꾸준함이 유명해지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

VDCM과 이준식 교수는 각 전문 분야의 사진가들을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사진을 시작한 계기부터, 어떤 이유로 사진가라는 직업을 선택하게 되었는가, 그리고 현장에서 어떤 장비를 사용하는지까지. 조금씩 천천히 그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이번 호에서는 광고의 한 분야라고 할 수 있는 제품 분야에서 꾸준히 인정받고 있는 사진가 ‘174 Studio 이상천 실장’을 만났다.

인터뷰 진행 | 이준식 교수 / 사진 | 이상민 기자 / 편집 및 교정 | 김유미 기자

 

 

현재 제품 전문 사진작가로 활동 중인 이상천 작가님을 모셨습니다. 작가님이 사진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있나요?

아버지가 카메라 장비에 관심이 많으셔서 집에 카메라가 몇 대 있었어요. 혼자 있거나 심심할 때 열어보기도 하고 렌즈를 카메라에 마운트 해보기도 했죠. 카메라 만지는 횟수가 점차 늘게 되고, 저에게 카메라는 좋은 친구였죠. 고등학교 1학년 때 사진부 동아리를 들어갔는데, 옆 학교 세화여고 사진부와 활동을 같이하게 된 거에요. 그 때 당시는 순수하게 사진을 좋아해서 활동한다기보다 같은 나이의 여학생들과 교류한다는 점이 컸어요. 활동하면서 카메라에 대한 관심이 점차 커졌지만요. 어릴 때 사진기를 만져본 경험이 조작법을 일찍 습득하도록 도와주더라고요. 그래서 활동하는 친구들과 얘기도 많이 나누고, 정보도 많이 공유했죠.

 

대화를 나누고 있는 이준식 교수(왼쪽)와 이상천 실장
대화를 나누고 있는 이준식 교수(왼쪽)와 이상천 실장

 

동아리 경험을 토대로 대학 전공을 선택한 거네요. 그 후에는 어땠나요?

제대하고 복학해서 첫 강의를 들으러 갔어요. 그동안 후배들이 찍어놓은 사진을 봤는데 제 사진과 너무 비교됐어요. 또, 나이 있으니까 그들보다 뒤처져 있다는 느낌을 받았죠. 그러던 중에 선배들이 저에게 광고부 반장, 전체 팀장, 졸업위원회를 맡긴 거예요. 직책이 사람을 만든다고, 3학년 때는 정말 열심히 했던 것 같아요. 그중 가장 재밌고 잘 맞았던 게 제품이었고, 그것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이어오게 됐죠.

 

레이몬드 마이어가 작업한 화보 이미지(위, 아래)
레이몬드 마이어가 작업한 화보 이미지(위, 아래)

 

졸업 후 유학까지도 생각하게 되신 건가요?

반대로 눈을 늦게 뜬 거 같아요. 대학교 3학년 때 열심히 했던 결과물을 보고 자극을 받았다고 해야 할까요. 외부 자극으로 기폭제가 되었던 것도 사실이고요. 아직 배울 게 많은데 그걸 놓치지 않았나 생각하게 됐어요. 그래서 아버지를 설득했고, 설득의 조건으로 대학 졸업전시를 여름방학에 끝내기로 했어요. 4학년 때 유학 준비를 하고, 여름방학 때 졸업심사를 따로 받았어요. 당시 탤런트 유호정이 학생 사진가로 나왔던 드라마가 있었는데 ‘나 커서 브룩스에 유학 갈 거야’라는 말이 대세였을 정도로 브룩스 사진 대학이 유명했어요. 몇 군데 지원했지만 아무래도 상업 사진 쪽으로 간다면 브룩스에 가는 게 좋을 거 같아서 입학했죠.

 

분석적 큐비즘 : 디지털 사진으로써의 접근
분석적 큐비즘 : 디지털 사진으로써의 접근

 

대학원 들어가서는 어떤 작업을 했나요?

디지털 쪽으로 작업을 했는데, 분석적 큐비즘을 통한 사진적 재현이었어요. 합성사진을 만드는 것인데 그것을 피카소의 분석적 큐비즘 아이디어를 베이스로 해서 만드는 게 제 목표였어요. 사실 그 전까지는 디지털 하면 수치로 계산되어야 하고 해상력에 대한 얘기가 나와야 했는데, 피카소가 분석적 큐비즘을 할 때 사용했던 게 사진이었어요. 사진을 여러 장 겹쳐서 3차원적으로 표현해서 그걸 보고 그린 그림이 실제 존재했어요. 결과적으로 ‘여러 장의 사진을 기반으로 합성했을 때 그것이 예술적 가치를 가질 수 있냐’하는 질문을 던지는 작업이었던 거죠.

