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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寫眞)과 예술(藝術)에 대한 단상(斷想)

      딱 30년쯤 전 요맘때였다. 논산 30연대에서 카투사 훈련을 마치고 용산 미8군 사령부에 배치받은 바로 다음 날에, 내가 머물게 될 숙소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Main Post에 있는 레크리에이션 센터에서 열린 사진 전시회를 관람할 기회가 생겼다. 마침 통역병 업무의 선임으로 현장 교육(On the Job Training)을 담당하던 바로 위 선임이 가벼운 교통사고를 당해서 입원하는 바람에 뜻밖의 자유시간이 새파란 후임자인 내게 주어진 건 큰 행운이었다. 원래 사진을 좋아했던 터라 한 작품 한 작품 자세히 감상하고 있었는데 소령 한 명이 내게 다가와서 말을 걸었다. 그리고는 이 우연한 만남이 계기가 되어서 그에게 무려 1년 동안 카메라 조작법에서부터 현상, 인화를 위한 암실 작업까지 매주 서너 시간씩 업무가 끝나고 사진 공부를 하게 되었다. 그때 그 소령(Major Kemp)이 내게 던진 첫 질문이 바로 “What do you think it is to take pictures, soldier?”였고, 나는 갑작스러운 질문에 별생각 없이 이렇게 대답했다. “It is the best way of capturing memories, Sir.” 지금 생각해보면, 기억을 담아내는 최고의 방법이 사진을 찍는 것으로 생각했던 나의 속마음이 엉겁결에 내 입술을 움직이게 했던 것이 아닐까?

      사진을 뜻하는 영어 Photograph는 그리스어로 ‘빛’을 뜻하는 'phos'(소유격은 photos)와 ‘쓰다, 새기다’의 뜻을 가진 'graphein'에서 유래한 말이라고 한다. 그리고 물체의 형상을 감광막 위에 나타나도록 찍어 오랫동안 보존할 수 있게 만든 영상을 사진이라는 단어가 모두 아우른다고 보았을 때, 문학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유한한 인간의 기억을 보존하고 생각과 사상을 정리하여 전달하기 위한 방식으로 주로 사용하는 기록물이라는 측면에서는 많은 부분을 공유하고 있음은 틀림없는 사실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사람들은 사진은 있는 그대로를 담을 뿐이기에 그 속에는 찍는 사람의 생각이나 감정 등이 개입되지 않은 무미건조한 것이라고 말하는 경우도 있지만, 나는 다르게 생각한다. 눈으로 보지 못하는 것, 때로는 우리의 눈이 놓치는 것을 카메라는 담을 수 있다. 그리고 똑같은 장면을 찍은 여러 장의 사진들이 완전히 다른 느낌과 메시지를 전하는 것을 우리는 많이 목격할 수 있다. 외부 세계를 그대로 복사한 것이라면 예술적인 의미를 만들지 못할 수도 있겠지만 실재를 개인의 감정과 의지 및 철학을 가미하여 독창적인 현실로 옮기는 과정이 있는 경우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다시 말해서, 거장들의 위대한 미술품이나 음악들과는 다소 다른 부분이 있을지 몰라도, 사진도 보이는 현상을 자신만의 관점과 주관으로 다시 창조해 낼 수 있는 예술적 요소들을 가지고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물론 <사진을 찍는 사람들이 누구 하나 빠짐없이 예술적 가치를 염두에 두고 작품을 만들어 내야 하는가?> 라는 명제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많이 있지만, 예술적 가치를 함유한 사진과 그렇지 않은 것은 큰 차이점을 보이는 것도 간과할 수 없는 부분이다. 따라서 사진 예술은 인간의 내면의 세계를 분명하게 담아낼 때 예술적 가치를 지니게 된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사진을 시각적 언어로 간주한다면 사진을 통해 사진을 찍는 사람의 메시지와 미학과 외침을 들을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다음 두 장의 사진을 비교해보자.

1. 이 사진은 시골 장터에서 할머니와 손녀가 어묵을 두고 한참 동안 실랑이를 벌이다가, 결국은 할머니께서 쌈지를 열어서 지폐 한 장을 꺼내 자신은 아니 드시고 손녀에게만 2개를 사주시던 모습을 보고, 돌아가신 어머님과 장터 구경하던 추억을 떠올리며 “내리사랑”을 표현해보려고 셔터를 누른 것이다.

2. 이 사진은 스페인 여행을 하던 중, 마드리드에서 2시간 남짓 지나서 남부 지방인 콘수에그라(Consuegra)에 도착했을 때 파란 하늘에 눈이 부시도록 하얀 풍차들이 너무 아름다워서 그냥 셔터를 눌렀다.

 

 

      그렇지만 메시지의 전달성과 예술적 가치를 강조한 이러한 내 생각만이 모두 옳다고 고집하진 않겠다. 멋진 풍광을 옮겨놓은 듯이 그려낸 풍경화나 궁중의 파티를 위해 작곡한 실내악곡 등과 같은 거장들의 작품들이 그저 단순한 아름다움과 즐거움을 주기 위한 작품이라고 해서 예술품의 범주에서 제외하는 사람들은 아무도 없지 않은가? 그렇게 본다면 창작물에서 의도적 메시지의 존재 여부는 그리 중요해 보이지는 않는 것 같기도 하다.

      뭐라고 딱 잘라 말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지만, 언어이든, 색채이든, 소리이든, 아니면 영상이든 다양한 매체를 활용해서 인간이 자신의 감정이나 생각, 주장, 철학을 담아내거나 아니면 단순히 오감에 즐거움을 더해주기 위한 목적으로만 창작하든지 상관없이, 인간의 모든 표현 행위는 나름의 의미를 본태적(本態的)으로 갖는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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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범 기자  hispeace2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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