퓰리처상은 현대 저널리즘의 창시자로 불리는 미국의 언론인 ‘조지프 퓰리처(Joseph Pulitzer)’의 ‘공공봉사, 공공 윤리, 미국 문학, 교육 진흥을 장려하는 상’을 만드는데 사용해 달라는 유언에 따라 1917년에 창설되었다. 이후 매해 4월 뉴스·보도사진 등 15개 부문, 문학·음악 7개 부문을 대상으로 가장 탁월하게 두각을 보인 인물들이 수상해왔다. 신문, 잡지 및 저널리즘 분야에서 세계에서 가장 권위가 있는 상으로, ‘저널리즘의 노벨상’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지난 7월, 1942년부터 2020년까지 사진부문 수상작 134점을 한국에서 관람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세상을 움직인 사진들, 기록의 순간과 역사를 엿볼 수 있는 곳 퓰리처상 사진전을 찾았다.


사진이 오늘날의 우리의 모습을 말할 수 있다면, 
포토 저널리즘은 여전히 힘을 지닙니다
-김경훈(2019년 퓰리처상 수상자)

지난 3차례의 전시를 통해 서울에서만 유료관객 50만 명을 기록한 2014년에 이어 6년만에 다시 한국을 찾은 이번 ‘슈팅 더 퓰리처’는  예술의전당 한가람디자인미술관에서 관람할 수 있다. 평일 오전 일찍 방문한 덕에 입장줄과 발열 체크 줄이 길지 않았지만 관계자의 말에 따르면 주말에는 줄이 무척이나 길어진다고 한다. 시원한 에어컨 바람에 더위를 식히고 입장한 후 처음으로 볼 수 있는 것은 퓰리처상에 대한 간단한 설명과 수상 메달의 모습이었다. 좀 더 내부로 들어가면 미디어아트로 꾸며진 전시장 내부와 가운데에는 2005년 퓰리처상 수상자인 안야 니드링하우스의 인용문 “그가 방아쇠를 당기는 순간, 나는 셔터를 눌렀다.”라는 글을 볼 수 있었다. 2014년 아프가니스탄 전쟁 취재 도중 순직한 그의 특별전은 이번 ‘슈팅 더 퓰리처’와 함께 진행되며, 바로 옆의 제3전시실에서 관람할 수 있다.
 

‘슈팅 더 퓰리처’는  1940년대를 시작으로 연도를 10년 단위로 파트가 나뉘어 시대순으로 관람이 가능했다. 워크라인을 따라 연도별 수상작을 감상하는 것은 시간 순서대로 근·현대 세계사의 큰 흐름을 사진으로 읽는 느낌이었다. 1949년에 나타니엘 페인에 의해 촬영된 미국 야구의 전설 베이브 루스의 은퇴 모습부터 2009년에 데이먼 윈터가 촬영한 미국의 첫 흑인 대통령 후보(당시) 버락 오바마까지, 베트남 전쟁, 베를린 장벽, 구소련의 붕괴, 아이티 재해, 그리고 한국전쟁까지 세계 근·현대사의 핵심적인 인물과 사건들을 담고 있다. 
 

베트남 - 전쟁의 테러, Vietnam – Terror of War, 1973년 Spot News 수상작 by Huynh Cong “Nick” Ut, Photograph courtesy of The Associated Press
베트남 - 전쟁의 테러, Vietnam – Terror of War, 1973년 Spot News 수상작 by Huynh Cong “Nick” Ut, Photograph courtesy of The Associated Press

전시회를 찾은 사람들은 차근차근 사진을 보며 옆에 붙여진 설명들을 읽고 있었는데, 아주 어린 아이들도 있었고 젊은이들과 노인들까지 관람객들의 나이대는 다양했다. 아마 설명 패널들이 사진기자들의 인터뷰를 바탕으로 구성해 사진이 무척 생생하게 느껴져 몰입하기 쉬운 덕분인 듯 했다. 특히나 근·현대사에 관심이 깊은 관객들은 배경지식을 바탕으로 사진과 설명패널 넘어의 역사를 읽어낼 수 있어 사진에 담긴 스토리를 더욱더 자세하게 해석하는 또다른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 또한 다큐멘터리 필름과 퓰리처상 주요 수상작을 미디어아트로 구성한 영상 콘텐츠가 보다 많은 볼 거리와 느낄 거리를 제공한다. 50-70년대까지의 코너에는 전쟁 사진들이 많기 때문에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온 부모들이 다소 잔인한 사진에서는 아이들의 눈을 가려주는 것도 볼 수 있었다.