 

학부 시절을 지내고, 브룩스 대학을 다니면서 자신에게 롤 모델이 있었나요?

뉴욕 쪽에서 일하시는 몇 분이 계셨어요. 나도 그분들처럼 잡지와 광고를 찍고 싶다는 생각을 했죠. 그 때 순간적으로 마음을 뺏을 수 있는 사진을 좋아했던 것 같네요. 되려 지금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순수 예술에 대해 눈을 뜨게 된 거 같아요. 제가 좋아하는 작가분은 보그, W에서 하우스를 하시는 레이몬드 마이어(Raymond Meier)입니다. 아마도 그분의 톤에 매료됐던 것 같아요. 지금 봐도 좋다는 생각이 드는 이유가 광고 사진은 시대의 흐름을 타잖아요. 그런데 그분 사진은 색감이 독특하고, 그 때의 색감이 현재까지도 쓰이는 것 같아요. 상업 사진에서 사진의 톤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바뀌는데, 그의 톤은 지금도 좋아 보이는데 이건 쉬운 일이 아니죠.

 

S Magazine 창간호 beauty 화보
S Magazine 창간호 beauty 화보

 

그 후 졸업을 하고 미국에서 일하게 되었나요?

대학원 다닐 때 결혼을 하고 미국에서 아이를 낳았어요. 미국에서 지낼지, 한국으로 돌아올지 고민을 하다가 한국에 와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한국에 들어와서 처음에는 막막했죠.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많은 고민을 했는데, 그때 좋은 사람을 정말 많이 만났던 것 같아요. 상업 사진을 경험했던 분, 학교 쪽에 계신 분과 같이 제 인생에 방향을 제시해 줄 수 있는 분들을 만났어요. 감사하게도 제가 어떻게 진행해야 할지 조금씩 보이기 시작하더라고요. 그리고 두 분의 실장님과 같이 동업을 시작했죠. 처음에는 그분들하고 일하면서 어시 생활도 겸해서 한 것 같아요. 제품뿐 아니라 인물, 사보, 인터뷰 사진도 진행했어요. 이후 잡지를 시작하면서 자연스럽게 인물보다는 제품 쪽으로 찍게 되더라고요. 2003년에 잡지 <Madame Figaro> 하우스를 하게 되면서 그때부터 제품을 본격적으로 찍게 된 거죠.

 

제품 작업을 하면서 자신에게 에너지를 줬던 작업이 있었나요?

맨 처음에는 긴장되고 떨리고, 이렇게 찍는 것이 맞는 건지 의문이 들 때가 있었던 거 같아요. 그러다 제가 인정을 받게 되고, 사람들이 절 알아보는 사진이 한 장 있어요. 신세계 백화점 S 창간호 때 찍은 향수 제품인데, 제가 넌지시 이 말을 했어요. “사람들이 먼저 보는 건 케이스다. 향수를 박스만 찍는 것이 어떻겠나. 그리고 다음 페이지에 제품을 한군데 몰아서 보여주자”라고요. 이렇게 접근한다는 것이 광고 담당자에게 신기하게 다가왔다고 하더군요. 포토그래퍼와 함께 만들었다는 것에 대해서 좋게 봐주신 것 같아요. 이후 2006년 시점에서 광고가 하나, 둘 들어오기 시작하고 저라는 존재가 어떤 사진을 찍는지 알려지게 된 계기가 된 거 같아요.

 

 

현재는 어떤 작업을 주로 하고 있나요?

잡지는 하이엔드 쥬얼리 쪽으로 하고 있고요. 광고도 진행하고 있어요. 계원예술대학교에서 강의도 하는데, 학생들 가르치는 일에 보람을 많이 느껴요. 젊은 친구들 만나서 이야기하면 제가 전달받는 기운이 있어요. 거기에서 힘을 얻기도 하고요.

 

제품 사진 작업 진행 과정을 설명해준다면요?

