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원(興園)

 앞서 설명하였듯이 흥선대원군의 묘는 세 번에 걸쳐 이장을 하였다. 맨 처음 흥선대원군은 1898년(광무2년) 2월 경기도 고양군 공덕리(현 서울 마포구 공덕4동)의 운현궁 별장 '아소당'에 뒤뜰에 묻혔다가, 10년 뒤  경기도 파주 운천면 대덕동(현 경기도 파주군 문산읍 운천리)으로 옮겨졌다. 그 후 1966년 흥선대원군의 묘는 또 한 번 자리를 옮겨 이곳 남양주시 창현리로 오게 된다. 파주 흥원 일대에 들어선 미군 군사시설이 원인인데, 그래서 후세 사람들은 흥선대원군은 죽어서도 파란만장한 수난을 겪었다는 평가를 내리고 있다.

 그런 과정에서 묘소의 원형은 사라지고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고 방치되고 파괴된 흔적이 역역하다. 한 눈에 몰락한 왕조의 모습을 보는 것 같다.

 가장 파괴가 심한 곳은 묘소 입구에 있는 신도비(1890년)인데 곳곳에 총탄 자국도 있고 비문은 알아볼 수 없다.

 그리고 묘소에 올라가는 오른편에 또 다른 묘소가 있는데 이곳은 미루어 짐작컨대 흥선대원군의 집안의 가계묘원인 듯하다. (아무런 안내 표지판이 없다)

다행히 이곳은 흥선대원군의 본 묘역 보다 파손이 덜한 석상들이 모여 있다. 흥선대원군 묘 앞의 파손이 심한 망주석(望柱石)에 비해 이곳의 망주석은 말끔하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이곳도 파손의 흔적이 있다

 묘역을 수호하는 석상들도 오히려 대원군 묘역 보다 한 쌍(虎石)이 더 있는 것이 특이하고 그 표현 솜씨도 부담 없고 편안하다.

 이곳에 들러 감상할 것은 석상들의 세부사항들이다. 비록 파괴의 흔적이 많지만 가만히 살펴보면 매우 정교하고 흥미로운 표현들이 많음에 주목할 수 있다.

 망주석(望柱石)의 좌우에 있는 조각상을 살펴보면 한 편에는 올라가고 다른 편에서는 내려가는 형상의 다람쥐를 볼 수 있다. 동쪽 다람쥐는 촛불을 켜기 위해 올라가는 것이고 서쪽은 끄고 내려오는 것을 의미한다니 재미있다. 솔방울마저 섬세하게 표현하였다.

흥선대원군 본묘역의 망주석
흥선대원군 본묘역의 망주석

그러나 이 쪽 가족묘원에서는 분명 다람쥐와는 다른 형태의 모습이 새겨져 있는데 이를 세호(細虎)라 하여 나쁜 기운을 막아주는 벽사(辟邪)의 의미라 한다.

가족묘원의 세호(細虎)
가족묘원의 세호(細虎)

‘세호는 조선 제 1대 태조의 왕릉인 건원릉에서 머리와 꼬리만의 모양으로 처음 등장하며, 조선 제11대 중종 왕릉에서부터 뚜렷한 형상을 갖춘 세호가 나타나기 시작한다. 조선후기부터는 사대부와 중인들의 묘지의 망주석에도 세호가 등장하기도 한다.’ [네이버 지식백과] 세호 [細虎])

細虎
細虎

그 밖의 문인석과 석상들을 찬찬이 살펴보면 그 표정과 표현들이 흥미로움을 느낄 수 있다

石羊
石羊
石馬
石馬

이제 점점 해가 높아지고 녹음이 깊어지면 더불어 이곳의 풍경도 숲그늘에 덮여 어수선하게 변할지도 모른다. 코로나로 인해 청명하기만 한 봄날 양주지나는 길에 가벼운 발걸음을 권함.

흥선대원군묘(興宣大院君墓 ) 주변의 제비꽃
흥선대원군묘(興宣大院君墓 ) 주변의 제비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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