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많은 아날로그를 위한 디지털을 꿈꿉니다”

현상소 ‘포토마루’ 대표 민광훈

세상에는 많은 손이 있다. 각자의 위치에서 활약하는 이 많은 손들이 모여 우리 사는 세상을 만들어 나간다. 에서는 우리 시대의 ‘손’에 주목했다. 나와 다른 필드에서 열심히 일하는 누군가의 손이 있기에 이 세상은 더욱 풍요롭고 윤택해지는 법. 이번 달은 지금까지도 꾸준히 필름작업을 이어가는 사람들을 위해 현상소를 운영하고 있는 민광훈씨의 손이다.


글ㆍ사진|채동우 기자

아직까지 디지털이 따라오지 못하는 부분이 있다

2012년 1월, 필름의 대명사 ‘코닥’이 파산했다. 사실 이미 2000년대 중반을 넘어서면서 필름 사용자는 급격히 줄기 시작했고 코닥의 파산은 예견된 사실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코닥이 방만하게 회사를 운영한 것은 아니었다. 사업구조가 필름부문에 집중되어 있을 뿐이었고 시장이 디지털로 재편되는 동안 우왕좌왕했을 뿐이다. 만약 미래를 예측하지 못한 것도 방만의 범주 안에 든다면 코닥을 옹호해줄 그 어떤 것도 남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코닥이 적절한 대응책을 찾지 못하는 동안 카메라 제조사가 필름시장까지 삼키기 시작했다. 아날로그 시절의 몇몇 렌즈는 디지털과 함께 생명을 이어가고 있다지만 라이카와 같이 소수에 불과할 뿐이고 사진을 찍는 카메라는 디지털로 대체된지 오래다. 그렇다면 필름은 이제 생을 다한 매체일까? 민광훈씨는 아니라고 말한다.

“물론 2000년대 초반 정도만큼 많은 사람들이 필름을 사용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필름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아예 없어진 것은 아닙니다. 퍼센트로 따지자면 적겠지만 한 명 한 명 숫자로 세어보면 여전히 꽤 많은 사람들이 필름으로 사진을 찍고 있습니다. 이젠 디지털이 많은 부분에서 필름보다 우위에 있지만 여전히 디지털이 따라오지 못하는 부분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단순 숫자로만 따져도 디지털이 필름보다 우위에 있다. 135필름의 해상력이 3600만 화소 풀프레임 디지털 카메라를 따라가는 것은 불가능하다. 고감도 촬영에서 부드러운 입자감도 디지털이 우위에 선지 오래다. 그런데도 여전히 필름만이 가지고 있는 매력이나 장점은 무엇일까?

“색상의 포화도라고 할까요. 색의 풍부함은 여전히 필름이 낫습니다. 특유의 계조와 톤, 콘트라스트는 디지털이 따라올 수 없는 부분입니다. 사진에서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디지털은 아날로그를 추구합니다. 아날로그와 가장 비슷해지는 것이 디지털의 목표지요. 예컨대 라이카에서 발매한 M 모노크롬은 최근에 만들어진 디지털 바디 중에 가장 필름과 가까운 이미지를 만들어줍니다. 그러나 수많은 흑백필름이 가지고 있는 각각의 특성을 모두 재현할 수는 없습니다. 또한 정확하게 필름 이미지와 맞아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최대한 가깝게 묘사를 할 뿐입니다. 그 오리지널리티는 아직까지 필름만의 것입니다.”

민광훈 씨가 디지털 시대를 안타까워하는 이유는 단순히 필름이 가지고 있는 몇 가지 더 나은 이유 때문만은 아니다. 다양성이 무시되고 획일화되어 가는 것이 안타깝다고.

포토마루에서 현상 ㆍ 스캔 받은 사진들.

민광훈 대표가 현상된 슬라이드 필름을 보고있다.

손님들의 사진을 작업하며 같은 시간을 살고 있음을 느껴

“물론 최근 코닥의 파산으로 또 몇 종의 필름이 다시 쓸 수 없게 됐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수많은 종류의 필름 자신의 취향에 맞춰 사용할 수 있습니다. 그 뿐만 아닙니다. 중형 카메라로 가면 디지털은 선택의 폭이 확연히 줄어듭니다. 예를 들자면 필름 중형 카메라는 6×45, 6×6, 6×7, 6×9, 6×12까지 다양한 포맷을 커버합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나온 디지털 중형 카메라는 이렇게 다양한 포맷을 구현하지 않습니다. 대형 카메라의 경우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아무리 디지털카메라가 좋아졌다고 해도 대형필름의 판형 자체에서 오는 공간감은 절대 따라갈 수 없는 영역이기 때문입니다.”

필름도 필름이지만 그가 아쉬워하는 것은 이미지의 보관 방법이다. 디지털 시대가 오고 나서 인화에 대한 필요성을 느끼는 사람이 줄어든 것.

“한 때 너도 나도 싸이월드에 일상 사진을 올리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어느날 갑자기 그 모든 것이 페이스북으로 옮겨왔죠. 그리고 잊어버립니다. 하드디스크나 CD등의 매체는 주기에 따라 또다시 데이터를 옮겨야 안전하게 보관할 수 있습니다. 각종 클라우드 서비스도 마냥 안전하게 믿고 데이터를 올리기는 불안합니다. 하지만 간단히 인화를 하게 되면 소중한 순간을 담은 사진을 오랜 시간 큰 걱정 없이 보관할 수 있습니다. 이미지의 결과물이 아날로그처럼 보이기 위해 오랜 시간을 투자해 후보정을 하면서 정작 가장 최종 결과물인 인화에 대해서는 다들 관심이 없어요. 인화물이 가장 완벽한 아날로그 이미지인데 말이죠.”


포토마루 손님들의 필름파일
그렇다면 이토록 사랑해 마지않는 필름을 10년이 넘는 시간동안 현상하고 스캔하며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무엇일까?
“글쎄요. 특정 손님이 기억난다고 말하긴 애매하네요. 오랜 시간 이 일을 하면서 만난 손님이자 친구와 같은 분들의 필름을 만지면서 보게 되는 이미지들. 그 수많은 사진을 보면서 그들과 함께 같이 살아가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가질 때가 있습니다. 오랜 단골의 필름을 현상하고 스캔하다 보면 누군가는 이별을 하고 누군가는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누군가는 결혼을 하고 또 다른 어떤 사람은 자신을 닮은 2세를 낳기도 하지요. 비록 내가 사는 삶은 아니지만 이 세상 어딘가에서 분명 있었던 일을 보면서, 그들의 일상을 보면서 넓은 세상을 살고 있는 느낌이 듭니다. 이 일을 하는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감정이 아닐까요?”
민광훈 씨가 운영하고 있는 현상소 포토마루의 영문 홈페이지에는 다음과 같은 문구가 있다. ‘Digital for more Analogue’ 그렇다. 그도 분명 디지털 시대를 살고 있는 21세기 사람이다. 그도 스마트폰을 사용하고, 컴퓨터로 필름을 스캔 받고, 인터넷 홈페이지에 스캔 이미지를 업로드하는 서비스를 제공한다. 그러나 그가 사진과 관련된디지털 작업을 하는 궁극적인 이유는 보다 많은 아날로그를 위해서다. 어두운 서랍 한귀퉁이에서 잠자고 있는 카메라를 위해, 그리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그 순간을 담은 필름을 위해 그는 오늘도 현상소 셔터 문을 들어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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