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계속 살고 싶어요. 그리고 유명한 모델이 될 거예요.”

경기도 안산의 한국 이민자 지원 센터에서 만난 임알리나(16)는 두 눈을 반짝이며 또박또박 자신의 꿈을 말한다. 이제 중학교 3학년이 되는 그는 먼저 한국에 온 아버지를 따라 2년 전 어머니와 남동생과 같이 우즈베키스탄에서 한국으로 왔다. 임알리나는 고려인 4세다.

고려인

고려인은 러시아를 비롯한 구소련 국가에 주로 거주하면서 러시아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한민족 동포를 뜻한다.

구한말과 일제강점기 때 독립운동가들과 토지를 뺏긴 농민들은 가난과 억압을 피해 연해주(블라디보스토크) 지역으로 이주했다. 그러나 1937년 일본인과 구별할 수 없다는 이유와 함께 스탈린의 정치탄압과 소수민족에 대한 억압으로 고려인들의 강제이주 조치가 실행됐다. 이들은 좁은 화물칸 기차에 강제로 실려 한 달 동안 약 6,000km를 달려 옛 소련 땅인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키르기스스탄, 조지아 등에 흩어졌다. 지금으로부터 81년 전 일이다. 당시 강제이주 했던 조선인은 ‘고려인 1세대’가 됐고 고려인 2~3세를 이루며 그곳에 터를 잡고 생활했다. 1992년 소련이 15개 공화국으로 분리, 독립돼 각국의 국민으로 나뉘었다. 이후 고려인들은 중앙아시아의 경제 악화와 소수민족으로 남은 고려인들에 대한 차별로 인해 더 나은 삶을 꿈꾸며 한국 땅을 찾았다.

 

고려인 4세는...

고려인 3세대까지는 1992년 제정된 ‘재외동포의 출입국과 법적 지위에 관한 법률(이하 재외동포법)에 의해 재외동포로 지위를 얻는다. 이들은 방문 취업비자인 H-2 비자를 얻거나 F-4 비자로 일정 기간 한국에 체류하며 취업 활동을 할 수 있다. 하지만 부모를 따라 동반 비자로 한국을 온 고려인 4세는 재외동포법상 동포로 인정하지 않는다. 법적으로 고려인 4세는 ‘외국인’에 해당한다. 그래서 이들은 성인이 되는 만 19세가 되면 한국을 떠날 수밖에 없는 처지다.

임알리나(오른쪽)가 경기도 안산시에 위치한 한국 이민자 지원 센터에서 안성환 씨에게 한국어 교육을 받고 있다.
임알리나(오른쪽)가 경기도 안산시에 위치한 한국 이민자 지원 센터에서 안성환 씨에게 한국어 교육을 받고 있다.

한국의 고려인

한국 이민자 지원 센터에서 한국어를 교육하고 있는 안성환 씨는 “문화에 가장 기본이 되는 건 언어라고 생각합니다. 고려인은 조선족과 달리 옛 소련 정부에서 한국어를 배우지 못하게 하는 정책으로 인해 한국말을 전혀 못 해 한국에 적응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고 말하며 고려인들이 한국에 적응하는데 어려움을 전했다. 이어 “일반 학교에서 한국말로 수업을 하는데 잘 알아듣지 못하는 고려인들은 뒤처질 수밖에 없죠. 그래서 여기 오는 아이들에게 항상 자존감을 높여 주려 노력합니다.”라고 전하며 한국에서 차별받을 고려인 아이들에게 한국어 교육뿐 아니라 긍정적인 에너지를 심어주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었다.

임알리나가 한국어 수업에서 공모전을 위한 글을 작성하고 있다.
임알리나가 한국어 수업에서 공모전을 위한 글을 작성하고 있다.
임알리나가 한국어 수업에서 공모전을 위한 글을 작성하고 있다.
임알리나가 한국어 수업에서 공모전을 위한 글을 작성하고 있다.

임알리나의 꿈

고려인인 임알리나를 처음 만났을 때 한국 생활에 적잖이 어려움이 있어 낯선 사람을 만나기 꺼릴 거로 생각했지만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한국을 좋아하는 꿈 많은 긍정 소녀였다.

한국 생활에 어려움은 없는지 묻는 말에도 “한국말을 못 해서 처음에 학교생활이 힘들었어요. 하지만 한국 좋아요. 친구들도 잘 해줘요. 그리고 한국 음식도 좋아요. 동대문 갔을 때 좋았어요.”라며 한국에 대해 애정을 느낄 수 있었다.

패션 드로잉을 하는 임알리나
패션 드로잉을 하는 임알리나
아쟁 연주 때 사진 일기, 방학 숙제, 그림 등이 임알리나의 책상에 놓여 있다.
아쟁 연주 때 사진 일기, 방학 숙제, 그림 등이 임알리나의 책상에 놓여 있다.

이날 진행한 한국어 수업에서 설 연휴 기간에 가족과 함께 롯데월드를 다녀온 이야기도 나누고, 다문화가정을 위한 수기 공모전에 지원할 글도 작성하며 2시간여 진행된 한국어 수업이 금세 지나갔다. 임알리나와 남동생(임올렉)과 함께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며 임알리나 가족의 집에 방문했다.

임알리나 임올렉 남매가 이야기를 나누며 집으로 향하고 있다.
임알리나 임올렉 남매가 이야기를 나누며 집으로 향하고 있다.

알: 알기 모르게 이쁜

리: 리나 ♡ Happy birthday!

나: (우리)나라 와 줘서 고마워! –예림-

알리나의 방 한쪽엔 생일을 축하해 주는 반 친구들의 3행시들이 귀엽게 붙어 있다.

모델이 꿈인 임알리나는 한 의류 회사에 SNS를 통해 지원한 내용을 핸드폰으로 보여주기도 하고, 교복 모델에 지원했던 일을 신나게 얘기했다. 그리고 직접 디자인 스케치한 스케치북과 GKL 사회공헌재단과 서울예술대학교에서 진행한 청소년국악단에서 아쟁을 연주했던 일을 기록한 사진 일기장을 자랑하듯 보여주는 모습이 영락없는 꿈 많은 귀여운 사춘기 소녀였다.

임알리나(왼쪽부터), 어머니 임레일라, 동생 임올렉이 미소짓고 있다.
임알리나(왼쪽부터), 어머니 임레일라, 동생 임올렉이 미소짓고 있다.
화장을 하는 임알리나. 영락없는 여학생의 모습이다.
화장을 하는 임알리나. 영락없는 여학생의 모습이다.

“노력해서 한국 영주권을 받을 거예요. 한국에 계속 살고 싶어요.”

임알리나는 재외동포법에 의해 고려인 4세는 동포로 인정되지 않는 것에 대해선 잘 모른다. 하지만 한국이 좋아 한국에서 계속 살고 싶은 마음은 단호했다. 언젠가 모델과 사진기자로 만날 날을 기약하며 인사를 나눴다.

모델이 꿈인 임알리나.
모델이 꿈인 임알리나.

아, 그리고 임알리나는 모델 외에 다른 꿈이 하나 더 있다.

“나중에 모델이 되고 돈을 많이 벌어서 30살이 되면 호텔 사장이 될 거예요”

나는 곧장, 15년 뒤 스위트 룸 공짜 숙소를 예약했다.

글·사진 이상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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