사물이 있어요. 그 대상을 우리는 어떻게 보여줄 것인가 하는 연구를 먼저 해요. 우리 잡지에서 어떻게 표현해낼 수 있을까. 그것을 토대로 시작해서 진행하죠. 제가 처음 제품 사진을 시작했을 때 저를 찾아주신 분이 한 이야기가 있는데, 제가 못 그리는 그림 실력으로 시안을 그리면서 설명했다는 거예요. 그림 그린 것을 좋아하시더라고요. 저는 제 독창적인 아이디어라고 생각하고 만든 것도 있었고, 남의 것을 인용하되 내 얘기로 가지고 올 수 있도록 변형을 시키려고 노력을 했던 거 같아요. 결과적으로 뷰티 제품은 예뻐야 해요. 예쁘지 않게 예쁜 것도 예쁜 거예요. 이것을 차갑게, 따뜻하게, 무섭게 표현할 것인가를 결정을 하면 거기에 대한 진행 방법을 회의를 거쳐서 아이디어를 내고 그것을 기반으로 소품과 배경을 만들죠. 그리고 그 대상을 제가 원하는 느낌으로 풀어요. 상업 사진이 다른 점은 모든 결정이 협업이라는 것이에요. 상업 사진은 우리의 해석을 통해 만들어진다는 것 말이죠.

 

허니컴과 마미야 RZ67 PROⅡ
허니컴과 마미야 RZ67 PROⅡ

 

작가님이 주로 사용하는 장비는 어떤 것인지 소개해주세요.

중형카메라 마미야(Mamiya) RZ67 PRO II를 쓰고, 디지털 백에 페이지원 45+를 사용해요. 중형카메라에서 6500만 화소가 넘어가면 반대로 지워야 할 게 많아요. 제품 찍을 때 선명도와 선예도를 컨트롤 할 수 있는 개념을 가지고 있고, 조리개를 몇으로 놓고 찍어야 하는지 이유를 아는 사람이라면 6500만 화소까지 가지 않아도 원하는 사진을 얻을 수 있어요. 마미야 렌즈는 망원 계열 이상으로 갔을 때, 특히 140mm, 90mm 렌즈와 카메라의 조합이 잘 맞아요. 하이엔드 쥬얼리는 그 렌즈가 모든 걸 해결해 준다 할 정도로요. 가장 좋아하는 액세서리는 허니컴이에요. 빛의 조사각을 조절하고, 블랙 값을 바꿔주는 역할을 하죠. 도수가 작아지면 작아질수록 그라데이션 폭의 범위가 달라져 보석의 블랙 값을 살리고 싶다면 허니컴을 좁은 것을 끼워요. 반대로 블랙 값을 줄이고 싶으면 허니컴을 큰 사이즈를 끼워요. 조명 장비는 조명에 리플렉터를 끼우고 허니컴에 트레팔지를 사용하는 조합을 가장 좋아해요.

 

제품 촬영할 때 가장 우선시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찍는 대상과 배경의 사이즈 비례를 가장 중요하게 점검해요. 어떻게 준비해올 건지 예측을 해야 해요. 사이즈에 대한 얘기를 많이 해요. 예전의 제품 사진을 보면 배경이랑 제품이랑 일치해요. 한 번에 찍는 것이 중요했던 부분이 있었다면 지금은 그걸 고려하지 않고 찍기도 하죠. 이 부분의 경험이 중요한 이유는, 처음 제일 실수하는 게 비율에 대해 계산을 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초급자의 경우 세트에 대한 계산도 하지 않을 때가 있어요. 그렇지만 사이즈를 고려하고 촬영 순서가 정해지면 사진에만 더 집중할 수 있어요.

 

Noblesse Magazine beauty 화보
Noblesse Magazine beauty 화보
Noblesse Magazine beauty 화보
Noblesse Magazine beauty 화보
Noblesse Magazine beauty 시안
Noblesse Magazine beauty 시안

 

작업하면서 본인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있다면.

약속이요. 시작 시간, 마감 시간, 혼자 하는 일이 아니니까 제가 한 일을 제가 지키도록 노력한다는 것이에요. 사실 누구나 본인에게 조금 관대하거든요. 어느 시점에서는 본인에게 철저해야 해요. 제품을 찍을 때도 마찬가지예요. 널 아름답게 찍어주겠다는 약속을 하는 것이죠.

 

Noblesse Magazine gift 패션 아이템 화보
Noblesse Magazine gift 패션 아이템 화보
Noblesse Magazine watch 화보
Noblesse Magazine watch 화보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영감은 어디서 얻나요?

