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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규범을 벗어난 패션 포토그래퍼 정재인

 

을지로나 종로의 좁은 골목길 어디쯤일 것 같은 정돈되지 않은 공간, 낮인지 밤인지 구분하기 힘든 강렬한 붉은 조명 아래 한 모델이 무심하게 카메라를 응시하고 있다. 그 뒤로는 높은 빌딩과 낮고 허름한 주택가가 혼재한 흑백 도시 사진이 겹쳐진다.

일반적이지 않은 사진. 강렬한 사진.

예쁘지 않은 사진, 그러나 아름다운 사진.

사진의 첫인상이다.

정재인 작가는 강렬한 색감과 실험적인 사진을 선보이고 있는 패션 포토그래퍼다. 현재 일본 JRAA 에이전시에 소속되어 다양한 패션 브랜드의 사진 작업을 하고 있다. 규범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패션 사진을 구축하고 있는 정재인 작가를 만났다.

 

인터뷰 진행 이상민 기자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패션 사진가 정재인입니다. 2002년에 사진을 시작해서 지금까지 패션 사진만 고집하고 있습니다. 2010년 독립해 주로 브랜드 AD(art director)로 활동을 했습니다. 그러다 2016년 사진집 [RAW IMG] 출간 후 일본 JRAA(Japan Rep Agency Association) 소속의 C-LOVe CREATORS 에이전시에 가입되어 패션 사진가로서의 활동 범위를 넓혀가고 있습니다.

패션 포토그래퍼 정재인

어떤 활동을 하고 계시는지 궁금합니다.

주로 해외 브랜드의 촬영 레퍼런스가 아닌 독창적인 이미지를 원하는 신진 디자이너 브랜드의 룩북이나 캠페인 촬영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다양한 장르 중 패션 사진을 하게 된 계기, 혹은 사진을 시작한 계기가 어떻게 되나요?

대학 때 디자인을 전공하다 보니 작업에 필요한 사진을 직접 촬영해서 사용하고 싶었습니다. 아르바이트해서 카메라를 구매했고, 당시 촬영한 사진들을 간단한 글과 함께 블로그에 연재했는데 예상보다 많은 분이 호응해 주셨습니다. 그때 제 블로그를 관심 있게 지켜보던 광고 사진 스튜디오 실장님께서 어시스턴트 자리를 제의 하셨고, 그때가 계기가 되어 지금까지 사진을 하게 됐습니다.

패션 사진의 매력은?

처음 사진을 시작할 당시엔 한 번도 본 적 없는 화려한 환경과 결과물이 좋았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클라이언트가 요구하는 퀄리티에 근접하기 위해 수많은 요소를 통제해야 하는데, 그로 인해 끝없는 숙제가 생겨나는 점이 즐거웠습니다. 피사체나 환경 혹은 의도하는 무드에 따라 빛을 활용하는 방법이 완전히 달라지는데 이런 것들을 하나 하나 해결해 나가는 과정도 재미있습니다.

최근엔 역량 있는 신진 디자이너들과 교류하면서 기술적인 접근보다 패션 사진의 본질적인 즐거움을 만끽하고 있습니다. 단순히 클라이언트의 주문에 응답하기보다 디자이너와 함께 호흡하며 최선의 결과물에 도전할 수 있는 점이 가장 큰 매력이라면 매력입니다.

일본과 한국을 오가며 작업하시는데, 사진에 대한 한국과 일본의 문화적 차이점이 있나요?

가장 큰 차이점이라면 클라이언트가 사진가에게 결과물을 요구하는 방식과 과정에 있습니다.

한국 상업 사진의 오래된 관행 중 하나가 레퍼런스에 충실하게 작업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사진가 혹은 유행하는 Tone & Manner를 그대로 만들어 내길 요구합니다. 그래서 촬영에 요구되는 Tone & Manner와 상관없이, 경력이 화려하거나 비용이 맞는 사진가에게 일을 맡겨 원하는 결과물을 만들어내게 합니다.

