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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소화를 담다

대구, 경북 지역에는 이맘 때쯤 능소화를 담을 수 있는 이른 바 3대 국민 포인트라고 불리우는 곳이 있다.
대구 남평문씨 세거지, 경주 동방폐역, 경산시 자인면의 능소화 출사지가 곧 그 곳이다.
워낙 먼거리여서 전날 저녁에 출발하여 경주에 도착, 이른 새벽 일출 시간 전에 동방폐역의 능소화를 담고 바로 경산으로 이동하여 자인면의 능소화를 담은 뒤 대구로 이동, 남평문씨 세거지의 능소화를 담아 보았다.
먼거리여서 두번 세번으로 나누어 갈 수 없는 곳이다 보니 한꺼번에 세 군데의 능소화를 다 담고자 욕심을 부릴 수밖에 없었던 상황이었다.

 

경주 동방폐역의 능소화

 

경산시 자인면의 능소화

 

대구 남평문씨 세거지의 능소화

 

조선 시대에는 꽃 색깔이 화려하고 아름다워서 양반댁의 고가(古家)에 심어 양반꽃이라 불렀다. 또한 사찰의 경내에서는 구경할 수 있었으나 상민의 집에서는 심지 못하게 했다.
중국에서 들어 온 능소화는 능소화과에 딸린 낙엽 활엽 덩굴나무로 약 10m까지 자라기도 한다. 지름 약 6~7cm 정도로 노란빛이 도는 붉은빛의 꽃으로 7~8월에 피며 열매는 9~10월에 익는다.

동의보감에 의하면 뿌리, 줄기, 잎 모두 약재로 사용할 수 있다.

능소화의 꽃말은 명예, 영광, 이름을 날림이다.

능소화에는 슬픈 전설이 있다.

옛날 궁궐에 소화라는 예쁜 궁녀가 있었다. 그녀의 너무나 예쁜 미모에 반한 임금이 소화를 사랑하게 되었고 결국 왕의 성은을 입고 빈의 지위를 얻게 된다. 이에 심통이 난 궁녀들이 소화를 시기하고 모함하여 임금을 화나게 하였고 결과로 소화는 빈의 지위를 박탈당하고 궁 밖으로 쫓겨나게 된다.
소화는 주야로 발길 끊긴 임금을 기다리며 까치발을 선 채로 담장 너머를 하염없이 바라보곤 하다가 결국은 임금에 대한 상사병으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그 뒤로 궁궐 밖에 묻어 둔 소화의 무덤에는 한여름만 되면 곱게 화장한 아름다운 꽃이 피어났는데 마을 사람들은 궁궐 안의 임금을 그리다가 죽은 소화의 이름을 빌어 능소화라 불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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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신만 기자  caridad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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