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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기소

행기소는 제주도 서귀포시 안덕면 광평로 34(구 205-4)에 위치하고 있다. 광평리는 농경신인 ‘자청비 신화’의 고장이다.

‘자청비 신화’는 다음과 같다.

자청비의 부모는 주년국 김진국 대감과 조진국 부인이다. 늦도록 자식이 없던 부부가 부처님께 빌어서 태어났는데, 원래의 약속과 다르게 정성을 들이다 아들로 태어나지 못하고 딸로 태어났다.
자청비는 손이 고와진다는 말에 빨래를 하러 갔다가, 물 아래 거무 선생에게 글공부하러 간다는 하늘 옥황의 문곡성 문도령을 만난다. 그리고 남장을 하고는 문도령을 따라나서 3년 동안 거무 선생에게 글을 배웠다. 문도령이 하늘 옥황 집에서 장가를 가라는 편지를 받고 길을 떠나자, 자청비는 문도령을 따라나서며 비로소 자신이 여자라는 것을 밝힌다. 그렇게 두 사람은 서로를 사랑하게 되었지만, 한 번 떠난 문도령은 종내 소식이 없다.
우여곡절 끝에 자청비는 기어이 하늘 옥황의 문도령을 찾아간다. 그리고 문도령과 혼례를 올리지만, 하늘 옥황의 선비들이 반란을 일으켜 문도령을 죽인다. 자청비는 서천 꽃밭으로 가서 환생꽃과 멸망꽃을 얻어다 문도령을 살리고 멸망꽃으로 선비들을 죽인다.
하늘 옥황에서는 자청비에게 하늘에서 살라고 했지만, 자청비는 여러 가지 곡식 종자를 가지고 땅으로 내려온다. 하지만 메밀종자를 두고온 사실을 알고 다시 하늘로 올라가 메밀종자를 가져온다. 그 이유로 메밀 파종시기가 늦어졌다고 한다. 자청비는 농경신이 되어 사람들이 풍년 농사를 짓도록 도와주고 있다고 한다.

행기소는 위 주소지인 서귀포시 안덕면 광평로 34 아래 창고천 발원지에 있는 물 웅덩이를 말하는데, 창고천은 1,100고지 삼형제봉에서부터 발원하여 한대오름과 빈네오름 남쪽으로 흐르다 광평리를 거쳐 안덕계곡을 지나 화순항 바다로 합류되는 하천을 말한다. 이 웅덩이는 직경14.5m, 둘레 45.53m, 깊이 2.50m, 넓이 99㎡로 놋주발을 연상케 한다. 이 물 웅덩이가 행기소로 이름이 붙여진 것은 옛날 이 물 위에 떠 있는 놋그릇(鍮器)을 건지려다 사람이 빠져 죽었다는 데서 유래되었다고 전해져 내려 오고 있다. 이와 함께 이 물 웅덩이 외형이 놋주발 모양을 닮았다는 데서 비롯되었다는 설도 있다.

행기는 놋주발을 말하는 제주어이며 이 행기소는 상수도 시설이 설치된 1985년 전까지 광평마을의 유일한 식수원이었다. 이 행기소는 가물어도 줄지 않고 일정 수위를 유지하고 있다. 1964년 극심한 가뭄으로 인근 마을 봉천수가 바닥이 나 동광, 상천 인근 마을 뿐만 아니라 서광마을에서 우마차를 이용하여 이 물로 식수를 해결했다고 한다. 이 행기소는 식수원으로 광평마을 형성의 초석이 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1700여년 이 지역에 첫 번째 화전민으로 조씨 부족이 자리잡으면서 뒤따라 양씨 강씨 등이 들어와 거주함으로써 하나의 부락이 이루어졌으며 이들은 이 행기소 물을 식수로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이후 영조 26년(1750년) 이 곳을 축산 적지로 보고 국마 장을 개설함으로써 화전민들과 함께 큰 부락이 형성되었으며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광평(廣坪)이라는 지명으로 마을이 탄생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따라서 행기소 물이 식수로 사용된 것은 300여 년이 넘은 것으로 판단이 된다.
이 행기소는 마을 서북쪽이 위치한 왕이메오름 폭발로 조면현무암, 조면안산암, 응회암으로 이루어졌으며 천 년 넘게 용암류 하부 클링커층이 하천의 침식 작용에 의해 굴착된 공동 아니면 용암류가 전진하다 막혀 부풀어 올랐다가 다시 배수되면서 내려 앉아 만들어진 주름 구조 공동으로 학자들은 분석하고 있다. 행기소 주변은 기암괴석과 원시림이 어울려 천혜의 자연경관미술관을 연출하고 있다. 광평마을의 유일한 문화유산이며 자랑이다(광평리마을회 소개글에서).

얼렁뚱땅 자그마하게 눈사람을 만들어 올려놓고 담아보았다(헹기소 그네)

최신만 기자  caridad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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