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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pito, Santa Muerte테피토, 그리고 죽음의 성인

죽음 앞에서는 누구나 평등하다. 부자거나 권력을 가진 인간도 영생을 돈이나 힘으로 살 수 없는 '필연'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갱단 멤버나 매춘부 등, 죽음과 가까이 사는 사람들과 소외계층이 주로 거룩한 죽음의 성인, 산타 무에르테를 찾는다. 이들이 모인 곳이 바로 멕시코의 수도 멕시코 시티에 위치한 테피토이다.

대학 생활 막바지, 4학년 시절 졸업작품으로 멕시코의 주술과 미신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만들기 위해 멕시코로 떠났다. 태평양을 건너, 세 번의 경유지를 지나 도착한 그 곳은 무속신앙이 있는 한국 못지 않게 주술과 미신에 관한 문화가 굉장히 풍부한 곳이었다. 원주민 문화가 강한 와하까부터 옛스럽고 아름다운 마을이 있는 산 미겔 데 아옌데, 마녀들과 주술 치료사들의 마을 카테마코 등 매력적이고 탐구할 가치가 풍성한 지역들을 방문했지만 그 중에서 가장 기억에 깊게 남는 곳은 정작 수도인 멕시코 시티, 테피토에 있었다.

테피토는 멕시코 시티의 센트로 히스토리코(Centro Historico)에서 차를 타고 10분정도 가면 나오는 곳이다. 넷플릭스 시리즈 ‘언거버너블(Ingobernable)’에서 영부인이 테피토로 도망을 가는 장면이 나오면서 한국인들에게 알려지기도 했다. 없는게 없는 시장으로도 유명하지만 현지인들도 꺼려하는 범죄 우발 지역이기도 하다. 2018년 당시 외신에 따르면 공식적으로 집계된 사망 신고는 3.5건으로 전년도에 비해 300% 증가한 비율을 보였다. 경찰도 발 들이고 싶지 않아 하거나 부패한 경찰들이 팽배한다고 전해지는 동네이다.

죽음의 성인이란 Nuestra señora de la santa muerte(거룩한 죽음의 우리 어머니), 통칭 Santa Muerte라고 불린다. 죽음이 여신의 모습으로서 사람들을 치유하고 보호하며, 행복한 내세를 가져다준다고 믿는다. 옛날 아즈텍 문명에서는 죽음을 존경하고 존중하는 풍습이 있었는데, 그 풍습이 카톨릭과 결합이 되면서 멕시코를 중심으로 서민들을 비롯한 주로 소외계층의 사람들이 이 종교를 믿게 되었다. 멕시코인들은 지금까지도 죽음 자체를 우울하고 쓸쓸한 것으로 묘사하는것이 아닌 화려하고 즐거운 축제로 ‘망자의 날(Día de Muertos)'을 기념하고 있다.

앞서 언급했듯 당시 나는 학생이었고 범죄가 빈번히 일어나는 위험한 지역을 나다니는 만큼의 용기는 있어도 값비싼 장비를 도둑맞거나 잃어버릴 용기는 있지 않았기 때문에 가지고 있던 카메라 중 가장 값싼 서브 카메라를 들고 길을 나섰다. 주머니 속에는 지갑 대신 현금 400페소(약 2만원)을 우겨넣고 최대한 눈에 띄지 않을만한 옷을 입었다. 메신저 어플 왓츠앱(WhatsApp)을 통해 친구들에게 실시간 위치 전송을 보내고 평소에는 잘만 이용했던 지하철 대신 우버 택시를 이용하기로 했다. 택시 아저씨는 우버 어플에 내가 입력한 도착지를 보고 눈을 의심했는지 다시한번 핸드폰 액정을 뚫어져라 쳐다보고는, “외국인이 그것도 아시안 여자 혼자서 우리도 안가는 여기를 도대체 왜 가는거야!”라며 잔소리를 시작했다. 나는 할 수 있는 스페인어를 써가면서 아저씨를 안심시켰고 테피토에 다다르자 아저씨는 핸들 옆에 네비게이션을 보기 위해 거치대에 놨던 핸드폰을 다리 밑에 숨겼다. 아저씨는 내가 산타 무에르테를 취재하러 간다는 말에 어느 으슥한 거리에 세워주면서 “나도 잘 모르는데 이쪽 길을 따라 가면 보일거야”라며 한숨과 함께 잘 다녀오라고 말했다.

길을 따라 가보니 점점 사람이 많아졌고 어느 중심부터 사람들이 가득 찬 큰 길목이 나왔다. 사람들은 대부분 산타 무에르테 상을 들고 있었다. 손 크기만 한 것부터 사람보다 큰 것, 후드를 쓰거나 아주 요란한 드레스를 입고 낫을 든 해골모양 등 다양한 크기와 형태들이 있었고 색깔이 무척이나 화려했다. 몇몇 사람들은 길가에 보자기를 깔고 다양한 색상의 산타 무에르테 상과 꽃, 술병을 놓고 앉아 있었다. 길 중심에는 사람들이 줄을 길게 서있었는데 그 줄의 끝에는 산타 무에르테 상을 모셔둔 신당 같은 것이 있었고 어떤 이들은 그 신당까지 산타 무에르테 상을 짊어지고 무릎으로 기어가기도 했다. 

