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은 뜨거운 바람이 불기 시작하던 6월 어느 날, 수동 렌즈로 담은 일상의 기록이다. 발길 닿는 대로 목적 없이 걸으며 시선을 이끄는 취향의 순간들을 담았다.

 

에디터 | 박지인

 

빠르고 완벽한 것을 추구하는 편리한 디지털의 시대. 특유의 감성을 자극하는 아날로그의 매력에 빠지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경복궁 돌담길을 거닐던 중 필름 카메라로 사진을 담는 일행을 여럿 마주하며 필자는 고민했다. 시대를 역행하는, 느리고 번거로운 아날로그의 부활. 그 인기 이유는 무엇일까. 셔터만 누르면 작품이 만들어지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사람의 손으로 완성해가는 사진의 가치를 전하는 Voigtlander의 수동 렌즈, NOKTON 40mm F1.2 Aspherical을 통해 확인해보는 시간을 가졌다.

필자는 사진 생활의 첫 걸음을 빠릿빠릿하게 순간을 포착하는 최신형 디지털 카메라로 시작했다. 사진을 담기 위해 손으로 무언가를 조작하는 경험은 처음인 셈이다. 딸가닥거리는 조리개 링 돌아가는 소리, 파인더 너머 흐릿한 상, 모든 것이 낯설었다. 피사체에 정확하게 초점을 맞추기 위해 한참동안 파인더를 들여다 봐야했고, 초점을 맞추는 결정적인 순간들을 놓치는 경우도 있었다.

이전에 어머니는 필자의 사진을 보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무엇을 찍었는지, 말하고자 하는지 모르겠다”고. 무엇을 찍든 목표를 정하라는 뜻으로 이해했고, 바쁜 촬영 일정에 떠밀려 오랫동안 잊고 살았다. 촬영 도중 문득 어머니의 말씀이 다시 떠올랐다. 지금껏 눈에 보이는 모습을 담기에 급급한 사진을 찍어 온 건 아닐까. 촬영에 필요한 모든 것을 자동화할 수 있는 카메라에 기댄 채, 정작 무엇을 담고자 하는지는 모호하게 남겨둔 채로. 수동 렌즈로 초점과 조리개 링을 돌려가며 촬영하는 일은 꽤 긴 시간을 필요로 했다. 무엇을 찍을 건지, 어떻게 화면을 구성할 건지, 어떤 메시지를 전달할지에 대해 충분히 고민할 수 있었다. 흐릿한 시야 속에서 담고 싶은 선명함을 찾아가는 일은 또렷한 나를 만들어가는 과정과 같았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수동 렌즈로 일상과 우리 주변의 풍경을 담아보면서, 하루가 다르게 첨단화되어가는 카메라 시장에 아날로그 문화가 틈을 비집고 자리를 잡은 이유를 어렴풋이나마 알 수 있었다. 사진이 추구하는 본질에 더 가깝기 때문이다. 우리가 셔터를 누르는 이유는 순간을 영원히 기억하기 위함이다. 아날로그는 한 장 한 장을 담는 행위에 깊이를 더한다. 피사체를 더 신중하게 바라보고, 고민하며 기록하게 된다. 훗날 필자는 이 사진들을 바라보며 당시의 분위기와 공기를 선명하게 기억할 수 있을 것이다. 아날로그는 분명 편리하지는 않지만 여전히 아름다운 기록의 형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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