퍼거슨의 시위, Ferguson Protest, 2015년 Breaking News 수상작 by Robert Cohen, Photograph courtesy of The Associated Press
퍼거슨의 시위, Ferguson Protest, 2015년 Breaking News 수상작 by Robert Cohen, Photograph courtesy of The Associated Press

몇몇 사진은 아주 익숙했다. 특히 필자는 베트남 호치민에서 전쟁 박물관을 다녀온 경험이 있어 베트남 전쟁을 다룬 사진들을 보다 생생하고 자세하게 관람할 수 있었고, 네이팜탄에 모든 것이 타 버려 옷을 버리고 뛰어가는 여자아이의 사진 닉 우트의 ‘전쟁의 테러’같은 경우에는 이미 본 적이 있어 익숙했다. 2013년 케냐 나이로비의 웨스트게이트 몰에서 소말리아의 무장세력이 벌인 테러의 모습을 담아낸 타일러 힉스의 사진 역시 예전에 동아프리카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테러들에 대한 뉴스를 읽었을 때 봤던 사진 중 하나였다. 전시회 내부에서도 일행들끼리 작은 소리로 ‘나 이 사진 알아’하며 아는체를 하는 목소리들을 들을 수 있었다. 그만큼 퓰리처상을 수상한 사진들은 매일 쏟아지는 어마어마한 이미지 중에서 가장 빼어난 사진으로 선택받은, 세상을 바꾸는 힘을 가진 사진들인 것이다.

몇 사진들은 시국과 어우러지기도 하는데, 아직도 현재 진행형인 홍콩 민주화 운동을 담은 사진인 경찰의 시위진압용 방패에 깔린 젊은 여성을 담은 타이론 시우의 ‘홍콩 시위’가 그러했다. 세인트루이스 경찰이 비무장 10대 흑인 소년 마이클 브라운을 사살한 사건에 분노하는 시민의 투쟁을 담은 로버트 코헨의 ‘퍼거슨의 시위’와 1976년 학교 통합 프로그램에 반대하는 백인 남자가 미국 국기봉으로 흑인인 건축도급업자협의의 임원 테오도르를 때리는 장면을 포착한 스탠리 J. 포먼의 ‘옛 영광의 불명예’는 최근에 일어난 조지 플로이드 사건을 떠올리게 했다. 실제로 ‘퍼거슨의 시위’ 사진은 Black Lives Matter 시위가 한참이던 중, SNS에 활발하게 공유되던 사진이었다.

퓰리처상에서 한국국적 기자로서는 처음으로 사진부분 수상을 한 로이터 통신의 김경훈 기자의 작품과 인터뷰 영상
퓰리처상에서 한국국적 기자로서는 처음으로 사진부분 수상을 한 로이터 통신의 김경훈 기자의 작품과 인터뷰 영상

2019년 퓰리처상에서 한국국적 기자로서는 처음으로 로이터 통신의 김경훈 기자가 사진부문을 수상해 이번 사진전이 큰 의미를 갖기도 한다. 김경훈 기자는 지난해 11월 미국 국경 수비대가 쏜 최루탄에서 연기가 피어 오르는 미국 샌디에이고와 국경을 맞댄 멕시코 도시 티후아나에서에서 기저귀를 찬 두 어린아이가 엄마 손을 잡고 달리고 있는 모습을 포착한 사진으로 ‘이민자들의 절박한 모습을 생생하게 담은 놀라운 시각적 묘사’라는 평가를 받았다. 이 사진은 세계 주요 신문 1면을 장식하고 미국에서 큰 반향을 일으켰으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카라반 입국 금지 정책에 대한 비판이 나올 때마다 이 사진이 쓰이기도 했다. 전시장 안에서는 그의 사진, 설명 패널과 함께 인터뷰 영상이 나오는 모니터가 설치되어 있어 잠시 걸음을 멈추고 그가 이 사진을 찍게 된 자세한 경위와 그가 갖고 있는 사진에 대한 생각 등을 들어보았다.

