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지필름 X-E3

우연히 떠오른 경주가 향수를 자극했다. 제법 쌀쌀해진 날씨 덕분일까. 짙은 향수가 일렁이고 나니 곧바로 그곳에 가야 할 것 같았다. ‘이유 없음도 이유’가 되는 순간이다. 경주행 열차에 오르기로 마음먹고 선 가벼운 짐을 꾸렸다. 무얼 챙겨야 할지 고민하는 찰나 작고 클래식한 디자인의 후지필름 미러리스가 눈에 띈다. 사진의 본질에 집중하고 싶은 마음을 전제로 후지필름 특유의 색감이 경주와 꽤 어울릴 것 같았다. X-E 시리즈에 새롭게 나타난 X-E3가 이번 여정의 적임자로 떠올랐다. 가벼워 오랜 시간 함께할 수 있고, 대상을 선명하게 담아 줄 카메라. 이 모델은 그 이유가 되는 것에 충분했다.

글·사진 | 김유미 기자

 

황남동 황리단길. 후지필름의 색감과 더해져 경주의 분위기가 한층 살아났다.
황남동 황리단길. 후지필름의 색감과 더해져 경주의 분위기가 한층 살아났다.

 

경주에 다다르기 전, 손에 착 감긴 X-E3 덕에 셔터를 누르는 일이 많았다. 사람의 손에 맞게 만들어져 카메라를 들었을 때 가장 편안한 상태를 유지했다. 레인지 파인더 스타일의 외형, 여기에 필름 카메라 같으면서도 현대적인 모습을 동시에 갖춘 디자인은 카메라를 장착하고 싶게끔 했다. 이상적인 크기와 간결한 바디. 이번 여행을 오롯이 책임져 줄 대상이라는 것을 경주에 도착했을 때 경험했다.

 

[필름 시뮬레이션]-[아크로스]를 사용해 풍부한 계조의 흑백사진을 얻을 수 있다.
[필름 시뮬레이션]-[아크로스]를 사용해 풍부한 계조의 흑백사진을 얻을 수 있다.
교촌 한옥마을
교촌 한옥마을
X-E3의 선명한 화질로 한옥 외부의 질감이 온전히 표현됐다.
X-E3의 선명한 화질로 한옥 외부의 질감이 온전히 표현됐다.

 

경북 경주시 포석로 1080, 대릉원과 한옥에 둘러싸인 옛 건물이 그대로 보존된 곳. 황남동의 황리단길이다. 거리에서 풍기는 요소들이 이내 발길을 멈추게 한다. X-E3를 꺼내 든다. 수동 모드와 자동 모드 사이 잠시 고민한다. 셔터스피드 다이얼과 조리개 링을 돌려 직관적인 수동 모드를 사용할 것인가. 자동 모드로 전환하여 58가지 선택 가능한 SR AUTO+ 모드를 사용할 것인가. 일단은 수동 모드에 놓은 채 다시 모드를 바꿔 사용해 보기로 했다. 다이얼을 한번 돌려 모드를 쉽게 변경할 수 있으니. 이전 모델에 있던 십자형 패드는 사라지고, 8방향으로 움직일 수 있는 포커스 레버와 터치 스크린 LCD가 새롭게 생겨났다. 뷰파인더를 보면서 터치 패널을 사용할 수도 있게 됐다. 소위 ‘후지필름 카메라의 찍는 맛’에 찍기 어려운 경우까지 고려한 것이다. 이 기능으로 ‘황리단길의 분위기를 정확하고 빠르게 담아낼 것이다’라는 예감이 든다. 왼손에 물건을 들고 있지만, 오른손만으로 카메라를 조작할 수 있는 바디이기에. 황리단길 골목 사이에 대고 연신 셔터를 눌렀다.

 

동경
동경
동경과 플랫화이트
동경과 플랫화이트

 

‘동경’이라는 카페를 우연히 찾았다. 경주의 옛 지명인 ‘동경 東京’을 따서 만든 이름의 카페다. 한옥으로 된 외관이 형태미를 살렸다. 흑백 사진으로 연출해도 알맞게 어울릴 분위기였다. 후지필름의 특유 색감이 들어간 클래식 크롬으로 한 장, 필름 시뮬레이션의 아크로스로 한 장. 아크로스의 경우 기존 모노크롬에 비해 자연스러운 그라데이션으로 풍부하게 계조를 표현한다. 부드러운 흑백 색감이 마음에 들어 아크로스 모드를 퀵 메뉴에 설정했다. 여기에 필름 사진과 같은 이미지를 얻으려면 그레인 효과를 켜서 필름 질감을 줄 수 있다. 클래식 크롬보다 아크로스 모드일 때 그레인 효과를 사용하면 더욱 필름 사진과 어우러지는 사진을 얻는다.

