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많은 손이 있다. 각자의 위치에서 활약하는 이 많은 손들이 모여 우리 사는 세상을 만들어 나간다. 에서는 우리 시대의‘손’에 주목했다. 나와 다른 필드에서 열심히 일하는 누군가의 손이 있기에 이 세상은 더욱 풍요롭고 윤택해지는 법. 이번 달은 직접 금속을 깎아 핀홀카메라를 만드는 현광훈 씨의 손이다.

글ㆍ사진|채동우 기자

세운스퀘어에 위치한 작업실. 이 문 뒤에 카메라를 깎는 현광훈 작가가 있다.

현 작가가 대학시절 처음 만들었던 핀홀카메라.

내손으로 직접 카메라를 만들다

하루가 멀다 하고 새 카메라가 쏟아진다. 사람들은 손에 들린 카메라를 내팽개치고 반짝이는 눈으로 새로운 장비
에 모든 시선을 돌린다. 내 것이 아닌 욕망에 내 것이 버림받는 일이 벌어지는 것이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이는 디지털 카메라의 숙명이라고 봐도 틀린 말이 아니다.

이처럼 1년 사이에 내 카메라가 구식이 되어 가는 지금, 시계바늘을 거꾸로 돌리며 카메라를 직접 만드는 사람이있다. 단단한 금속을 갈고 깎아 카메라의 원형이라 부를 수 있는 핀홀카메라를 만들고 있는 사람, 현광훈 작가다.

그는 대학에서 금속디자인을 전공했다. 그렇다면 그의 학교생활은 어땠을까? 언뜻 보기에는 열정적으로 수업을 듣고, 열심히 작품을 만들었을 것 같지만 카메라를 만나기 전까지는 큰 흥미가 없었다고.

“솔직히 말하면 대학 시절 전공수업이 재미있었던 건 아니예요. 어영부영 대학을 다니다 군대를 전역하고 복학했죠. 한창 싸이월드가 유행할 때였고 너도나도 디카로 사진을 찍어서 웹에 올리던 시절이었습니다. 저도 사진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고 작은 디카를 하나 사서는 교양수업까지 듣게 됐어요. 그런데 그 당시 들었던 교양수업이 저를 여기까지 끌고 오리라고는 생각도 못했죠.”

해당 수업의 과제중 하나가 핀홀카메라로 사진 찍기 였던 것. 그는 전공을 살려 금속판을 접어 핀홀카메라를 제작했다. 처음에는 종이로 만들려고 했으나 내구성을 높이고 조금 더 안정적으로 사진을 촬영하기 위해 금속으로 만들었다고. 그렇게 시작된 핀홀카메라와의 인연은 졸업까지 이어졌다. 하지만 졸업작품을 핀홀카메라로 정하고 만드는 데까지 난관이 있었다.

“일반적으로 금속조형디자인과에서는 장신구, 조명, 제품, 가구 등을 다룹니다. 수업 커리큘럼 중에 카메라는 없지요. 당연히 수업시간에 본격적으로 카메라를 만드는 게 현실적으로 어려웠습니다. 그러나 겨우겨우 교수님을 설득해서 진행할 수 있었습니다. 초반에는 교수님 모두가 반대하셨지만 막상 졸업작품 전시에서는 제 핀홀카메라가 좋은 평을 들었어요.”

현 작가는 학생 당시 카메라를 꾸준히 만들 수 있었던 원동력으로 내가 직접 만들어서 사진을 찍는 즐거움을 꼽았다. 하지만 현재는 단순한 즐거움에서 한 발 더 나아간 작품을 만들고 있다. 그렇다면 지금의 현광훈이 지향하는 카메라는 어떤 것일까?

셔터부가 무브먼트로 작동되도록 만들어진 첫 카메라 Heartbeat 1.

기계적ㆍ미학적으로 아름다운 작품을 만들고파

“대학을 졸업하고 곧장 직장생활을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직장에서 일을 하는 동안 간절하게 하고 싶었던 일은 따로 있었습니다. 바로 카메라를 만드는 일이었어요. 결국 1년 남짓의 직장생활을 과감히 접고 조금 더 공부를 하기 위해 대학원으로 진학했습니다. 대학원 과정 동안 꾸준히 카메라를 만들었어요. 그리고 초창기에 카메라를 만들던 마인드와는 조금 다른 생각으로 카메라 제작에 접근했습니다. 기계적 완성도에 미학적 완성도까지 더하고 싶은 욕심이 생긴거죠.”

일반적으로 핀홀카메라는 아주 단순한 구조로 이뤄져있다. 하지만 그가 최근에 만들고 있는 핀홀카메라는 전혀 딴판으로 생겼다. 기존의 핀홀카메라는 사용자가 임의로 셔터를 열고 닫아야 했지만 현 작가가 만든 핀홀카메라에는 기계식 셔터가 장착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놀랍게도 셔터부의 구동장치에 시계의 무브먼트를 그대로 가져왔다. 물론 작은 기어 하나까지도 그가 직접 깎아 만들었다. 셔터 작동법도 시계 조작법과 거의 같다. 크라운을 빼서 원하는 시간만큼 바늘을 돌리고 셔터를 누르면 정확히 그 시간 후에 셔터가 닫힌다 .

“사실 저는 조형미를 표현하는 능력이 다른 작가들에 비해 떨어지는 편입니다. 하지만 기계적인 메커니즘을 설계하고 만들어내는 기술은 조금 더 뛰어나다고 생각해요. 두 가지 능력이 서로 시너지효과를 낼 수 있는 작품이 카메라가 아닐까 생각하는데 꾸준히 작업하다보면 언젠가는 조형적인 아름다움도 따라올 거라 믿습니다.”

그에게 시계는 롤모델이다. 조형적인 아름다움과 기계적 완성도를 최대치까지 끌어올린 작품으로 보는 게 맞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단출하게 시작했던 작업실이 이제는 무브먼트를 만들기 위한 각종 공구와 선반으로 꽉꽉 들어찬 것도 그와 같은 이유 때문이다.

처음 무브먼트를 삽입해 만들었던 카메라는 지금 그의 손에 없다. 그의 첫 직장 대표가 흔쾌히 비용을 지불하고 사간 것. 그리고 지금 다시 새로운 설계를 적용한 무브먼트 핀홀카메라를 제작 중에 있다. 동일 설계로 단 10대만 만들 예정이다. 시제품도 없는데 벌써 그에 대한 소문을 들은 외국인 2명이 주문을 한 상태다.

“그동안 참 많은 기계식 카메라를 뜯어봤습니다. 카메라 바디의 안과 밖은 전혀 다릅니다. 수많은 기어들이 오밀조밀하게 박혀서 사용자가 필름을 장전해주길 기다리고 있지요. 서로 맞물린 기어의 아름다운 모습을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카메라의 셔터부를 시계무브먼트에서 차용했듯, 다른 장치들도 전혀 다른 아이디어의 아날로그 장치들로 꾸며야겠죠. 물론 그 아름다운 구동모습을 사용자가 볼 수 있는 형태로 설계할 예정입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카메라가 제 손을 떠났을 때 누군가에게 실사용기로 호평 받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감상용으로 칭찬받았으면 좋겠습니다.”

그의 작업 책상 위에는 손때 묻은 공구가 빼곡히 들어차 있다.

카메라의 모든 부품은 직접 깎아서 만든다.


단출하게 시작했던 작업실이 무브먼트를 만들기 위한 각종 공구와 선반으로 꽉꽉 들어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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