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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작가 김주원 인터뷰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기록하다

한 장면을 마주할 때면 뜻이 헤아려지는 사진이 있다. 피사체에 사진가가 녹아 있는 사진. 김주원 사진작가의 사진이 그렇다. 사진은 기계가 찍는 것이 아닌 사람이 찍는다고 이야기하는 사람. 사진을 대하는 그의 눈동자는 진솔한 눈빛으로 가득 차 있었다. 우연히 사용한 카메라를 계기로 현재 20년 넘게 사진과 함께하고 있는 그. 한국인 최초로 ‘소니 글로벌 이미징 앰버서더’에 선정돼 세계적인 주목을 받고 있는 김주원 사진작가를 만났다.

인터뷰 진행 | 김유미 기자 / 사진 | 이상민 기자 / 정리 | 유진천 기자

 

 

처음 사진을 해야겠다고 생각한 계기가 궁금합니다.

처음 사진을 시작한 것은 2000년도보다 조금 전이었어요. 지금부터 17년 전인 셈이네요. 실제로는 20년 가량 되는데 프로 사진가로 활동한 것은 15년 정도 됐네요. 그 당시는 아날로그 필름에서 디지털카메라로 넘어가는 시기였어요. 저도 필름카메라로 사진을 배웠고요. 어느 날 우연히 캐논의 익서스(IXUS)라는 똑딱이 카메라를 사용해 볼 계기가 있었어요. 외관이 예뻤거든요. 12개월 할부로 끊어서 산 다음에 매일매일 사진을 찍고 다녔죠. 사진을 찍는 게 너무 재미있는 거예요. 그 당시 SLR클럽이나, pc-speaker.com과 같은 온라인 커뮤니티 사이트가 유행했는데 사진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자신의 사진을 올리면서 서로의 의견을 나눌 수 있는 공간이었어요. pc-speaker.com은 스피커나 음향기기와 관련된 커뮤니티였는데 그곳에 종종 사진을 올리다 보니 반응이 좋더군요. 그 전까지는 꿈이 없었어요. 사진을 찍으면서 ‘아 사진을 하면 행복하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사진작가가 되겠다고 마음먹었죠.

 

직업적으로 사진을 찍기 시작한 건 언제부터였나요?

본격적으로 사진 일을 시작하기로 마음먹고 울산에 있는 베이비 스튜디오에 취직했어요. 그곳에서 진지하게 사진을 배우기 시작했죠. 아기를 웃기는 일이 상당히 힘들더라고요. 찍는 것보다 웃게 만드는 일이 더 힘들었어요. 거기서 제가 그동안 보지 못했던 부분들도 봤어요. 아기와 성인은 커뮤니케이션 자체가 어렵잖아요. 어떻게 커뮤니케이션을 해야 하는지, 사진 안에 관계를 엮어 가는 사람으로서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를 배웠어요. 활동성이 크지 않은 아이를 어떤 빛, 어떤 배경으로 찍어야 예쁘게 나오는지 공부를 많이 하게 됐죠. 국내에서 촬영한 사진뿐만 아니라 외국에서 찍은 사진들까지 다양하게 참고를 했던 것 같아요.

 

 

포토샵에 관한 책도 쓰신 것으로 알고 있어요.