 

경주 일대
경주 일대
다중 노출을 사용해 첨성대와 여행객을 한 장의 이미지에 담았다.
다중 노출을 사용해 첨성대와 여행객을 한 장의 이미지에 담았다.
[아트필터]-[포인트 컬러(퍼플)]을 활용한 사진
[아트필터]-[포인트 컬러(퍼플)]을 활용한 사진

 

 

잠시 머무른 곳에서 일어나서 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리에 있는 교촌 한옥마을에 도착한다. 멋스러운 한옥에서 신라의 향이 다가온다. 여기에 경주 최씨의 고가옥과 국립대학 신라의 국학에서 이어온 조선 시대의 향교가 있다. X-E3가 카메라를 켜서 동작하는 시간 0.4초. 0.06초의 빠른 AF 속도로 한옥을 담는다. 연사 성능은 초당 최대 8fps로 행인과 함께 이곳의 풍경을 담아내기 좋다. 다이내믹 레인지(DR)에 따른 촬영도 가능하다. 노출차가 큰 경우 가장 어두운 부분과 가장 밝은 부분을 동시에 얼마만큼의 범위로 담아내느냐에 따라 DR 400%, DR 200%, DR 100%로 설정할 수 있다. DR을 200%를 선택해 한옥 기와의 어두운 부분과 한옥의 하얀색 벽을 적절한 범위로 담아냈다.

 

동궁과 월지
동궁과 월지
노이즈 리덕션 기능으로 고감도에서 촬영한 동궁과 월지 야경의 노이즈를 줄여줬다.
노이즈 리덕션 기능으로 고감도에서 촬영한 동궁과 월지 야경의 노이즈를 줄여줬다.

 

간결해진 조작으로 사진 자체에 집중할 수 있었다. 경주하면 떠오르는 것. 불국사, 석굴암, 첨성대, 경주빵. 교촌 한옥마을에서 15분 남짓한 곳에 있는 첨성대에 가기로 마음먹었다. 수학여행 때 잠깐 보던 첨성대를 마주하니 감회가 남달랐다. 벅차오르다는 것이 그 때의 감정을 표현하기에 적절할까. 그러곤 경주에 꼭 다시 오겠다고 다짐했다. 다중노출을 이용해 첨성대를 먼저 찍었다. 두 번째 사진은 무얼 찍을까 고민하다가 가까운 여행객을 담았다. 주변을 둘러보니 조금 떨어진 곳에 많은 인파에 둘러싸인 핑크 뮬리가 있다. 촬영되는 색상 중 선택한 한 가지의 색상을 표현하고 나머지는 흑백으로 만드는 아트필터가 어울릴 것 같았다. 보라색을 추출한다. 무언가 신비롭다. 해가 지기 시작해 동궁과 월지로 장소를 이동했다. 밤의 풍경은 또 다른 느낌이다. 점등되기 시작하자 동궁과 월지의 고즈넉함을 담기 좋았다. 노출 확보가 어려워 걱정이지만, 노이즈 감소 효과로 충분히 억제할 수 있다. 돌아오는 길 블루투스 기능으로 사진을 휴대폰에 보낸다. 필요 이상의 버튼과 조작을 없애 여행 내내 편하게 경주를 담을 수 있었다. 누군가의, 어떤 경주로 기억될 순간. X-E3와 경주의 기억을 온전히 담았다. 잠시 경주에서 멈췄었다. X-E3의 간소화된 조작과 더해진 촬영 기능 그리고 후지필름의 색감으로 여행에 즐거움을 더했다. X-E3와 함께한 이 날의 분위기가 이따금 생각날 것 같다.

 

동궁과 월지
동궁과 월지

 

후지필름 X-E3

337g으로 가벼우면서도 이전 모델보다 조작이 간소해졌다. 새롭게 개발된 이미지 인식 알고리즘은 움직이는 피사체를 이전 모델보다 2배 빠르게 추적해낸다. 고화질 4K 동영상 촬영이 지원되고, 필름 시뮬레이션을 적용한 동영상 제작이 가능하다. 선명한 화질을 구현하기 위해 2430만 화소의 X-Trans CMOS III 센서를 탑재했다. 화상 처리 엔진은 X-Processor Pro. 상위 모델인 X-Pro2와 X-T2와 같은 센서와 화상 처리 엔진으로 우수한 화질과 빠른 이미지 처리 성능을 갖춘 모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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