반면 일본의 경우 레퍼런스를 제공하기는 하지만 대략적인 참고 자료로써 활용하는 정도고, 하나부터 열까지 새로 만들어가는 분위기입니다. 그리고 해당 촬영에 적합한 Tone & Manner를 구사하는 사진가를 고용합니다. 이러다 보니 사진가의 경력과 무관하게 한국의 경우 뭐든 잘 흉내 내주는 ‘업자’로서 대우하는 느낌이 강하고, 일본의 경우 ‘작가’로 대우하는 느낌이 강합니다.

촬영을 준비하는 과정에서도 차이를 보입니다. 한국의 경우 준비 기간이 짧고 촬영 중에 유동성이 큰 반면 일본의 경우 준비 기간이 길고 적당히 하거나 계획에 없는 것을 시도하기 어렵다는 것에 큰 차이가 있습니다.

작가님의 사진을 보면 상업 패션 사진에서 흔치 않은 강렬한 색감과 개성있는 모델과 포즈, 독특한 배경들이 눈에 띕니다. 순수 사진과 상업 사진의 경계에 있는 것 같기도 하고요.

한국의 경우가 앞서 말씀드린 관행 때문에 조금은 특이한 환경입니다. 해외의 경우 패션 사진 혹은 패션 포트레이트를 작업하는 사진가들이 자신만의 미적 가치를 가지고 파인 아트를 진행하고, 작품 창작 시 클라이언트가 참여하면 해당 촬영은 커머셜 아트의 경계로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다 보니 해외의 경우 좀 더 다양한 색깔을 내는 작가들이 상대적으로 많습니다. 예를 들어 패션 포트레이트로 유명한 작가 중 유르겐 텔러(Juergen Teller)가 그렇고, 데이비드 라샤펠(David Lachapelle) 또한 그렇습니다.

제 작업의 경우 패션 촬영의 범주 안에 들어있는 것은 맞지만 주로 "청년과 도시의 상실"에 대한 주제로 작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제 사진이 기존에 볼 수 있던 패션 포트레이트와 다르게 느낄 수밖에 없는 이유는 온전히 제가 생각하는 아름다움을 기준으로 촬영이 진행된다는 것이고, 제가 의도한 메시지가 전부인 촬영이기 때문입니다. 이 지점에선 파인 아트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점이 맘에 들어 클라이언트가 의뢰해서 진행되는 촬영은 상업 사진의 경계에 들어가게 되는 것이죠.

이러다 보니 뭔가 트렌드로 규정되는 규격 외의 결과물들이 나오게 되고, 한국에선 조금 생경한 방식의 활동을 하는 사진가처럼 보이게 되는 것 같습니다.

 

 

영감은 주로 어디서 얻나요?

골 목길에서 주로 영감을 얻습니다. 사람들이 많은 곳을 좋아하지 않아서 큰길로 다니지 않고 골목길을 선호하는 편입니다. 큰 길가나 번화가의 경우 누군가가 표준화시킨 아름다움으로 꾸며져 있는 경우가 많은데 인적이 드문 골목의 경우 규격화되지 않은 예외적인 풍경들과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리고 시간의 흔적이 오래 담긴 것들도 많아서 다양한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좋아하는 사진 작가는?

나즐로 모홀리 나기(Laszlo Moholy Nagy)를 가장 좋아합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사진가로서 현대 사진에 이 사람만큼 새로운 방향성과 가치관을 제시한 사람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패션 사진가로서 자신에게 영향을 줬던 사건은?

사진집 [RAW IMG] 출간이 가장 큰 사건이었습니다. 2015년 즈음 과로로 인해 건강이 악화되어 장기간 일을 쉬어야 했습니다. 사진가로서 자존감과 건강 모두가 만신창이였던 시기였습니다. 진지하게 사진을 그만둬야 할지 고민했습니다. 이때 어차피 그만둘 거 하고 싶은 사진은 다 해보고 그만두라는 부인의 조언으로 예전부터 제가 하고 싶었던 스타일의 사진을 촬영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SNS에 사진을 업로드 해보라는 부인의 권유에 따라 SNS를 통해 제 사진을 공개하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생각보다 많은 분이 제 사진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고, 계획에도 없던 사진집을 제작하게 됐습니다. 당시 일을 오래 쉬고 있어서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이었는데 홍은주, 김형재 디자이너의 도움으로 무사히 책이 나올 수 있게 됐습니다.

