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용수로서 춤을 출 수 있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다, 라고 한 무용수는 이야기한다. 이윽고 그는 돌아오지 않을 무용수의 한정된 순간들과 그들의 가장 젊고 아름다운 순간들을 담기 위해 카메라를 든다고 말한다. 바로 현역 무용수이자 포토그래퍼로 활동하고 있는 김윤식 포토그래퍼의 이야기다.
그의 사진에는 무용수만이 담아낼 수 있는 무용수의 모습이 담겨 있다. 무용수가 찍는 무용수, 최근 ‘2018 소니 프로 포토그래퍼’로 선정되어 활동 중인 김윤식 포토그래퍼에게 무용과 사진에 관해 물었다.

 

 

‘무용수를 찍는 무용수’라는 타이틀이 특별하게 다가온다. 무용은 어떻게 접하게 되었는가?
어렸을 적 첼리스트이신 어머니의 영향을 받아 첼로와 피아노를 배웠고, 친형은 중학교 3학년 때 어머니의 권유로 처음 발레를 시작했다. 당시 주말에 집에 혼자 있는 게 싫어서 형이 다니는 무용 학원에 따라가게 되었는데, 그때 형이 춤을 추는 걸 보고 남자가 춤추는 게 굉장히 멋지다는 생각에 바로 다음 날 무용 학원에 등록했다. 그렇게 무용을 시작했다. 주변에서는 어머니가 첼리스트이시고, 아버지가 체육 선생님이시기에 어머니의 음악과 아버지의 체육이 만나 무용이 나왔다고 이야기한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국립발레단을 거쳐 현재는 체코국립발레단에서 무용수로 활동하고 있다고 들었다. 체코행을 결심한 이유는 무엇이었나?
한국에서 활동하면서 하고 싶었던 일들에 대한 한계에 답답함을 많이 느꼈다. 이미 유럽에서 활동하고 있던 동료들로부터 많은 정보를 들었고, 자유로운 환경에서 일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 오랜 고민 끝에 만족하지 못했던 부분들을 충족시키기 위해 유럽행을 택했다. 무작정 발레단에 사직서를 내고 7개 정도의 발레단 면접을 본 끝에 합격한 곳이 이곳 체코국립발레단이었다. 현재는 생각했던 것 이상의 목표들을 이루고 있다.

 

 

현역 무용수로 활동하면서 사진을 찍게 된 이유가 궁금하다.
국내 발레단에서 활동하던 중 긴 휴가를 받게 된 적이 있었다. 휴가를 헛되게 보내기 싫어서 배워보고 싶었던 것 중 하나인 사진을 직장 동료와 배우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무용 사진을 찍지 않고 스트릿 사진을 찍었었다. 많은 사람을 만났고 스트릿 포토그래퍼들에게 새로운 카메라의 정보와 세팅법 등 다양한 것을 배웠다. 이후 발레단 생활이 분주해져 자연스레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무대 뒤의 모습들, 동료 무용수들의 사진을 찍게 될 수 있었다.

본격적으로 사진을 시작하는 데 큰 영향을 준 요소가 있나?
어렸을 때 아버지가 필름카메라 야시카 FX-3로 사진을 많이 찍어주셨는데, 자연스럽게 형과 함께 집에 있던 비디오카메라나 사진기로 사진과 영상을 찍었다. 이후 사진 찍는 것에 꾸준히 관심이 있었고, 대학생 때는 자전거를 타고 가다가 길에서 우연히 남현범 작가에게 사진을 찍혔다. 몇 마디 대화를 주고받지 않았지만 명함을 받고 그의 블로그를 찾아봤는데 나의 삶과는 또 다른 삶을 살고 있는 다른 사람의 모습이 정말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공연을 하며 사진 작업하는 일이 쉽지 않을 것 같다. 보통 무용과 사진의 시간적 비율은 어떻게 조정하는 편인가?
현재 활동하고 있는 발레단에서의 일과는 오전 10시 출근, 오후 6시 퇴근이다. 그게 아니라면 공연하는 날이 대부분이다. 춤을 추는 시간 외에는 거의 사진 작업을 한다고 봐도 무방하다. 무대에 서다 보면 많은 회의감에 빠질 때도 있고 공연 직후 따라오는 공허함에 무기력해질 때가 많다. 무대에 서기 위한 몇 분을 위해 몇 달 동안 고통스럽고 힘든 시간을 보내는데 그 시간이 단 한 번, 단숨에 사라진다는 게 참 아쉬웠다. 그런 부분을 사진에서 많이 충족했고, 지금도 변함없다.


