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non EF 50mm f/1.2L USM

떠올랐다. 바다. 어딘가 가고 싶다는 마음이 생기면 생각의 끝은 대부분 바다였다. 바다를 찾는 이유는 생각보다 간단하다. 마음이 동해서. 다만 가끔은 ‘이유 없음’을 동반할 때도 있다. ‘여름엔 바다’라고 정해 놓지 않았지만 무언가에 이끌리듯 그곳을 찾는다. 떠나기로 마음먹고 선 깊은 고민에 빠졌다. 최소한의 짐으로 떠날 방법이 있을까하고. 허기는 달래주지 않아도 이번 여행을 책임져 줄 만두 한 개를 챙겼다. 오이 만두라고 불리는 Canon EF 50mm f/1.2L USM이다. 장맛비가 이따금 내리는 여름날 강릉행 고속버스에 올랐다.
글•사진 | 김유미 기자

 

*모든 사진은 Canon EF 50mm f/1.2L USM으로 촬영됐습니다.
*모든 사진은 Canon EF 50mm f/1.2L USM으로 촬영됐습니다.

 

진한 여름 아래 바다가 이끄는 곳
강문해변

강릉과의 거리가 좁혀지고 있다. 고속버스 안의 공기는 이미 잔잔한 설렘으로 가득 찬 후였다. 창밖으로 새로운 풍경들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으면 가깝지 않게 느껴졌던 강릉에 도착한다. 그곳에 다다랐을 때 익숙한 향기가 뿜어 나온다. 시내버스로 갈아탄 지 약 20분 정도 지났을까 바다 냄새가 코끝을 가득 메운다. 하차할 곳이 나오기도 전 발걸음은 이미 그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몸이 이끄는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멀리 보이는 백사장을 따라 걷다 보니 그 끝에 강문해변이 있다. 탁 트인 바다가 온몸으로 느껴진다. 사람이 아주 많지도, 아주 적지도 않아 온전히 바다만을 마주할 수 있다. 태양에 비친 바다 표면에 반질반질 윤이 났다. 들어오라고 손짓이라도 하듯 투명함에 이끌려 물살에 발을 담근다. 시원하다. 그때 하늘에서 무언가 후두두 떨어진다. 얼굴에 닿았을 때 비로소 알았다. 비다. 전날 일기예보에서 들었던 오전 중 비가 내린다는 소식에 약속이라도 한 듯 장맛비가 제시간에 내린다. 비는 보통 여행 중 반갑지 않은 손님으로 불리는데 이날은 알 수 없는 분위기가 합쳐져 운치가 더해졌다. 우산을 바닥에 펴둔 채 이 정도는 괜찮다며 해변을 걸었다. 그로부터 꽤 긴 시간 그곳에 머물렀다. 적당한 요일, 적당한 시간, 튀지 않는 날씨. 그날을 둘러싼 해변의 모든 것이 알맞은 듯이 적당했다.

 

 

청록색의 푸른 공간
강문-송정 해변 솔숲길

강문해변에서 백사장을 통해 남쪽으로 이동하려던 찰나 200m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솔숲길이 눈에 띈다. 순간 발을 옮겼다. 가까이에서 보고 싶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다가가서 본 소나무 숲길의 첫인상은 청량했다. 들어선 순간 사방이 푸르렀다. 이곳을 초록색의 향연이라고 해도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꼿꼿하게 줄지어 늘어서 있는 소나무를 따라 걸었다. 시멘트 바닥을 걷다가 흙길을 걷는 기분이 꽤 낯설다. 낯섦도 잠시 솔숲길의 고요함이 밀려온다. 이 공간을 담기 위해 눈을 감고 귀로만 이곳을 느꼈다. 그 다음, 귀를 닫고 눈으로만 주변을 관찰했다. 마지막으로 두 눈을 감고 귀를 닫고 온 신경을 코끝에 집중했다. 솔향이 스며들었다. 동시에 비를 머금은 흙냄새와 깊고 짙은 솔잎 향기가 공간을 가득 메웠다. 강문해변에서 송정해변으로 이어지는 솔숲길은 약 4.1km 정도 계속됐다. 소나무 사이로 보이는 바닷가를 보며 걷다 보면 어느새 한 시간이 지난다. 그늘진 소나무 아래에 폭신한 흙침대에 솔방울들이 누워있다. 비를 맞은 소나무는 한층 더 청정한 소나무로 변했다. 반복되는 배경에 ‘길을 잃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 때 해변에 도착했다. 소나무의 마지막 모습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왠지 모를 평온함이 느껴진다.