울산에 있는 스튜디오에서는 처음에 필름카메라를 쓰다가 1Ds라는 카메라를 도입해서 사용했어요. 그 당시에는 천만 원이 넘는 가격을 가진 카메라였죠. 국내에 그런 기종을 가진 스튜디오가 거의 없었죠. 그 스튜디오 사장님이 현상소에서 오래 근무를 하신 분이어서 디지털 카메라의 결과물을 어떻게 하면 필름처럼 만들어 낼지 고민을 많이 하신 분이었어요. 저를 앉혀놓고서는 이걸 이렇게 저렇게 해볼 수 있겠냐 매번 물어보셨어요. 당시 사람들의 눈은 필름카메라에 익숙해져 있어서 디지털카메라의 결과물은 이질감을 느끼던 시기였거든요. 그때부터 포토샵을 공부하기 시작했어요. 색감을 보정하는 법이라든지, 인물이 가진 느낌을 살리는 방법 같은 것이었죠. 2년 정도 공부하면서 배웠던 기술과 만들어낸 색감이 소비자들한테 반향을 일으켰어요. “디지털이 이런 사진을 만들어낼 수 있단 말이야?”라고요. 그때쯤 스튜디오도 굉장히 잘 됐어요. 2년이 지난 시점에서는 저도 스튜디오에서 촬영을 하고 있었고요. 이후에는 일하면서 배웠던 색감을 만드는 방법, 지식, 포토샵 노하우 등을 인터넷에 연재하기 시작했어요. 그러다 한 출판사에서 먼저 연락을 주시더라고요. 책으로 한 번 내보는 게 어떻겠냐고. 2005년에 <김주원의 사진가를 위한 포토샵>이라는 책을 낼 수 있게 됐고 20만 부 정도가 팔린 베스트 셀러가 되었어요. 굉장한 반응이었죠.

 

사진을 찍으시는  분으로서  특별한  경험을  하신 것 같아요.

출판을 통해서 자신감을 얻기도 했는데 한편으로는 역효과도 조금 있었어요. 포토샵 전문가로 사람들에게 인식되게 된 거죠. 하는 활동들이 모두 포토샵 강의뿐이었어요. 스스로 사진가라고 생각했는데 어느 순간 포토샵 쪽의 일만 맡아서 하고 있었던 거죠. 스트레스를 굉장히 많이 받았던 시기였어요. 사진을 다시 새롭게 해야겠다는 생각에 떠나기로 마음먹었어요. 사진을 정말 찍고 싶었어요. 사람들의 관계에 있어서 자유롭게 찍고 싶었어요. 스튜디오란 공간은 제한적이란 느낌을 받기도 했고요. 인도에서 6개월 정도 머물면서 개인 작업을 진행했어요. 돌아와서 인도 사진으로 첫 개인전을 열었죠.

 

 

인도 여행을 전후로 배운 것들이 있다면.

그 전에 사진을 찍을 때는 용기가 별로 없었어요. 부끄러움이 많은 편이기도 하고, 사람들에게 다가가는 것을 많이 두려워했어요. 한국 사람들은 카메라를 대하는데 익숙하지 않고, 사진을 찍히는데 거부감이 있어서 카메라를 들이밀기만 해도 욕을 하는 경우가 많았어요. 그런 상황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죠. 상대의 뒷모습, 멀리서 찍은 모습을 찍는 게 전부였어요. ‘사람들에게 진솔하게 다가가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어떤 것인가’라는 물음이 생겼어요. 인도에서 사진을 찍으면서 배운 것은 ‘그런 방법은 없다’에요. 그 사람을 사람으로 대하는 것이 답이었어요. 살아있는 사람으로 대하는 것 태도 말이죠. 인도에서 사람들과 섞여 살면서 그 사람들과 눈을 마주치고 자연스럽게 시간이 흘렀어요. 자연스럽게 동네 사람들이 미스터 김으로 부르더군요. 카메라를 들고 다니는 저를 보면서 찍어달라고 이야기하기도 하고, 어디도 찍어봐라. 저 사람도 찍어봐라. 돌아다니면서 찍어보고, 집에 초대돼 사진을 찍어보기도 하고요. 결혼식 촬영도 하고. 이런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사람의 살아있는 얼굴, 진솔한 모습들을 저절로 마주했어요. 꾸미거나 순간을 재빠르게 포착하는 것이 아니었어요. ‘그 사람들 삶 속에 사진가가 녹아 있어야 하는구나’라는 걸 배웠죠. 사람들의 사진을 찍으면서 배운 것은 관계를 만들고 그 관계를 담아내는 일이었어요. 제가 사진을 하면서 배운 것 중에 가장 충격이었어요. 나는 사진을 제법 찍는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자만심이었죠. 사진 한 장 한 장에는 단순한 스냅숏 같아도 이야기가 담겨져 있어요. 한 사진은 아빠가 악기를 연주하면 아이가 돈을 구걸하고 있는 장면을 담았어요. 인도는 카스트 제도가 있어서 여러 계급이 있는데 그중에서도 불가촉천민, 언터쳐블(untouchable). 상대해서는 안 될 사람들이라고 소외당하는 계급이 있어요. 저는 그들과 만나면서 따뜻함을 많이 느꼈어요. 제 인도 사진들은 그들의 이야기예요.

