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교토에 가보고 싶었는데 인연이 잘 닿지 않았습니다. 지난 4월 초 벚꽃이 피기 시작할 무렵 드디어 교토를 찾았습니다. 이번 교토 여행은 최근에 영입한 라이카 M10과 Summilux 50mm 4th와 함께 했습니다. 저의 간절한 바램에도 불구하고 간사이 공항에 내려 기차를 타고 교토로 이동하는 차창 밖으로 화려한 벚꽃은 눈에 띄지 않았습니다. 이상 기온으로 활짝 핀 벚꽃을 여행 내내 볼 수 없었습니다. 제가 자주 겪는 익숙한 상황입니다. 세계 여러 나라를 여행하며 사진을 찍고 있지만 날씨 운은 정말 없거든요.

하지만 벚꽃이 없다고 사람마저 없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벚꽃을 보기 위해 봄나들이를 나온 많은 사람들이 저마다의 방법으로 교토의 봄날을 만끽하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의 발길을 따라 처음 찾아간 곳은 기온 거리였습니다. 오래된 옛날식 일본 건축물이 줄을 지어 펼쳐진 이 곳은 그 인기만큼 관광객들로 붐볐습니다. 관광객이 많은 장소에서는 어떤 방식으로 사진을 담아야 할 지를 고민하게 됩니다. 하지만 사람이 있다는 것은 그곳에 어떤 이야기가 있고, 좋은 사진이 만들어질 수 있다는 것을 뜻합니다. 길을 잃고 헤매며 방랑하기 딱 좋은 곳이라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그 곳에 다소곳이 자리 잡은 에르메스 매장에 들어갔다가 나오려는 길에 입구 앞에서 수 많은 사람들이 사진을 찍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잠시 그 풍경을 기다리고 있다가 관광객들 사이로 기모노를 입은 한 여인의 발목이 살짝 보이는 순간에 사진을 담았습니다.

 

기온 거리를 지나 청수사의 노을을 보기 위해 걷기 시작했습니다. 한 시간 넘게 걸리는 꽤 먼 거리였지만 골목골목마다 아름다운 사찰과 나무로 지은 독특한 건물들 덕분에 시간 가는 줄 몰랐습니다. 기모노를 입고 봄나들이를 즐기는 사람들의 행복한 표정을 관찰하는 것도 좋았습니다. 어딘지 모르게 수줍은 표정으로 데이트를 하는 커플의 모습을 담았습니다. 마침 오후 4시가 넘어 제가 좋아하는 노릇노릇한 햇빛이 사람들을 비추었을 때, 그 대비에서 만들어지는 순간들을 발견하는 것 또한 즐거운 일이었습니다.

벚꽃이 가득 피면 더 아름답다는 유명한 산책로인 철학의 길을 걸으면서 듬성듬성 핀 벚꽃들을 마주쳤습니다. 작지만 눈부신 만남이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릅니다. 남들보다 부지런히 봄날을 맞이한 화려한 벚꽃 나무 사이로 때마침 할머니 한 분이 자전거를 타고 나타나 주셔서 좋아하는 사진이 한장 만들어졌습니다. 평소 식물 사진은 잘 찍지 않는 편인데 가끔씩 홀로 피어난 벚꽃을 만나면 반가운 마음에 몇 장 찍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조금씩 다가오는 봄바람을 느끼며 시간을 보냈습니다.

교토에 가면 꼭 들리고 싶던 카페가 하나 있었습니다. 부부가 운영하는 작은 카페인 Wife&Husband. 유명 관광지와는 살짝 떨어진 곳에 있지만 그 곳에서 마신 커피와 카페에서 보낸 시간은 손에 꼽을 만큼 아름다웠습니다. 부부의 사랑이 느껴지는 카페 분위기도 마음에 들었습니다. 따스한 햇살이 들어오던 정문 밖으로 손님을 안내하던 아내 분의 모습이 좋아 사진으로 남겼습니다.

 

길지 않았던 교토 여행에서 M10을 들고 마지막으로 찾아간 곳은 이나리였습니다. 아마 교토를 상징하는 또 하나의 이미지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붉은색의 길다란 나무 기둥들이 쭉 이어지는 장소입니다. 워낙 인기가 많다 보니 찾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텅 빈 풍경을 찍는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저는 늘 사람 많은 곳에서 사람 없는 것처럼 찍는 일에 꽤나 익숙한 편입니다. 이것 또한 저만의 시선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어느 찰나의 순간에 기모노를 입고 걸어 내려오는 그녀들의 모습에 빛이 살짝 올라갔고, 그것은 놓칠 수 없는 순간이었습니다.