현역 무용수로서, 현재 활동하고 있는 무용수를 촬영한다는 일은 굉장히 특별한 경험일 것 같다. 실제로 어떠한가?
확실히 많은 무용수들이 일반 촬영과는 달리 마음을 많이 여는 편이다. 특별히 발레에서는 동작의 정확성을 많이 요구한다. 일반적으로 무용수를 촬영한 사진을 보면, 무용수의 동작이 정확하지 않거나 끝맺음이 없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같이 무대에 서고 같이 호흡하는 입장으로서 어떠한 동작이나 순간이 정확한지 알고 있기 때문에 동료 대부분이 신뢰한다.

 

 

촬영한 모든 작품에서 섬세하면서도 강렬한 분위기가 느껴진다. 사진으로 전달하고자 하는 이야기와 메시지는 무엇인가?
사실 사진에서의 강렬함은 인위적으로 꾸미거나 의도하지 않은 순간일 때가 가장 크다고 생각한다. 무용수의 삶은 사실 길지 않다. 누구나 젊은 나이에 은퇴를 걱정해야 하고, 준비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현재 하고 있는 무대나 무대 뒤 연습실에서 춤추는 순간을 정말 소중히 여긴다. 순간 아름답게 핀 꽃이 사그라드는 것처럼 내가 찍은 사람들이 훗날 내 사진을 보며 ‘정말 이 순간이 내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웠지’라고 생각하길 바라며 기록하고 있다. 


특히 ‘찰나’의 순간에 집중한 촬영, 장소와 인물을 연계하여 촬영하는 사진이 눈에 띈다. 보통 촬영하기 전 움직임이나 장면, 배경 등의 구상을 모두 마치고 작업을 하는 편인가?
스튜디오에서는 무용수의 움직임에 집중하는 편이고, 야외에서는 배경을 우선시하는 편이다. 실내에서 무용수들에게 움직임의 틀과 분위기를 이야기하면 대부분은 자신만의 느낌으로 다시 해석하는데, 이 점이 매력적이다. 그래서 전적으로 무용수들에게 맡기는 편이고, 반대로 야외에서는 무용수들만의 분위기가 많이 다르기 때문에 배경을 정하고 무용수와 콘셉트를 상의한 후에 내가 원하는 동작에 가까운 작업을 하는 편이다.


무용 사진을 촬영할 때 가장 중요시하는 가치는 무엇인가?
어떤 것이든지 영원하지 않다고 느끼면 사람들은 그 가치를 높일 것이고, 사진가들은 그것을 기록하고 싶어 하는 게 당연할 거라 생각한다. 나 역시 마찬가지로 돌아오지 않을 젊음의 순간들, 비교적 짧은 무용수들의 삶을 기록하고 싶다.
 

 

동적인 피사체를 역동적으로, 찰나의 순간을 의도대로 잡아내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 본인에게 맞는 카메라를 찾을 때 어떤 요소를 최우선시했나?
의도대로 잡아낸다는 게 정말 쉽지 않은 것 같다. 먼저, 내 작업에 필요한 요소들에 맞춰 빠른 AF, 정확한 초점, 노이즈 억제력 이 세 가지를 가장 중점적으로 생각했다. 움직임의 방향성이 크고 거리의 이동이 큰 피사체를 촬영하며 감도를 어느 정도 높일 수 있는 환경에서 소니 a9이 최적이라고 생각했다. 이미 친형이 소니를 사용하고 있었고, 형의 추천으로 소니를 사용하게 되었는데 현재까지도 내 작업 방식에 최적인 카메라라고 생각한다.


