliant Memories)'라는 이름의 캠페인으로 실행할 수 있게 됐어요. 일반인들의 사연을 공모 받아 진행했죠. 사연 응모자와 그들의 자동차를 주인공으로 이야기를 풀어냈어요. 저마다의 사연이 가득한 작업이었죠. 그때 1만 8천여명이 응모를 했을 정도로 꽤 이슈가 됐어요. 사진 뿐만 아니라 조형 등의 분야에서도 함께 진행해 2015년에 DDP에서 전시도 열었어요. 아이디어를 냈던 저에게도 참여자들에게도 의미가 있는 캠페인이었죠.

 

작가님이 전해주고 싶은 사진 잘 찍는 노하우가 있다면

일반적으로 많이 찍으면 잘 찍을 수 있다고 말하죠. 근데 저는 많이 찍는 것만큼 많이 봐야 된다고 생각해요. 보는 눈이 좋아야 잘 찍을 수 있거든요. 가끔 저한테 어떻게 하면 사진을 잘 찍을 수 있냐고 물어보는 학생들이 있어요. 그럴 때면 저는 학생들에게 “너희 어머니 요리 잘하시니?”라고 물어봐요. 그 때 어머니가 요리를 잘한다고 하면 “너도 요리 잘하겠다.” 라고 대답해주죠. 맛있는 음식을 많이 먹어 본 사람이 맛있는 요리를 할 수 있는 것과 같아요. 좋은 사진을 많이 봐야 좋은 사진을 찍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촬영에 쓰시는 장비들은 어떤 것이 있나요

캐논 EOS-1ds Mark 3와 페이즈원 IQ 260을 사용하고 있어요. 거의 주된 촬영은 페이즈원으로 진행하고 있고, 기동성이 필요한 촬영에 경우에는 캐논 카메라를 쓰고 있어요. 페이즈원 IQ 260은 이미지 센서가 커서 해상도가 굉장히 좋아요. 하지만 무겁고 진동도 커서 많이 흔들린다는 단점이 있어요. 자동차 촬영을 할 때는 여기에 55m 렌즈를 장착해서 촬영하는 편이에요. 55m 렌즈는 보편적인 화각을 갖고 있으면서 왜곡이 과하지 않은 것이 장점이죠.

 

자동차 사진을 특별히 좋아하는 이유라도 있나요

남들이 쉽게 접할 수 없는 분야라서 그런 것 같아요. 자동차는 계속해서 나오고 있고 되게 큰 시장이잖아요. 또 외국에서도 사진으로 저를 어필하기에 딱 좋은 분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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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고사진가를 꿈꾸는 학생들에게 조언 한마디 해주세요.

DSLR 카메라가 대중화 되면서 전문가들의 시장이 많이 줄어든 것은 사실이에요. 하지만 사진은 절대 없어지지 않아요. 어떤 매체든 사진은 꼭 있죠. 자신만의 색깔이 있다면 ‘블루오션’을 개척할 수 있다고 봐요. 우선,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학교를 졸업하기 전에 꼭 현업의 일을 해봐야 해요. 본인이 어떤 사진을 찍고 싶은지 모르는 학생들이 굉장히 많아요. 계속 이미지를 찾아 보면서 보는 눈도 높여야 하고요.

 

이외에 전해주고 싶은 다른 이야기가 있다면

유학생 시절에 겪은 일화 하나가 있어요. 제 동기가 세계적으로 유명한 패션 포토그래퍼 스튜디오에 인턴으로 들어 갔어요. 그 스튜디오가 있는 지역이 굉장히 지저분한 곳이었죠. 다른 사람들은 더러운 모습을 보고도 아무런 미동이 없었는데 그 친구가 출근할 때마다 항상 그 주변의 쓰레기를 다 줍더라고요. 이런 모습을 스튜디오 관계자가 보게 됐고, 출근한 지 2주만에 정직원이 됐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지금까지도 아주 잘나가고 있어요. 일에 대한 본인의 태도가 중요한 것 같아요. 기회는 언제 어떻게 찾아올지 모르고요. 

 

 

작가님의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해요

활동 반경을 넓혀서 해외에도 이름을 알리기 위해 계속 노력하고 있어요. 외국은 에이전시가 있어야 일을 할 수 있어서 에이전시에 포트폴리오와 소개 글을 보내고 있어요. 외국 에이전시와 계약을 해서 북미와 유럽 쪽에도 작업할 수 있도록 점점 발을 넓혀갈 생각이에요. 물론 국내에서도 열심히 할거고요. 추가적으로는 외부에 세트장을 만들 계획을 갖고 있어요. 과거엔 넘버원이 되려고 노력했다면 앞으로는 온리원이 되기 위해 노력하려고 해요. 최고만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독창적인, 저밖에 할 수 없는 것들을 이뤄나가야겠죠. 앞으로도 저만의 색깔을 나타낼 수 있는 작업을 이어갈 생각이에요. 광고사진은 광고주들의 요청을 받아 만드는 만큼 한계가 있지만 여기에 저만의 색을 녹이는 작업을 꾸준히 이어나갈 예정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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