초등학교 시절로 올라가야 할 거 같아요. 아버지가 은행을 다니셔서 초등학교 3학년 때 조기 유학을 가게 됐어요. 그때는 캐나다에 동양 사람이 저밖에 없었어요. 다양한 인종을 만나면서 그들의 문화를 보고, 노래를 들으면서 다양한 문화를 접하게 됐어요. 영화, 사진, 미술품 등 예술적인 부분에 접근할 기회가 많았어요. 아버지가 사진에 관심이 많으셔서 박물관에 자주 데려가기도 하셨고요. 자연스럽게 접근할 기회가 많았던 거죠. 어렸을 때부터 배웠던 것이 쌓여 좋은 경험이 되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을 해요. 돌아와 한국에서 학부 때 배운 것, 다시 유학 가서 배운 것. 그런 것들이 우리가 흔히 말하는 총알들이 장전되기 시작하는 거죠. 거기서 나의 통로를 찾으려고 노력을 많이 했어요. 예를 들면 뉴욕 전경을 찍는데, 뉴욕 1월의 5번가 샛길에서 느끼는 추위를 표현했으면 좋겠다고 해요. 추위를 느껴본 사람이 풀어낼 수 있는 것과 가보지 않았는데 그 추위를 느끼게 하는 것. 그 차이는 다른 거 같아요. 사진은 시각적인 것이지만, 어느 시점에서는 후각, 청각, 촉각 등 지각될 수 있는 모든 감각이 동원되어 사진에 영향을 미치는것 같고요.

 

Noblesse Magazine living 화보
Noblesse Magazine living 화보

 

산업적으로 사진이 어려운데 제품 사진, 패션 사진, 인물 사진에 있어서 경쟁력이 있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어떤 사진을 찍어야 더 안전하고, 전망이 좋고 이런 것보다는 결국 자기가 좋아하는 걸 찍어야 해요. 인생에 정답은 없지만, 정도는 있다고 얘기를 합니다. 정도로 간다는 것은 사진학과를 졸업해서 공부를 더 하거나, 사진작가 밑에 들어가서 배운다는 것. 어떻게 보면 이러한 것이 사진가의 길을 걷는 한 과정인 것 같네요. 사실 숙련의 시간이 필요한 거잖아요. 그렇지만 지금은 또 사진만 해서는 되지 않는 시대인 것 같아요. 사진, 디지털, 영상까지 해야 경쟁력을 갖출 수 있지 않나. 이런 생각을 해요. 여기에는 다양한 경험만큼 좋은 게 있을까 생각해요.

 

Noblesse Magazine living 화보
Noblesse Magazine living 화보

 

사진에 관심을 두고 있는 학생, 독자, 후배 사진가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제가 어느 시점에 번 아웃된 적이 있었어요. 상업사진을 그만하고 싶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어요. 어렸을 때는 유명해지면 풍요로운 삶을 살 줄 알았는데 일에 더 쫓기게 되는 상황이 되더라고요. 정신적, 체력적으로 소진 되지 않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겠지만, 정말 자기가 좋아하는 것에 열정을 가지더라도 번 아웃은 생길 수 있는 거예요. 그렇지만 해소할 방법의 하나를 얘기한다면 행복하게 하라는 얘기예요. 나의 행복감을 유지하면서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이죠. 언제 한번은 어머니가 “너 그렇게 행복하냐?”라고 물어보시는 거예요. 꿈은 지금의 포토그래퍼였는데, 행복은 고통이 같이 수반되는 거지 행복만 따라오지도 않고 고통만 따라 오지도 않는다는 얘기를 그렇게 말씀해 주시더라고요. 그 말 듣고 마음을 좀 비웠던 것 같아요. 갈등이 생기고 고민이 생기는 걸 보면 모든 게 총체적으로 연결된다는 느낌을 받아요. 결국, 모든 일의 끝은 행복을 위한 일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죠.

 

마지막으로 제품 사진가를 꿈꾸는 이들에게 한마디 해준다면.

보이는 것보다 해야 하는 것이 시간상으로 길 수도 있고, 깊이가 클 수도 있는데 그걸 견딜 수 있는 인내심을 가지는 게 중요한 거 같아요. 유명해져야 살아남는 건 아니에요. 인내심을 갖고 꾸준히 일한다면 어느 순간 자신이 꿈꾸는 위치에 도달해 있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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