길 가장자리는 비교적 한적해서 영상을 찍기 위해 앞쪽으로 가려고 걷고 있는데 허름한 옷을 입은 남자들이 벽에 기대서 담배를 피고 있었다. 그들에게서는 특유의 담배 냄새가 아닌 이상한 연기 냄새가 났다. 대마초인 것 같았다. 또 산타 무에르테 상을 들고 있는 사람들에게 스프레이나 액체가 든 통을 든 사람들이 손에 든 액체를 뿌려주는 것을 많이 봤는데, 나는 이미 대마초 냄새를 많이 맡은 터라 저 액체가 무척이나 수상하게 보였지만 정작 물어보니 축복을 위한 코코넛 오일이라는 대답을 들었다. 

이때까지도 외국인인걸 대놓고 들키면 위험해 질 거라는 생각에 불편함을 무릅쓰고 얼굴 중 가장 외국인인 것이 티가 날 부위-눈-을 가리기 위해 선글라스를 끼고 있었다. 하지만 이 공간에 있는 사람들 중 DSLR 카메라를 들고 사진과 영상을 찍는 사람은 나밖에 없어 소용이 없었다. 선글라스를 벗었지만 다행히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산타 무에르테에 대한 경배와 의식에 집중을 하고 있어 그저 물끄러미 쳐다보거나 수근거리고 낄낄거릴 뿐 큰 관심을 두지 않았고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카메라를 들고 있는 나를 보고 자신을 찍어달라며 포즈를 취해주었다. 물론 다른 사람들도 촬영을 흔쾌히 허락해 주었다.

다큐멘터리를 위해서라면 당연히 현장감이 느껴지는 인터뷰가 필수지만, 이 수많은 사람 중에 한 명을 골라 이 무섭고도 신비로운 현장에 대한 질문을 해야 한다는 사실에 막막함이 느껴졌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기도를 위해 너무 바빠 보이거나 혹은 너무 위험해 보여서 다가갈 수 없었다. 천천히 길 가장자리에 서있는 사람들로 시선을 옮기며 물색하던 중 품에 보라색 후드가운을 쓴 산타 무에르테 상을 들고 아무런 표정 없이 나를 주시하고 있는 타투가 아주 많은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선글라스를 쓰고 있었지만 그 너머로 ‘겁 없이 악명 높은 테피토에서 비싸 보이는 카메라를 들고 나대는 아시안 여자’를 흥미롭게 관찰하고 있음을 쉽게 알아차릴 수 있었다. 이 순간 어디서 무슨 용기가 났는지 무작정 그 남자에게 다가가 “올라(Hola), 좋은 오후! 인터뷰 가능하세요?” 라고 물었다. 남자는 생각보다 친절하게 인터뷰에 응해주었다. 비록 언어의 장벽에 막혀 많은 것을 묻고 답하진 못했지만 그 순간이 책으로 산타 무에르테에 대해 읽는 것보다 더욱 값지다고 생각했다.

산타 무에르테에 대한 견해는 사람들마다 상이하다. 인터뷰를 한 남자는 “라틴 아메리카 이전의 전통에서 유래한 멕시코 사람들이 죽음을 기념하는 독특하고 위대한 전통”이라며 그 날 테피토에 온 이유에 대해 건강, 안녕, 그리고 산타 무에르테가 자신에게 호의를 베풀어주기를 바라면서 왔다고 말했다. 다른 날 인터뷰를 한 UNAM대학에서 라틴아메리카 역사를 전공한 곤살로(Gonzalo)씨는 산타 무에르테에 대해 역사적 맥락을 알아야 이해가 간다고 전했다.  “1980년대 중반에 신자유주의가 출현하면서 특정 사회 및 정치적 권리를 가진 노동 계급이 약화되기 시작했고, 많은 세대가 노숙자로 남아 실업에 훨씬 더 취약한 현상을 일으켰다. 이들이 큰 산업지역에 일자리를 찾아 몰리면서 쇠퇴가 시작되었다”라며, “그것은 단지 타락으로 힘을 잃은 사람들의 종교일 뿐이다”라고 다소 회의적인 의견을 내비쳤다. 소외 계층과 반사회적인 사람이 믿는 종교로서 따가운 시선들이 존재하지만 나에게는 죽음이라는 개념을 숭상으로 승화하는 그 자체가 아주 흥미롭고 매력적이라고 생각했다.

Información

사진기자로 일하고 있는 친구 에밀리오에 따르면 매달 1일에 사진처럼 산타 무에르테를 경배하는 의식이 테피토에서  열리고 있으며, 망자의 날이 가까운 10월 말에는 더더욱 크게 열린다고 한다.

가는 방법은 멕시코 시내 어디서든지 지하철을 타고 테피토역에서 내리거나 우버를 타면 손쉽게 갈 수 있지만, 테피토는 멕시코에서도 우범지대로 손꼽히는 타쿠바야, 소노라 시장보다도 더 사건 사고가 끊이지 않는 가장 대표적인 동네이다. 현지인들도 이름만 들으면 몸서리 치는 곳이라는 사실을 명심하자. 

김찬희 기자  chanhee_vdcm@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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