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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은 정몽주의 묘

2020년 추석을 맞이하며 조금 특별한 여행(?)을 하였다.
다름 아닌, 고려말 충신 포은 정몽주 선생의 묘소를 다녀 온 것이다.

포은 정몽주 선생은 동방이학지조(東方理學之祖)로 추앙된 고려말의 충신으로, 자는 달가(達可), 호는 포은(圃隱), 시호(諡號)는 문충(文忠)이며 본관(本貫)은 영일(迎日)로 정운관(鄭云瓘)의 아들로 태어났다.

공민왕 9년(1360) 과거에 연(連) 삼장(三場) 장원급제(壯元及第)하여 벼슬이 예문관검열(藝文館檢閱)로부터 예조정랑(禮曹正郎) 대사성문하찬성사(大司成門下贊成事) 등 벽상삼한삼중대광수문하시중(壁上三韓三重大匡守門下侍中)까지 오르고 안사공신(安社功臣)의 훈호(勳號)를 받았다. 오부학당(五部學堂)을 세워 후진을 양성하고 향교(鄕校)를 세워 유학(儒學)을 진흥하여 우리 나라 성리학(性理學)의 기초를 세웠다.

또한, 당시 부패된 관료들의 사전제도(私田制度)를 혁파(革罷)하고 의창(義倉)을 세워 빈민을 구제하고 수참(水站)을 두어 조운(漕運)에 힘썼으며, 조전원수(助戰元帥)로 함경도, 전라도 지방을 침범하는 여진족(女眞族)을 정벌하고 왜구(倭寇)를 격퇴하는데 큰 전공을 세웠으며 명(明)나라에 여러 차례 사신으로가 두 나라의 국교(國交)를 원활하게 하고 밀린 세공(歲貢)을 탕감(蕩減) 받았으며, 일본에 사절(使節)로 가서는 왜구(倭寇)의 침범을 금하게 하고 귀국 시에는 억류되어 있던 고려인 다수를 대동귀국(帶同歸國)하는 등 여말(麗末) 외교(外交)에 큰 공을 세웠다.

이성계(李成桂)의 세력이 고려왕조를 무너뜨리고 그를 왕으로 추대하려 하자 선생은 고려사직(高麗社稷)을 지키려다 1392년 (음)4월 4일 선죽교(善竹橋)에서 순절(殉節)하셨다.

선생의 나라 향한 일편단심(一片丹心) 애국충절(愛國忠節)의 단심가(丹心歌)*는 오늘을 사는 우리의 산 교훈(敎訓)이 되고 있다(출처 : 묘소 입구 안내판).

*단심가 : 포은 정몽주 선생의 시 - “이 몸이 죽고 죽어 일백 번 고쳐 죽어 백골이 진토되어 넋이라도 있고 없고 임 향한 일편단심이야 가실 줄이 있으랴”

<사진설명>
1. 홍살문
2. 포은의 묘비
3. 포은의 묘
4. 저헌 이석형의 묘(저헌 이석형은 조선시대 세종대왕이 아끼던 문사로 포은의 증손서이다)
5. 맨 위에서 두 번째 묘가 설공곡 정 보의 묘로, 설공곡은 포은의 장손이다
6. 포은의 재실로 사용하고 있는 영모재
7. 영모재의 현액은 우암 송시열의 글씨이다
8. 저헌 이석형의 부인 영일 정 씨는 포은의 증손녀로 포은의 명정이 떨어진 묘역을 지켜내기 위해 연못의 물을 적셔 왼쪽으로 포은의 묘역을 쓰게 ㅎ고 명정이 떠어진 곳에 부군인 이석형과 함게 묻혔다. 친정보다 시가의 자손을 위한 전설 어린 이야기가 전해지는 연못이다. 그 덕분인지는 몰라도 연안 이씨는 조선 시대 3대 명문가의 반열에 올랐다.

최신만 기자  caridad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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