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 총회(총회장 : 김종준 목사)에서 한국 기독교 순교사적지 제1호로 지정한 염산교회 순교 유적지를 다녀왔다.

 

염산교회의 현재 모습
염산교회의 현재 모습

 

복원된 옛교회의 모습
복원된 옛교회의 모습

 1939년 8월 허 상 장로(당시 전도사)에 의해 세워진 염산교회는 2대 원창권 목사에 이어 3대 김방호 목사가 시무하는 중에 6∙25를 겪게 되었다.

김방호 목사는 경북 경산 출신으로 3∙1 만세 운동을 주도했던 독립운동가로 만주로 피신해 그 곳에서 독립운동을 하다가 잠시 국내로 들어왔다가 부흥회에 참석하여 예수님을 영접하였고 평양신학교를 졸업한 그는 주로 벽오지에서 목회하던 중 1950년 3월 10일에 염산교회에 부임하였다.

 

6.25 전부터 사용하던 강대상 및 풍금
6.25 전부터 사용하던 강대상 및 풍금

 

김방호 목사의 성경
김방호 목사의 성경

 6∙25가 터지고 공산군이 이 곳에 진입하였을 때 교회당과 목사관을 강제로 빼앗기게 되었고 김 목사는 교인들의 가정을 전전하며 비밀 예배를 드리게 되었다.

그 해 10월 7일 기삼도(당시 목포 성경학교 학생)는 죽창에 찔려 교회가 불타는 가운데 순교 당했고, 동료 노용길 등 3명은 새끼줄에 굴비처럼 묶여 돌멩이를 매단 채 교회 옆 바다에 수장당했다.

다음 날은 노병재 집사 부부 및 어린 자녀들을 포함 9명이 똑같은 방법으로 수장되었고 두 동생 가족도 모두 수장되어 22명의 일가족이 굴비처럼 엮여서 수장되었다.

13일에는 허 상 장로 부부가 가까운 산골짝에서 죽창에 찔리고 스데반처럼 돌무더기에 깔려 숨졌다.

이 후 공산군은 이 지역 어린아이들까지 무참히 죽창으로 찌르고 몽둥이로 때리고 수장시켰으나 어린아이까지 신앙의 정조를 굽히지 않고 당당하게 순교당했다.

 

순교자들이 수장된 교회 앞 바다의 수문 - 교회 뜰로 옮겨 옴
순교자들이 수장된 교회 앞 바다의 수문 - 교회 뜰로 옮겨 옴

성도 가정에서 비밀 예배를 계속했던 김방호 목사도 10월 27일 공산군들에게 끌려가 일가족 8명이 모두 몽둥이에 맞아 순교를 당했다.

2대 목회자인 원창권 목사도 영광에서 순교함에 따라 염산교회는 1, 2, 3대 교역자 전원이 순교하였다.

이 때 순교한 염산교회 순교자는 전 교인의 3분의 2인 77명이며 그 명단은 다음과 같다.

 

김방호 김화순 김  현 김  정 김  전 김  완 김선웅 김연경 허  상 이순심

김삼동 노병재 장일영 김식산 노순기 노옥기 노준오 노무곡 노오차 노육차

정도례 기삼도 김동춘 노병인 이선님 노원례 노용길 노용남 노정자 노신자

노병규 박귀님 노상기 노옥순 노일석 노경남 양정자 김순님 김조남 이희연

김동열 정도애 김용환 김춘희 김옥자 김금자 김신자 김미자 전유녀 김군자

양사차 김부옥 양처녀 김희자 김부자 배길례 장대일 김순애 장공삼 김임순

장안택 장귀남 전준채 김길순 전삼차 전사차 전오차 최용진 최처녀 최유삼

최삼녀 최이남 최사녀 최오녀 초육녀 조생길 서소단

 

순교자들의 묘역
순교자들의 묘역

 

순교자 합장묘
순교자 합장묘

 

염산순교기념성지 비
염산순교기념성지 비

 

우리는 천국간다 시비
우리는 천국간다 시비

▶ 글 출처 : 염산교회 홈페이지 순교스토리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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