전시가 끝나는 지점에는 퓰리처상 수상자들의 문구들이 벽에 적혀 있었다. “퓰리처상은 역사를 보여주는 거울입니다.”라는 존 화이트의 글부터, 호스트 파스의 “죽어가는 모습을 지켜보며 사진을 찍는 것에 죄책감을 느낍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는 해야 할 일입니다. 세상에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려야 하니까요”, 그리고 스텐 그로스펠드의 “나는 전쟁과 기근으로 퓰리처상을 받았습니다. 제게 주는 의미라고는 오늘도 뒤척이는 불면의 밤이죠.” 까지 희망차고 격려와 감동을 주는 글과 자조적인 글이 모두 존재했다. 역사는 아름다움과 감동을 주기도 하지만 피와 힘으로 쓰여진 잔인한 기록이라는 것을 다시금 상기시켰다. 이를 현장에서 뛰어난 사진으로 포착해 낸 모든 수상자들이 세상을 좀 더 나은 곳으로 바꾸기 위해 기꺼이 위험을 감수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퓰리처상을 수상한 모든 사진들은 세상을 움직이는 힘을 가졌고, 실제로 증명해 냈다. 그중에서도 필자가 퓰리처상 수상작들을 생각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작품이 있는데, 바로 남아프리카 공화국(이하 남아공)의 사진기자 케빈 카터(Kevin Carter)의 ‘수단 아이를 기다리는 게임(Waiting game for Sudanese child)’이다. 남아공의 아파르트헤이트와 수단의 기근 참상을 담아내던 사진기자들에 대한 영화 ‘뱅뱅클럽’에서도 다뤄졌던 사진이었는데, 제목 그대로 케빈 카터가 수단 아요드 인근 수풀 속에서 아이가 굶주림으로 쓰러지길 기다리는 독수리를 찍은 사진이다. 이 사진은 1994년, 뉴욕타임스에 게재되자마자 센세이션을 일으키며 전 세계적인 구호를 이끌어 내어 퓰리처상 수상을 했지만 ‘죽어가는 아이를 내버려 두고 사진이나 찍은 인간성 없는 사진기자’라는 비난과 책망이 빗발쳤다. 실상은 그 당시 수단에서 취재 중인 기자들은 전염병 위험 때문에 현지인과 접촉이 금지되어 있었고 케빈 카터는 이 사진을 찍은 후 바로 독수리를 쫓아내기까지 했다고 한다. 하지만 케빈은 계속되는 사람들의 분노에 “아이를 안아주지 못해 너무나, 너무나 미안했다”라고 친구들에게 털어놓고 많이 힘들어 했으며 결국 1994년 7월, 케빈 카터는 33세의 나이로 자살한 것을 경찰이 발견하게 된다.

 비록 오해였지만 극한의 상황에서 실질적인 도움을 줄지 언론인으로서 관찰과 보도를 할지, ‘저널리즘의 윤리’를 논할 때 빠지지 않는 사진이 된 케빈 카터의 작품 말고도 2013년 보스턴 마라톤 폭탄 테러로 인해 양 다리를 잃은 제프 바우만을 담은 조쉬 헤너의 사진, 화재경보기의 중요함을 알려주는 상징으로 자리 잡게 된 세인트루이스의 소방관 아담 롱이 아이를 구해 인공호흡을 시작하는 장면을 담은 론 올슈웽거의 사진 등 하나의 사진은 열가지 말보다 더욱 더 많은 의미를 내포하기도 한다는 점을 보여주고 때로는 역사에 변화를 미칠 정도로 세상을 뒤흔들기도 한다. 날마다 홍수처럼 쏟아지는 사진들 가운데서 가장 탁월하게 시대의 상징을 가진 목소리를 담은 사진들 만이 퓰리처 상을 받는다. 이러한 사진들의 연대기를 한눈에 볼 수 있는 ‘퓰리처상 사진전-슈팅 더 퓰리처’는 관람하는 사람들에게 무엇보다 값진 경험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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