 

@조드뿌르, 인도, 2005 / 아빠의 구슬픈 음악 연주가 끝나면 아이는 관광객들을 향해 손을 벌렸다.

 

다른 언어, 다른 문화를 가진 이들과 함께한 6개월이 어렵지는 않으셨나요?

인도는 영어를 거의 공용어처럼 사용하고 있어요. 충분히 소통할 수 있었고, 영어가 잘 되지 않을 때는 손짓, 발짓을 통해 이야기했죠. 인도사람들은 오른손으로 밥을 먹고 왼손은 볼일을 볼 때 쓰는데 저는 수저와 젓가락을 쓰는 게 익숙해서 나는 이렇게 꼭 먹어야 한다고 말한 적이 있었어요. 그 말에 “너희 나라에서 고기를 상추에 싸 먹을 때 젓가락으로 먹어? 손으로 먹어야 맛있을 때도 있어.”라는 대답을 들어서 신선한 충격을 받기도 했어요. 살아가는 얘기들을 들으면서 사진을 찍으니 좀 더 자연스럽게 그들을 담을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땅콩 파는 아주머니를 찍은 적이 있는 데 아이들과 사진을 찍어본 적이 없다고 하셔서 가족사진을 찍어드렸어요. 사진을 찍는 문화도 없고, 찍어주는 사람도 없었으니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죠. 다시 가게 되면 사진을 전해주기로 했는데 아직 약속을 못 지켰네요.

 

@서울 강남역, 2017 / G마스터 FE12-24mm 렌즈를 사용하여 촬영한 강남역 야경이다. 렌즈의 왜곡과 주변부 화질 등을 판단할 수 있는 샘플 이미지 작업이다.

 

인물보다도 풍경 사진가로 많이 알려져 있으신데 풍경을 찍게 된 계기가 있나요?

인물사진을 좋아하는 편이긴 해요. 사진 촬영의 시작이 인물사진이었기 때문에 좋아하지만 촬영하려면 사람을 만나야 하고, 의뢰를 받아야 한다는 점이 어려웠어요. 제가 찍어야겠다고 마음먹었을 때 바로 찍을 수 있는 사람들은 가족 말고는 없잖아요. 누군가를 예쁘게 찍고, 인터뷰 사진을 찍은 것이 오롯이 내 사진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어요. 제가 쓸려고 해도 함부로 쓸 수 없는 사진이기도 하고요. 제가 말이 많은 편이 아닌데 사람을 촬영하면 계속해서 커뮤니케이션해야 하다 보니 신경이 쓰이는 경우도 많았어요. 반대로 자연 속에 들어가면 이야기할 필요가 없어지죠. 그저 내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싶었어요. 여러 가지 풍경을 찍어보다가 한국의 눈 내린 풍경 시리즈 <WHITE>작업을 시작했어요. 눈이 많이 내리면 전체가 정지돼요. 사람도 차도 없고요. 그런 자연에 들어가면 편안함을 느꼈어요. 저는 풍경 사진을 찍을 때 가장 행복해요. 저를 사진가로서 존재할 수 있게 해주는 사진, 가장 행복하게 만드는 사진이 풍경 사진이에요. 물론 풍경뿐만 아니라 다양한 사진을 찍고 있고요.

 

이번에 소니 글로벌 이미징  앰버서더가 되셨어요. 소니와  처음 인연이 궁금해요.

