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정전의 석수(石獸)들
경복궁 근정전 남쪽 계단을 오르면 넓은 화강석 월대가 펼쳐진다. 이 월대에는 사방을 돌아가면서 돌난간이 둘러쳐져 있는데 이 곳에는 사방신(四方神)과 십이지신(十二支神) 석상이 조각되어 궁을 수호하고 있다.
사신(四神)은 청룡·백호·현무·주작으로 동서남북의 방향과 사계절을 주관하며, 십이지(十二支)는 쥐·소·범·토끼·용·뱀·말·양·원숭이·닭·개·돼지 등 열두 동물로 시간과 방위신의 역할을 맡아 각각의 시간과 방향에서 오는 나쁜 기운을 막아주는 역할을 한다.
근정전 바로 앞에는 얼핏 닭 처럼 보이는 서수(瑞獸) 주작이 있다. 그리고 북쪽 같은 위치에는 현무가 있다.
십이지(十二支)는 도교에서 각 방위를 지키는 열 두 신장을 말하는데, 이 들은 열 두 방위에 맞추어서 쥐, 소, 호랑이, 토끼, 용, 뱀, 말, 양, 원숭이, 닭, 개, 돼지 등의 모습을 가지고 있다. 십이지신상은 능묘의 호석이나 탑의 기단부에 부조로 장식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근정전 월대의 십이지(十二支)상을 자세히 살펴보면 총 36기의 서수 조각상이 있는데 위의 12 동물이 다 있는 것은 아니다. 원숭이를 비롯하여 몇 몇 동물들이 중복되게 배치되어 있고 개와 돼지는 없다.
무엇보다 눈길을 사로잡는 것은 중국이나 일본 혹은 동남아 지역에서 볼 수 있는 험상궂고 기괴한 형상의 조각은 보이지 않고 동물들 표정이 익살맞고 친근감있는 표정이 대부분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마치 민화(民畵)에서 볼 수 있는 담뱃대를 든 까치호랑이 같은 친근감을 바로 느낄 수 있으니 한국인의 심성이 본래 이런 해학의 기질을 타고난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근엄한 궁궐의 조각이 이 처럼 소박하고 익살스런 것은 엄격한 유교문화 속에서도 살아 숨쉬는 한국인의 편안한 아름다움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