실제 무용 사진 촬영 시 a9의 역할은 어떠한가?
우선 AF가 빠르고 정확하다. 사실 a9을 쓰기 이전에는 연사 모드를 사용하지 않았는데, a9에서 연사를 사용해보니 가히 최고라 할 정도로 만족도가 높다. 또 무대 뒤에서 촬영할 때 무대 조명이 꽤 센 편이라 뒤에서 비추는 조명에 의해 핀이 나가는 경우도 많은데 현재까지는 핀에 대한 문제점이 거의 없을 정도다. 무소음 셔터 역시 유용하게 쓰고 있다. 무용수들이 공연 준비를 하거나 리허설 중 셔터 소리를 들으면 무의식적으로 카메라를 의식해서 부자연스러운 사진이 나오게 된다. 하지만 셔터 소리가 없으니 훨씬 더 자연스럽고 인위적이지 않은 사진들을 담을 수 있다.


작업 과정에서 얻은 무용 사진 촬영 노하우가 있다면?
무용수와 함께 호흡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무용수마다 호흡이 다 다르고 동작의 과정 역시 전부 다 다르기 때문에 감각적으로 순간을 잡아내는 능력이 필요하다. 아무리 뛰어난 무용수와 작업하더라도 사진가가 그 무용수의 호흡과 타이밍을 모른다면 작업 시간은 2배, 3배 더 길어진다. 작업 시간이 길어지다 보면 무용수가 지치게 되고 촬영을 시작했던 초반의 에너지나 동작의 느낌이 전혀 나오지 않고, 사진가가 원하는 느낌과 계속 멀어지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무용수와 사진가가 함께 호흡하는 일이 중요하다.

 

 

최근 '2018 소니 프로 포토그래퍼'로 선정됐다. 향후 사진가로서 어떤 계획을 갖고 있는지 궁금하다.
사실 대단한 계획이라기보다는 작은 목표들이 있다. 첫째는 유럽에 있는 여러 발레단에서 공식 포토그래퍼로 일을 하고 싶고, 둘째는 지금과 같이 천천히 그리고 꾸준히 한다는 마음가짐으로 계속해서 무용수들과 작업을 이어나가고 싶다. 그리고 나만이 찍을 수 있는 사진들로 유럽 다수의 극장과 갤러리에서 전시를 열어 투어를 다니고 싶다.


무용과 사진, 본인에게 이 둘의 관계는 어떠한가?
무용으로 부족한 부분들을 사진이 채워주고 사진으로 부족한 부분들을 무용이 채워주고 있다. 항상 무용이 7이면 사진은 3 정도 되었는데 지금은 5:5 정도로 자리 잡은 것 같다. 무용하면서 스트레스를 받거나 슬럼프가 올 때 사진으로 힐링을 하곤 하는데 사실 이 부분이 엄청나게 크다. 주변 동료들을 보면 무용하며 받는 스트레스를 푸는 법을 모르거나 취미까지 없는 경우가 허다한데 나는 사진으로부터 많은 스트레스를 풀고 있다.


앞으로 무용수와 사진가로서 어떻게 기억되기를 바라는가?
이 질문은 처음 받는 것 같다. 질문을 들으며 다양한 생각이 들었는데, ‘사진가로서 어떻게 기억되고 싶은가’라는 질문은 아직 이른 것 같고, 무용수로서는 어떤 무대든지 최선을 다하고 최고를 보여주는 무용수로 기억되고 싶다.
 

인터뷰 진행 김유미 기자

 

 

김윤식

현) 체코국립발레단 드미 솔리스트
2014 아이즈매거진 X 아디다스 우먼스 런닝화 화보 촬영
2014 씰리침대 런칭 화보 촬영
2015 레페토 코리아 F/W 화보 촬영
2017 <어쩌다 마주친 발레> 사진 저자(작가 윤지영)
2017 개인전 <화양연화>, 갤러리 책책
2018 소니코리아 제2기 프로 포토그래퍼 선정
2018 파리 <Ballet Coutures> 초대 단체전,
갤러리 ALFALIBRA
2018 개인전 <Breathing> Museum of Decorative arts
in Prague(프라하 장식미술 박물관)
2018 체코국립발레단 시즌 포스터
2019 체코국립발레단 달력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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