소니는 포토넷 기자로 근무하던 시절에 처음 사용해봤어요. 지금까지도 근무하고 계신 소니 담당자분들과 처음 만나봤던 것도 그 당시였고요. 일을 하면서 인터뷰도 많이 진행하고 카메라 리뷰도 진행해야 하는 상황이 있었는데 그 당시에 새로 출시된 카메라로 α900이라는 카메라가 있었어요. 기존에 디지털 카메라에서 만들어내지 못했던 이미지를 그 카메라가 만들어 내는 걸 경험했어요. 그 당시에 나왔던 카메라 중에서 다이내믹 레인지도 좋았고 RGB 각 색의 분리라고 할까요. 그런 표현력들이 맘에 들었어요. 이 카메라를 내 메인 카메라로 삼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바로 구매했던 기억이 나요. 들고 많이 돌아다녔죠.

그 당시에는 소니를 사용하는 유저들이 많지 않아서 현장에서 만나는 분들이 신기하게 쳐다보시기도 했어요. 소니라는 브랜드의 이미지가 아직 정착되기 이전이었으니까요. 카메라의 미래는 컬러, 색의 표현력이라고 생각했어요. 촬영하고 잡지에 직접 프린트하면서 확인했던 것 같아요.

이런 제 활동을 알았는지 소니에서 이런저런 기종들을 쓸 기회를 제공해주셨어요. 여러 팀을 만나봤지만 소니의 사람들은 사진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는 느낌을 많이 받았어요. 오래 그곳에서 근무하고 계시기도 하고요. 기자로 근무하던 그때 만난 소니와의 인연들이 아직도 이어지고 있어요. 그들은 사진은 기계가 찍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찍는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어서 사람에게 투자하고 있어요. 사진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피드백을 열심히 모으고요. 한국 유저들의 의견이 강하잖아요. 카메라가 좋으면 어떤 것이 좋다. 어떤 것이 아쉽다. 인터넷을 통해 자유롭게 의견을 내기도 하고요. 그런 이유에서 일본 기술자들이 한국에 자주 방문해서 작가들에게 의견을 물어보곤 해요. 무엇이 아쉬운지, 어떤 것들이 보충됐으면 좋겠는지 물어봐요. 그런 피드백들을 반영하고 새로운 제품을 내놓는 거죠. 카메라를 사용하는 유저에게 주목한다는 건 놀라웠어요. 기업도 결국 사람이 움직이는 것이고, 사진도 사람이 셔터를 눌러서 만들어 내는 것이니까요.

 

 

앰버서더로  선정됐을 때의 느낌이 궁금합니다.

얼떨떨했죠. 어떻게 내가 선정됐을까. 내가 될 수 있나 했었던 것 같아요. 사실 포트폴리오 심사가 있었어요. 소니에서 직접 하는 것은 아니고 WPO(World Photography Organization)이라는 재단에서 시행을 해요. 다른 여러 가지 작업이 있었지만 특히 <WHITE> 작업이 인정받았던 것 같아요. 계절이 겨울이라 1년에 한 차례, 그 시기만 가능한 작업이었고 굉장히 한정성이 있는 작업이었어요. 그런데 10년 동안 찍으면서 한 번도 주목 받지 못했던 작업이었죠. 강렬한 이미지의 작업은 아니었으니까요. 저는 그 조용하고 조금은 밋밋할 수 있는 풍경이 좋았어요. 한국에서만 볼 수 있는, 한국에 남아있는 풍경들이니까요. 그런 작업을 누군가 보고 인정해주셨다는 것에서 의미가 남다르게 느껴졌죠.

 

최근 α9로 작업을 진행한 경험이 있다면.

