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프레임 미러리스의 품격

Sonnar T* FE 55mm F1.8 ZA

많은 사진가들에게 칼자이스는 광학계의 전설과도 같은 존재다. 지금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수많은 카메라 렌즈의 원형이자 지금이며 동시에 미래이기까지 하다. 당연히 선망의 대상일 수밖에 없고 소유욕을 들끓게 만드는 렌즈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 독일 브랜드의 이름을 달고 나오는 렌즈 대부분이 일본에서 제작된다. 광학 원천기술에는 독일의 DNA가 박혀있고 제조 노하우에는 일본의 피가 흐르고 있는 제품인 것 . 현재 일본에서 생산 중인 칼자이스 렌즈는 소니에서 자사 카메라 마운트용으로 생산하는 종류와 코시나에서 서드파티 개념으로 만드는 종류를 합쳐 크게 두가지가 있다. 최근 뚜잇(Touit) 시리즈가 발매되기 전까지는 AF를 지원하는 칼자이스 렌즈는 소니제가 유일했다. 그리고 최근 소니가세계최초 풀프레임 미러리스 α7 시리즈를 선보이며 35mm 판형을 커버하는 미러리스용 칼자이스 렌즈도 함께 발표했다. 바로 Sonnar T* FE 55mm F1.8 ZA다.

글ㆍ사진┃채동우 기자

제품사양 <가격 : 109만9900원>
초점거리 55mm
렌즈 구성 5군 7매(비구면 렌즈 3매)
조리개 구성 9매 원형 조리개
조리개 지원 F1.8~F22
최단촬영거리 0.5m
최대촬영비율 0.14배
지원 화각 43도
필터 지름 Φ49㎜
부속 후드 화형 바이요넷 방식
외형 치수 Φ64.5㎜ × 70.5 ㎜
조리개 날개 매수 9 매 (원형 조리개)
무게 281g
기타특징 리니어모터 / 이너포커싱 / 방진방습

목마른 미러리스 유저에게 단비 같은 렌즈


소니의 행보가 거침없다. 특히 작년 말 세상을 놀라게 했던 풀프레임 미러리스 α7 시리즈는 꾸준히 판매량을 늘리며 디지털 카메라 업계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형국이다. 다만 소니의 이렇게 과감한 행보가 너무 카메라 바디에만 치우친 것이 아니가 하는 우려가 있었다. 그러나 소니는 이러한 비판을 예상했다는 듯 FE마운트에 대응하는 렌즈를 꾸준히 발표하고 있다.

특히 소니 카메라만의 특권이라 불리는 칼자이스 렌즈를 3종 발표하며 미러리스 시장 선두자리를 굳건히 하고 있다. 3종의 칼자이스 렌즈 중 가장 보편적이고 대중적인 렌즈는 다름 아닌 Sonnar T* FE 55mm F1.8 ZA다. 표준화각대의 비교적 밝은 조리개 값을 가진 이 렌즈의 설계 역사는 꽤 오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다. 조나는 1929년 칼자이스의 개발자 루드비히 베르테레의 설계로 탄생됐다. 조나(Sonnar)라는 단어는 태양을 의미하는 조네(Sonne)에서 따왔는데 이 이름에서 렌즈의 성격을 유추할 수 있다. 조나는 ‘매의 눈’이라 불리는 테사 설계를 바탕으로 하되 35mm 소형 카메라에 적합한 밝은 조리개 값을 가진 표준 렌즈를 제작하기 위해 개발됐다. 따라서 테사 타입 렌즈보다 복잡한 형태로 구현된다. 뛰어난 선예도, 컨트라스트 재현력, 우수한 플레어 억제력 및 각종 수차 억제에 유리한 설계다.

이러한 유서 깊은 렌즈 설계에 현대의 비구면 렌즈 3장을 적용하고 칼자이스만의 T?코팅이 합쳐진 렌즈가 바로 Sonnar T* FE 55mm F1.8 ZA다.

조리개를 F5.6으로 설정하고 촬영한 사진. 날카로운 묘사력이 느껴진다.

중앙부에서 가장자리로 갈수록 조명의 보케 형태가 완벽한 원형은 아니다.

유리벽에 붙여진 포스터가 표현된 느낌과 흐려진 매장의 느낌이 확연히 다르다.

성능과 개성의 절묘한 밸런스

많은 사람들이 칼자이스가 단순히 렌즈의 화질과 수차에만 천착하는 브랜드라고 생각한다. 혹은 집요하게 성능개선에만 골몰하는, 장인정신으로만 똘똘 뭉친 브랜드로 여기기도 한다. 그러나 단언컨대 이는 오해다. 칼자이스는 단순히 물리적으로 유리알을 깎고 그 위에 코팅을 입혀 렌즈를 생산하는 기계적인 회사가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들은 광학기술이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지, 그리고 사진에서 렌즈가 어떤 부분을 담당하는지를 고려하는 아티스트적인 시선까지 지닌 브랜드로 이해하는 게 맞다. 즉 광학적인 성능을 끌어올리는 동시에 개성적인 표현력까지 담보하는 렌즈를 만들고 있는 것. 조금 쉽게 돌려 말하자면 1등을 놓치지 않지만 노는 데도 일가견이 있는, 잘 노는 모범생이 떠오르는 렌즈다.