이나리를 나와 기차역으로 돌아오는 길에 기모노를 입고 나들이를 나온 어린 학생들을 만났습니다. 여전히 전통적인 것들을 지켜가며 기모노를 입고 있었지만 그녀들의 시선은 각자의 스마트폰에 고정되어 있었습니다. 과거와 미래 어디쯤엔가 놓인 교토와 사람들의 모습 같아서 사진으로 남겼습니다. 비록 풍성한 벚꽃은 만나지 못했지만 제가 좋아하는 사람 냄새 나는 순간들을 많이 담을 수 있어 의미 있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아쉽게도 만나지 못한 풍성한 벚꽃은 다시 한번 오라는 뜻으로 알고 다음 만남을 기약하기로 합니다.

 

 

“내가 라이카를 사랑한 이유”

필름 카메라 M6을 시작으로 라이카와 인연을 맺은 이후로 지난 10년간 라이카를 제 메인 카메라로 사용해 왔습니다. 라이카의 첫 디지털 M 모델인 M8을 시작으로, M9와 M240을 거쳐 최근에 M10을 영입했습니다. 저를 만나는 분들이 간혹 왜 라이카를 사용하냐고 묻곤 합니다. 사실 라이카를 사용하는 사진가는 많지만 메인 카메라로 활용하는 경우는 드물기 때문이지요. 제가 라이카를 사랑하는 것은 바로 촬영의 순간에 처음부터 끝까지 제가 직접 컨트롤할 수 있어서 입니다. 수동 조작과 레인지파인더 방식을 무척 좋아하고 그것이 제가 라이카를 사용하는 이유입니다. 물론 실패할 확률도 있긴 하지만 말입니다. 라이카 M의 가장 마음에 드는 점은 세대가 바뀌어도 카메라의 기본적인 부분에 큰 변화가 없다는 점입니다. 항상 사용해 오던 익숙함은 마치 한 몸처럼 카메라를 빠르게 조작할 수 있게 해줍니다. 최신 이미지 센서와 더 작고 가벼운 바디로 품질과 기동력을 살려 주는 라이카의 전통과 혁신의 조화가 마음에 들어요.

라이카 M10의 장점 중 하나는 상단에 들어간 ISO 조절 다이얼입니다. 사소한 부분이지만 촬영 중에 쉽게 감도를 바꿀 수 있어 무척 편리했습니다. 고감도 ISO에서의 퍼포먼스도 무척 인상적입니다. 지금까지 디지털 M 카메라들은 빛이 부족한 곳에서는 사용하기 힘들었습니다. M240만 해도 ISO 1600 정도가 사실상 한계였습니다. 물론 상황에 따라서는 ISO를 3200까지도 올리긴 했지만 그것은 말 그대로 극한의 상황일 때에 한해서입니다. 라이카 M10은 이런 의미에서 진정한 고감도를 실현한 M 모델입니다. 어둠이 찾아온 기온 거리에서 게이샤들을 쫓으며 사용해본 결과, ISO 16000까지도 사용할만한 수준을 보여 줬습니다.

동영상 촬영 기능도 과감히 없애고 몇 개의 버튼만 남겨두고 간결하게 완성시킨 후면부의 변화도 무척 마음에 듭니다.

라이카 M은 오직 사진을 찍는 행위에만 몰두하게 해주는 단순함을 가졌습니다. 며칠 간 교토의 거리를 걸으며 사용해본 결과 현재까지 나온 디지털 M 모델 중에 가장 완성된 카메라라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앞으로도 이 녀석과 세계 각지에서 담아낼 순간들이 기대됩니다.

글•사진 | 케이채 사진가

 

케이채(채경완, K. Chae)

<Fine Art Street Photography>

10년 넘게 50개국 이상의 나라를 여행하며 꾸준히 사진 작업을 해오고 있는 사진가.

꾸며지지 않는 사람과 순간을 담아내는 캔디드 포토그래피를 기반으로 화보를 연상시키는 컬러풀한 그만의 색감을 통해 예술 거리 사진을 추구한다. 소니, 네이버, 현대카드, 라이카 코리아 등 상업 사진과 공연 사진 등을 작업해 오고 있으며 다양한 매체 기고와 강연 등을 진행하고 있다.

 

사진집

아프리카 더 컬러풀 (2014)

마음의 렌즈로 세상을 찍다 (2013)

지구조각 시리즈 (2011)

 

사진전

아프리카 더 컬러풀 갤러리 이룸 (2014)

마음의 렌즈로 세상을 찍다: 사진위주 류가헌 (2013)

꿈꾸는 카메라 in 차드: 사진공간 빛타래 (2013)

The Wandergraphy: 사진공간 빛타래 (2012)

지구조각: 가회 갤러리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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