 가장 가까이는 ‘론리 플래닛’이라는 잡지에 기고한 적이 있어요. 제주도를 취재 건이었고요. 그리고 제가 하고 있는 작업 중에 에디토리얼 포토그래피 라는 것이 있는데 취재를 위한 사진, 잡지에 들어가는 사진을 찍는 거예요. 인터뷰, 풍경, 실내 인테리어, 음식 등 다양한 종류의 촬영이 포함돼 있어요. 취재하면서 느낀 것은 일반 사람들은 모델이 아니기 때문에 찍히는 것에 대한 어색함이 있다는 거예요. α9으로 촬영할 때 무음 셔터를 사용해서 자연스러운 모습을 담아내면 피사체도 자유롭고 저도 자유롭게 느껴지더라고요. 앞선 미러리스들이 가지고 있던 단점들이 많이 나아진 것도 있어요. 작은 크기에 비해서 큰 셔터 소리도 줄었고, 배터리가 빠르게 닳았던 약점도 고쳐지고 있고요. 론리 플래닛과 작업을 하면서 롯데 렌터카의 작업도 함께 진행한 적이 있어요. 자동차 화보 작업이었는데 빠른 속도를 가진 차를 담아내는 데 있어서 고른 AF 영역과 포커스 속도가 원활하게 보조를 해줬어요. 사진뿐만 아니라 바이럴 영상도 같이 작업 했는데, 사진과 영상 모두 촬영 가능한 병행성도 소니 α9의 장점이에요. G MASTER 렌즈로 야경을 찍는 프로젝트도 진행했는데 계조의 폭이 넓어서 하이라이트와 섀도를 잘 표현해내는 것도 있고, G MASTER 렌즈를 이용한 선예도로 표현하는 매력도 느낄 수 있었어요. 배럴 디스토션(barrel distortion)이나 색수차도 거의 없었어요. 야경이나 샘플링작업을 하다 보면 1~2%의 디테일에서 아쉬움을 느낄 수 있는데 작업 간에 그런 부분이 거의 없었어요.

 

@충남 태안, 2011 / 태안에서 만난 눈 폭풍 속에서 촬영한 사진이다. 이날 만난 엄청난 눈보라는 내게 두려움보다 포근함을 느끼게 했다.

 

<WHITE>시리즈 역시 소니의 카메라로 촬영하신 작품인가요?

그렇죠. α9이 나오기 전, α900, α99, α7R, α7R II 등 α시리즈의 역사도 함께 담긴 작업이었어요. 지금 촬영하는 작품들은 필름이 아니잖아요. 작품에서는 자신만의 색이나 톤을 일관적으로 유지해야겠다는 생각이 있었어요. 하나의 카메라로 작업을 하는 이유도 어느 정도 결과물의 균형을 위한 것이었고요. 지금의 α9은 상당히 빠른 기종이지만 α7R, α99는 속도 면에서 아쉬운 모습도 있었어요. 그런데 제가 하는 작업은 호흡을 천천히 가지고 가는 느린 작업이어서 큰 지장이 없었죠. 덕분에 소니 알파 카메라와 함께 서서히 작업하고 촬영해온 역사를 담을 수 있었죠.

 

지금까지 진행한 작업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작업을 하나 소개한다면.

<WHITE> 작업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지금의 저를 있게 만들어준 작업이라 더욱 그래요. 이런저런 사진을 하다 보면 내가 어떤 사진을 좋아하는지 모르게 돼요. 저는 이 작업을 하면서 어떤 사진을 찍을 때 행복한지 깨닫게 됐어요. 이 작업을 평생 끌고 가야겠다는 맘이 들었고요. 눈 오는 풍경을 찍은 사진이 한국에 거의 없더라고요. 2009년부터 시작한 이 작업으로 많은 걸 배웠어요. 한 번은 작품 중의 하나를 청담동에 있는 모 갤러리의 갤러리스트에게 보여주고 있었어요. 어떤 외국인분이 오시더니 작품이 맘에 든다고 본인이 운영하는 갤러리에 전시를 해보지 않겠냐는 이야기를 꺼내시더라고요. 북아프리카에 있는 작은 섬 스페인 령의 카나리아 제도, 유럽의 휴양지 느낌이 나는 곳의 ‘사로레온’이라는 이름을 가진 갤러리의 관장님이셨던 거에요. 초대를 해주셔서 2011년 처음 해외 전시도 열어보는 계기가 됐어요. 카나리아 섬은 눈 덮인 풍경이 생소한 곳이었어요. 관람객들이 한국의 겨울 풍경이 이렇게 아름다운 줄 몰랐단 반응을 보여주셨어요. 여러 가지 풍경 사진 작업을 하지만 눈, 흰색이 저를 잘 대변하는 것 같아요. 한국의 겨울 풍경을 소개하는 사진가로 남고 싶어요. 어떻게 보면 우리의 고유한 풍경이니까요. 작업을 시작한 2009년에는 눈이 많이 내렸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지구온난화 영향인지 점점 눈이 내리는 것이 줄고 있어요. 저는 사진이 시간성을 담보로 한다고 생각해요. 한참이 지난 후에 눈이 내리지 않는 경우도 있겠죠. 그때 제 사진은 풍경 사진이기도 하지만 하나의 다큐멘터리로도 남을 수 있을 것 같아요. 물론 절대 그렇게 돼선 안 되겠지만요.

