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2월 19일 일요일  /  날씨: 흐리다 비가 옴

“누구세요?”

“택배요.”

택배 아저씨는 언제나 반가운 손님이 아닐 수 없다.

글•사진 | 조주현 기자

 

 

수집욕

애들이나 가지고 놀법한 장난감을 하나둘 사 모으다 보니 어느새 방안은 거짓말 조금 보태 발 디딜 틈도 없다. 이런 나를 보고 여동생은 애정 결핍증이라고 놀려댄다. 요즘 ‘키덜트’라는 말이 심심찮게 들린다. 키덜트(Kidult), 어린이를 뜻하는 ‘키드(Kid)’와 어른을 의미하는 ‘어덜트(Adult)'의 합성어.

아이 같은 감성과 취향을 가진 어른을 가리키는 이 말은 어찌 보면 나 같은 사람에게 딱 맞는 말인지도 모르겠다. 내 호주머니를 털어가려는 장사꾼들의 속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자진해서 호주머니를 탈탈 털리는 데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지 않을까.

드디어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택배 상자를 뜯는다.

가만 돌이켜 보면 이런 내 수집벽은 초등학교 시절부터 시작됐다. 우표, 딱지, 팽이, 미니카, 스티커, 책받침, 지우개까지. 수집의 대상이 될 수 있다면 어떤 물건이든 운명처럼 이끌렸다. 어른이 된 후로 밥벌이 정도는 스스로 하게 되자 수집이라는 취미는 단순히 취미의 범주를 넘어서, 내 삶을 움직이는 기제로 작용했다. 갖고 싶은 것을 갖고자하는 욕망은 그리 쉽게 사그라지지 않는다. 내가 어렸을 때도, 그리고 현재도, 아마도 영원히...

 

 

포켓몬 GO 열풍

요즘 들어 동네 구석구석을 이리저리 헤매는 거동 수상자들이 빈번히 목격되고 있다. 이유는 바로 요즘 한창 유행 중인 <포켓몬 GO>라는 게임 때문이다. 이 게임은 포켓몬이라는 인기 게임 캐릭터를 AR 기술을 통해 현실에서 포획하는 게임이다. 242종(얼마 전 업데이트가 이뤄졌다)에 달하는 포켓몬을 모두 수집하는 것이 이 게임의 최종 목적. “그걸 잡아서 뭣에 쓰냐? 혹시 국이라도 끓여 먹나?” 라고 물어보면 “포켓몬이 거기 있잖아.“ 라고 대답을 할 트레이너(포켓몬을 잡는 사람)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최초의 포켓몬 마스터(포획할 수 있는 모든 포켓몬을 잡은 자에게 부여되는 영광스러운 칭호) 미국인 닉 존스의 말을 들어보자. ”모든 포켓몬을 다 잡고 포켓몬 마스터가 되는 것은 어린 시절부터 꿈이었지만 실제로 내가 최초의 마스터가 될 것이라곤 포켓몬을 다 잡을 때 까지도 생각하지 못했다.“ 닉 존스의 이 한마디는 수집의 속성을 담담한 어조로 날카롭고 명쾌하게 설명한다.

그냥 좋으니까...하다 보니... 수집 자체가 수집의 최종 목적이 되는 것. 그것이 바로 수집의 본질이라는 통찰이 이 짧은 말 속에 담겨있다.

 

 

사진 수집

과거 성남은 청계천과 영등포, 용산 개발로 살 곳을 잃은 철거 난민들이 판자촌을 지어 삶을 이어가던 곳이다. 1980년대 후반에 이르러 판자촌이 포화 상태에 다다르자 정부는 <도시 저소득 주민의 주거환경을 위한 임시 조치법>을 제정하고 헐레벌떡 이 달동네를 만들기에 이른다.

 

 

대학에 들어가 처음 받은 과제는 학교 주변 달동네 구석구석을 촬영하는 것이었다. 학년이 올라가도 이 과제는 미제 사건처럼 나를 따라 붙었다. 범인은 잡히지 않았고, 탐문과 잠복 그리고 긴 수사가 이어졌다, 학우들 사이에선 투정하는 소리가 나올 법도 했다. 하지만 이 과제는 애초에 정답이 없었다. 하지만 성과는 있었다. 하루는 날이 참 좋아서, 미리 봐둔 낮은 담장의 초록색 대문 집을 향해 발걸음을 재촉했다. 해가 질까 싶어서. 그 집은 해가 질 때 장미꽃 그림자가 참 예뻤다. 언덕길을 한참 오르다 잠시 숨을 돌리려 어느 집 대문 앞에서 담배 한 대를 입에 물었다.

그러다 그 집 대문에 붙은 쪽지 한 장이 눈에 들어왔다.

“담배 피지 마세요. 사람 사는 곳입니다.”

 

 

그 짧은 문장이 왜 그렇게 생생하고 섬뜩하게 들렸는지 아직도 모르겠다. 누가 말이라도 건 듯 소스라치게 놀랐던 기억이 난다. 가만히 보니 그 동네는 유독 대문 앞에 하얀 종이에 쓴 쪽지가 많았다. 워낙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한데 부대껴 사는 동네라 쪽지는 조심스럽게 의사소통을 하는 방편이었으리라. 쪽지들을 하나하나 읽고 있자니 주인장의 성격과 사연, 얼굴 생김새까지 다 보였다. 마치 집 주인이 종이에 달라붙어 입을 뻥끗거리는 것 같은 착각까지 들 정도였다. 사방에 쪽지가 붙어 있으니 그야말로 동네가 왁자지껄하다. 수집벽이 다시 발동한 것은 다름 아닌 이때부터였다. 카메라를 꺼내 한 장 한 장 쪽지를 찍어나가기 시작했다. 구도니 노출이니 신경 쓰지 않고 릴리즈 버튼을 눌렀다. 그런 건 다 쓸모없는 일이다. 수집이라는 건 그런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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