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한 번도 그 곳에 가본 적도 없었다.
어깨 위에 희미한 미열이 남아있다.
모르긴 몰라도 그 꿈은 적도의 영향권 아래 놓여 있었던 것이 분명했다.
다시 사무실 책상에 턱을 괴고 라틴 아메리카식 낮잠에 빠져들었다. 

적도의 태양이 뜨겁게 타올랐다.
얼기설기 자란 열대식물은 시퍼런 교태를 부렸고 열대성 호우는 대지를 축축하게 적셨다.
나는 비 오는 소리를 파인애플을 잔득 꿴 꼬치구이를 굽는 소리로 착각했다.
굳이 구별하고 싶지도 않았다.

“치이이익”

파인애플 굽는 냄새는 진하고 달다.
열대 지방을 통째로 커다란 솥에 집어넣은 후 설탕 한 봉지를 통째로 탁탁 털어 넣고
보글보글 끓이면 풍겨오는 냄새와 구운 파인애플 냄새는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나는 우거진 숲을 따라 걷고 걸었다. 그 달콤한 향기를 쫓아, 깊은 곳을 향해 걸었다.
더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는 게 더 현실적인 표현이겠지.

 

 

본격적인 여름 휴가철이다.
여름휴가는 낮잠 사이를 스르르 스미는 꿈이다. 한편으론 언제 깨어날지 몰라서,
굳이 깨고 싶지 않아서, 눈을 질끈 감고 싶어지는 순간도 있다.
해변으로 가자.
발가락 사이에 얄밉게 낀 모래알, 자동차 시트를 축축하게 적히는 젖은 엉덩이,
맥주 한잔을 벌컥 들이켜야 가시는 찜통더위도 사랑스러운 시간이 거기에 있다.
 
사진을 찍자. 언제 꿈에서 깨어날지 모르니까.
EOS 200D는 그러기에 참 좋은 카메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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