사진집 출간을 시작으로 패션 디자이너들이나 브랜드에서 촬영 제의가 들어오기 시작했고, 밑져봐야 본전이란 생각에 해외 유명 에이전시들에 사진집을 보낸 결과 여러 에이전시에서 연락을 받게 됐습니다.

 

최근 기억에 남는 작업은?

이한철 디자이너와 함께 작업한 2018 SS 룩북 촬영입니다. 보통 디자이너 브랜드 촬영의 경우 컬렉션이 전부 나온 다음에 촬영에 대해 고민하는 일이 많은데, 이 촬영의 경우 컬렉션 준비 단계에서부터 디자이너와 상의하면서 진행한 작업입니다.

약 6개월 동안 컬렉션의 방향성이나 이상향에 대해 전해 들으며 사진으로 어떻게 표현하는 것이 좋을지에 대해 정교하게 논의를 진행했습니다. 준비 기간이 길다고 꼭 결과가 좋을 수 없지만, 이 촬영의 경우 준비한 기간에 걸맞은 완벽한 결과물이 나왔습니다. 그리고 이 컬렉션을 통해 이한철 디자이너는 베스트 디자이너상을 수상하게 됐습니다.

HANCHUL LEE 2018 SS LOOKBOOK

 

 

패션 사진가로서 자신만의 강점

대형 스튜디오 출신이고, AD(art director)로 활동한 기간이 길었던 만큼 아무리 작업 규모가 커도 균일한 이미지 품질과 빠른 납품 속도를 제공하는 점이 강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의류 외에도 일반 잡화, 수제 가죽 소품, 코스메틱, 액세서리, 쥬얼리, 등 다양한 브랜드의 AD(art director)를 해온 덕에 포트레이트 뿐만 아니라 패션에 관계된 대부분의 촬영을 진행할 수 있는 것 또한 큰 강점입니다.

 

가장 즐겨 사용하는 장비는?

카 메라는 딱 히 브랜드를 가 리는 편이 아 니지만, 고 화소 지 향의 풀프레임 바디나 대형 인화가 필요한 경우 중형 바디를 선호합니다. 최근 사용하고 있는 바디는 소니 α7R III입니다. 렌즈는 SEL2470GM, SEL70200GM 같은 줌렌즈를 필수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조명은 중대형 조명보다 소형 스트로보를 선호하는 편입니다.

Sony a7R III
sel2470gm
sel70200gm

소니 카메라를 사용하는 이유, 장점은?

2016년쯤 세계적인 스톡 이미지 업체인 G사의 시애틀 본사 직원과 우연히 만날 일이 있었는데, 그때 소니 이미지 센서에 대해 극찬했던 것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마침 소니 프로 포토그래퍼 모집 광고를 보게 됐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지원했습니다. 운 좋게도 프로 포로그래퍼로 선정이 됐고 1년여간 원 없이 소니 하드웨어를 써볼 기회를 얻게 됐습니다.

소니 카메라를 써보며 여러 장점을 알게 됐는데 그 중 가장 와닿는 부분은 역시 센서 성능이고, G마스터 렌즈의 뛰어난 성능이었습니다.

 

소니 프로 포토그래퍼로 활동하시고 계시는데 앞으로의 사진 작업이 궁금합니다.

사진집을 시작으로 진행됐던 촬영이 한국에선 어느 정도 마무리가 된 것 같기도 하고, 아무래도 거주지가 한국이다 보니 일본 활동에 제약이 생겨서 올해 안에 일본으로 이주할 생각입니다. 일본으로 거점이 바뀌게 되면 현재 진행하고 있는 촬영의 세계관을 넓혀가는 작업에 좀 더 집중하게 될 것 같습니다.

어떤 포토그래퍼로 기억되고 싶은지요.

아직은 많이 멀었지만 언젠간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패션 사진가로 기억되고 싶습니다.

이상민 기자  esang_vdcm@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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