 

 

원두를 머금은 마음의 거울
강릉커피거리

안목해변에 들어서자 카페들이 일렬로 늘어서 있다. 횟집보다 카페 수가 더 많다는 것이 어렴풋이 짐작됐다. 이 거리의 시작은 8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고 한다. 지금은 많이 없어진 커피자판기로 유명한 거리였다. 이후 2000년대 1세대 커피 문화를 이끈 바리스타들이 강릉에 정착하면서 커피의 메카로 자리매김했다. 커피 자판기가 카페로 모습을 바꾸고 현재 수많은 커피집이 생겨났다. 입구에서 50m 정도 걸었을까 주황색 간판이 눈에 띈다. 카페 문을 열고 들어서자 바로 정면에 커피를 만드는 바리스타들이 보인다. 한쪽엔 타르트와 케이크가 날 데려가라며 손짓한다. 기대를 머금고 2층에 올라섰다. 테라스 사이로 푸른 바다가 보인다. 역시나 오션뷰의 뜨거운 명성덕에 빈 자리 없이 가득 찼다. 계단 위에서 사람들이 내려온다. 위에도 자리가 있는 모양이다. 3층을 넘어서니 루프탑이 보인다. 남은 한자리에 앉아 커피를 입에 담고 바다를 눈에 담았다. 무엇 하나 부족함이 없는 순간이다. 꽤 오랜 시간 그날의 분위기가 잊히지 않는다.

 

주황색 간판이 눈길을 끄는 곳. ‘엘빈’은 커피뿐 아니라 타르트와 디저트로도 유명하다. 2층과 3층에 테라스가 있다. 루프탑에서 펼쳐지는 안목해변의 전경이 일품이다. 바다가 보이고 파도 소리가 들리는 곳. 바리스타가 만든 커피로 여름의 시원함을 느낄 수 있다 - 강원도 강릉시 창해로14번길 34-1
주황색 간판이 눈길을 끄는 곳. ‘엘빈’은 커피뿐 아니라 타르트와 디저트로도 유명하다. 2층과 3층에 테라스가 있다. 루프탑에서 펼쳐지는 안목해변의 전경이 일품이다. 바다가 보이고 파도 소리가 들리는 곳. 바리스타가 만든 커피로 여름의 시원함을 느낄 수 있다 - 강원도 강릉시 창해로14번길 34-1

 

더 가까운 바다를 보러 해변 앞에 섰다. 때마침 선선한 바람이 분다. 바다 앞에 가만히 긴 시간을 서 있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모두 이유는 달라도. 끝이 보이지 않는 수평선과 광활함에 한참을 넋 놓고 바라봤다. 모래를 중간 삼아 한 발짝 다가섰다. 에메랄드빛이 난다. 머무르고 싶다. 바다는 그날의 감정을 투영시켜주는 존재임이 분명하다. 슬플 땐 슬프게, 좋을 땐 더 좋게.

 

 

여행의 단상
등대 다시 강문

안목해변을 등지고 백사장을 나와 왼편으로 조금 가면 등대 입구가 나온다. 등대 가는 길목의 왼편에 바다가 보이고 오른편엔 강릉항이 있다. 일렬로 서있는 어선들 위에 갈매기가 날아다닌다. 옆에서 들리는 파도는 스스로 배경음악이 된다. 이곳의 방파제는 평소에 보던 크기보다 폭이 넓고 높이가 높다. 바다를 보다 보면 어느새 등대에 이른다. 빨간색으로 칠해진 등대와 푸른색 바다의 조합이 꽤 어울린다. 눈길을 사로잡는 것이 많아 돌아오는 길은 시간이 조금 더 걸렸다. 강문으로의 이동을 마지막으로 여행을 마무리했다.

계획 없이 떠나는 일, 때로는 몸이 이끄는 곳으로 가는 일, 유명 맛집 보다 알려지지 않은 식당에 가는 일, 그리고 낯선 곳에 익숙함을 느끼는 일. 단조로운 일상으로부터 잠시 작별했다. 사람마다 여행을 통해 얻는 것이 다르다. 일상에서의 일탈, 즐거움 또는 포만감. 다만, 이 모든 것이 어우러져 소실점에 이를 때 그 날의 순간이 사라지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Canon EF 50mm f/1.2L USM 

카메라 가방에 챙긴 여러 렌즈 중 꺼내지지 않을 렌즈를 생각할 때면 여간 슬픈 일이 아녔다. 최소한의 짐으로 떠나기 위해 가장 먼저 가벼움을 생각했다. 하나의 렌즈로 다양한 장면에 적합한 렌즈. 밝은 조리개 값으로 어두운 야외나 실내에서 삼각대 없이 안정적인 촬영을 할 수 있는 Canon EF 50mm f/1.2L USM을 선택했다. 얕은 피사계 심도로 배경 흐림을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어 여행 중 인물 사진에 적극적으로 사용됐다. 일상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50mm 화각으로 왜곡 없이 그대로를 담아내 자연스러운 장면을 촬영하기 좋았다. F1.2의 낮은 조리개 값은 빠른 셔터속도를 확보해 움직임이 빠른 피사체를 촬영하는데 빛을 발한다. 캐논의 5개 단초점 렌즈 중 유일한 L 렌즈, 오이 만두가 다양한 상황에서 최고의 결과물을 연출할 수 있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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