 

@경기도 용인, 2016 / 딸 소호가 태어나면서 일어나는 시시각각의 장면이 내겐 결정적 순간이다. 카메라를 항상 집안 여기저기 배치해 두고 그런 순간을 포착하려 애쓴다.

 

현재 진행하고 있는 프로젝트가 있나요?

딸이 15개월 조금 넘었어요. 다른 작업도 다 좋지만 나만 찍을 수 있는 게 뭔가라는 생각을 해봤어요. 아이가 태어나면 사진 작업할 시간이 적어요. 함께 육아를 하니까요. 그렇다 보니 나를 위한 작업이 뭔가 고민했어요. 아기를 찍는 일이 나만 할 수 있는 일이더라고요. 소호를 돌보다 보면 카메라를 들게 되는 순간들이 있어요. 아이와 엄마가 손을 잡는 장면, 눈을 마주하는 장면에 감동하기도 하고요. 이렇게 소호가 만들어내는 사소한 순간들, 첫 순간들, 지금이 아니면 담을 수 없는 순간들을 담아내고 싶었어요.

‘소호의 첫 순간’이요. 소호를 나이가 드는 순간까지 담아내고 싶어요. 아이가 점점 빨라지니 찍으러 다닐 때 힘든 건 있어요. 넘어질까 잡으러 다닌다고.

 

사진 작업을 함에 있어서 갖고 있는 철학이 있나요?

현학적인 말로 꾸며내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요. 사진을 찍는 것에 있어 자신이 행복해야 한다는 생각을 많이 해요. 광고작업이나 강의도 하고 이런저런 일을 하고 있죠. 대부분 열심히 하고 그 순간에 집중하지만 모든 일이 나 자신을 위한 일은 아니에요. 먹고 살기 위한 일도 있고 어쩔 수 없이 해야만 하는 작업도 있죠. 진짜 좋아하는 것은 내가 내 돈을 써가면서도 할 수 있는 일인 것 같아요. <WHITE>작업이라든지, 풍경 사진, 소호의 사진 등 개인적으로 준비 중인 작업이 여기에 포함될 거예요. 이런 것들은 돈을 아끼지 않고 퍼부을 수 있을 만큼 사랑하는 일이에요. 이런 일을 했을 때 행복하고요. 사진을 하는 사람들도 여러 가지 일을 하지만 자기를 위한 작업을 하는 것이 진짜로 행복한 일이 아닐까 싶어요. 제가 봐온 오래 사진을 하는 사람은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찾은 사람들이었어요. 금방 그만두게 되는 이유는 꾸준히 할 무엇을 찾지 못해서가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찍으면서 행복한 것을 찾자’라는게 제 생각이에요.

 

 

ZAKO에 대한 간단한 소개 부탁드립니다.