Sonnar T* FE 55mm F1.8 ZA의 결과물을 보면 이와 같은 표현이 틀린말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우선 최대개방 이미지를 살펴보자. 극주변부를 제외하면 고른 수준의 해상력과 콘트라스트가 살아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칼자이스의 기술력이 드러나는 부분이다.

그 다음 눈여겨 볼만한 것은 최대개방에서 나타나는 보케 형태다. 최근 생산 렌즈라 믿기 어려운 개성 있는 표현이 도드라진다. 특히 초점을 멀리 둔 다음 피사체와 카메라 사이 공간에 다른 피사체를 걸어놓고 찍었을 때 나타나는 앞 흐림의 묘사가 대단히 인상적이다. 최근 만들어진 렌즈라기보다는 클래식 렌즈에 가까운 느낌이다. 일부러 비점수차를 완벽하게 보정하지 않고 개성을 살렸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어차피 모든 수차를 완벽하게 보정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따라서 수차를 어떻게 어레인지하느냐에 따라 렌즈의 개성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이와 같은 보케의 개성은 단순히 사진이 어떻게 흐려지느냐에만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 피사체와 적당한 거리를 두고 촬영하면 독특한 공간감이 표현할 수 있기 때문. 인물사진이라면 상반신 포트레이트가 아닌 전신으로 프레이밍할 경우 그와 같은 사진을 찍을 수 있다.

초점을 맞춘 피사체는 똑떨어지게 묘사하고 뒷흐림은 아련한 듯 만들어준다. 이와 같은 표현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조리개를 F2.8 이상으로 조이면 된다. 언제 그랬냐는 듯 말끔하게 떨어지는 보케를 만날 수 있다 . 행여나 화질이 떨어질지 모른다는 걱정을 하고 있다면 접어두어도 좋다. 앞서 말한 비점수차는 비구면렌즈를 사용했을 때 나타날 수 있는 현상인데 Sonnar T* FE 55mm F1.8 ZA는 총 3장의 비구면 렌즈를 사용해 우수한화질을 확보했기 때문이다.

비교적 가장자리에 초점을 맞추고 촬영했다. 최대개방임에도 불구하고 샤프함이 살아있다.

초점이 맞은 비둘기는 생생하게 나왔고 카메라와 가까운 거리에 있는 아스팔트 바닥은 살짝 아련한 듯 한 보케로 표현됐다.

아주 잠깐 내리쬐던 빛내림. 급하게 카메라를 꺼내느라 조리개를 조이지 못하고 최대개방으로 촬영했다. 최대개방이라고 믿기 힘들 정도의 콘트라스트와 샤프함이 표현됐다.

금속의 서늘한 느낌이 잘 표현됐다.

초점을 원경에 맞추고 최대개방에서 촬영했다. 앞흐림이 발생된 가장자리로 갈수록 회오리치는 듯 한 보케가 나타난다.

최대개방으로 조리개를 설정한 후 근거리에 있는 토끼풀에 초점을 맞췄다. 뒷흐림에서 나타나는 보케 모양은 앞흐림과는 또다르다.

살아있는 전설이란 이런 것

창립년도 1846년. 칼자이스는 그야말로 광학계의 역사 그 자체다. 그리고 자이스의 렌즈는 꾸준히 살아있는 전설을 만들어나가고 있다. 100년에 가까운 역사를 가진 설계에 최신 기술이 합쳐진 Sonnar T* FE 55mm F1.8 ZA도 예외는 아니다.

α7R의 3600만화소 풀프레임을 커버하는 날카로운 묘사력과 높은 콘트라스트를 제공하는 현대적인 표현력, 이너 포커싱 방식을 통한 단정하고 절제된 디자인, 리니어 모터를 채용한 저소음 구동 등은 21세기의 렌즈란 이런 것이다라고 말해주는 느낌이다. 여기에 더해 사용자의 취향과 표현 방법 등을 고려한 개성 넘치는 보케는 마치 이 렌즈의 오랜 역사를 대변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α7 시리즈의 최신 기술도 이 렌즈의 가치를 올리는데 한 몫하고 있다. 카메라 자체의 렌즈보정 기능을 통해 음영 보정과 색수차 보정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단순히 우수한 화질과 수차보정 등 성능에만 신경을 썼다면 Sonnar T* FE 55mm F1.8 ZA는 훨씬 크고 무거워졌을지 모른다. 이는 작고 가벼운 미러리스 카메라의 장점을 상쇄하는 단점으로 작용했을 확률이 높다. 적당한 무게와 크기에 우수한 화질을 담보하고 의도적으로 일부 수차를 남긴 것은 소형화와 개성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한 현명한 판단으로 보인다 .

사실, 대부분의 살아있는 전설은 현역에서 물러난 경우가 많다. ‘전설’이 아니라 단순히 ‘살아있다’는 것에 방점이 찍히는 것. 그러나 진짜 살아 있는 전설이라면 지금 이 순간에도 현역에서 뛰며 최고의 성적을 거두는 게 맞다. 마치 Sonnar T* FE 55mm F1.8 ZA가 그런 것처럼.


Sonnar T? FE 55mm F1.8 ZA의 클래식한 개성은 흑백사진에서도 돋보인다.

F1.8 정도의 조리개 값이라면 어둑어둑해지는 시간에도 얼마든지 안정적으로 사진을 찍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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