대부분 포토넷 기자 출신의 사람들이 모여서 만든 그룹이에요. 기자 시절의 느낀 것 중의 하나가 사진가들이 다 각기 활동을 하고 구심점이 없었죠. 매그넘 그룹처럼 한국의 사진을 꾸준히 이끌어나가는 그룹이 됐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담았어요. 이름의 특별한 뜻은 없어요. 사진을 같이 즐기는 모임을 만들려고 노력했던 것 중에 하나라고 보시면 될 것 같아요. 함께 진행한 프로젝트 중에 좋은 게 많았어요. 서울시에 기사를 제공하는 일도 있었고, 대기업을 클라이언트로 하는 광고영상 제작도 있었고, 강의나 출판도 했던 기억이 나요. 요즘은 여행 책을 만드는 일을 하고 있어요. 각자의 여행을 담은 사진과 경험을 공유하려고 준비하고 있어요. 바라는 게 하나 있다면, 자코라는 이름 아래 많은 열정있는 후배사진가를 만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에요. 아직은 새로 만날 수 있는 이가 없는 상황이지만 언젠가는 생기지 않을까요. 꾸준히 사진을 하고자 하시는 분들이 있다면 그들을 지원하고 싶어요.

 

앞으로 해보고 싶은 작업이 있다면.

시간성에 대한 고민이 있어요. 분명 최근까지는 있었던 것 같은데 시간이 지나면 없어져 있는 것들이요. 저의 출발점은 기록하는 다큐멘터리였기 때문에 이런 생각들을 늘 갖고 지내요. 그게 사람이든, 물건이든, 풍경이든. 아직 구체적인 방향은 못 잡았어요. 군산 해망동이라는 곳을 매년 찾았었어요. 계단식 골목으로 유명한 마을이었어요. 바빠서 한참 못가다가 재작년쯤 찾아갔는데 사라지고 아파트단지로 덮여있더라고요. 다 날아가 버린 거죠. 이처럼 제한된 시간성을 담보로 하는 소재가 어떤 게 있을까 찾아보고 있어요. 단순한 소재가 아니라 다양한 주제에서 찾아보려고요.

 

@제주도, 2017 / 제주 취재 중 a9으로 촬영한 자동차 화보 컷이다. 오직 가로등 불빛에 의존해 촬영한 야경임에도 밝은 곳부터 어두운 곳까지 사진의 질감과 디테일이 잘 살아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향후 작가님은 어떤 사진작가로 기억되고 싶으신가요?

어떻게 기억이 될까 고민해 보지는 못했던 것 같아요. ‘사진을 꾸준히 했던 사람’이었으면 좋겠어요. 지금까지 20년 정도 사진을 찍는 사람으로서 생활해 왔는데 아직도 고민이 많아요. 다음 달은 사진으로 먹고 살 수 있을까, 내년에도 계속 사진을 할 수 있을까 고민해요. SNS가 발전하면서 누구나 다 사진을 찍을 수 있게 됐잖아요. 사진을 꾸준히 할 수 있는 것이 굉장한 일이 돼버린 거죠. 물론 제가 해야 할, 남아있는 사진 프로젝트나 작업은 아주 많아요. 그렇지만 결국 어떤 작업을 했던 사람이라고 기억되는 것보다 사진을 행복하게 했던 사람이라고 기억되고 싶어요.

 

사진을 좋아하는 이들에게 전하고 싶은 다른 얘기가 있다면 전해주세요.

최근 보면 아날로그에 대한 향수들이 되살아나는 추세에요. 유행이라는 게 결국 돌고 돌더라고요. 앱스토어에서 유료 앱 1위가 구닥인 것을 보고 놀란 기억이 있어요. 사진을 찍으면 2~3일 후에 인화해 준다고 하더라고요. 필름 카메라를 쓰던 때는 기다림이 흔한 일이었지만 디지털 세대는 그것을 신기해하는 것 같아요. 요즘 우리가 만나는 것들은 대부분 빠르고 화려하고 순간의 것들을 충족시켜줄 수 있는 것이 많아요. 그렇지만 사라져가는 것, 호흡이 길고 시간이 필요한 것들이 우리 삶을 성찰하고 풍요롭게 해주지 않을까 생각해요. 풍경도 사진도 그래요. 잘 돌아보면 우리나라에도 느리게 흘러가는 풍경들이 많거든요. 화려하고 멋진 것만 보지 말고 천천히 산책하듯 여유로운 광경들을 즐길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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