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th diana_Downtown LA>는 1997년 브룩스 대학원 시절에 촬영된 사진이다. 그 당시 순수사진 수업 시간에 최종 과제로 플라스틱 장난감 카메라를 사용해서 자유 주제로 촬영해보는 것이 있었다. 그 장난감 카메라의 이름이 다이아나 카메라(Diana Camera)였고, 위 사진은 LA다운타운에서 촬영한 결과물이다.

<With diana_Downtown LA>, 1997 Copyright 이준식
<With diana_Downtown LA>, 1997 Copyright 이준식

필자가 1997년 브룩스 대학원에 다닐 때 대부분의 교과목이 조사와 연구가 대부분인 이론 과목이었고, 실기 과목은 거의 없었다. 그런데 그중 <순수사진 연구>라는 과목은 연구와 실기를 함께 진행하는 수업이어서 다른 과목들보단 좀 더 즐겁게 공부했던 기억이 난다. 그때 <순수사진 연구>를 지도한 교수가 박물관 사진으로 유명한 리처드 로스(Richard Ross)였다. 그는 첫 수업 시간에 다이아나(Diana)라는 장난감 카메라를 학생 수만큼 가져와서 나눠주며, 자유 주제로 촬영한 결과물을 그의 마지막 수업 때 제출하라며 과제를 내주었다.

다이아나 카메라(Diana Camera)
다이아나 카메라(Diana Camera)

이 카메라는 필름 크기가 120형 중형필름이 들어가는 카메라에 조리개는 F11과 F8 정도로 고정되어 있었고, 셔터속도 또한 1/60~1/125초로만 촬영이 가능한 카메라였다. 카메라 몸통과 렌즈는 모두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져 일반 카메라만큼 정교하지 못해서 선명하고 세밀한 결과물을 기대하기는 어려웠다. 거기에 더해서 필름을 장전하고 뒤에 뚜껑을 잘 닫아도 빛이 카메라로 새들어와 학생들은 그것을 차단하기 위해 여러 방식으로 테이핑하여 촬영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필자의 경우엔 새는 빛을 무시하고 촬영을 진행하였다. 왜냐하면 그것도 이 카메라가 가진 특색이라 생각하여 그대로 반영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과제를 내준 교수의 의도를 그 당시에는 그저 재밌다 정도로만 생각했었는데, 몇 년이 지나서 생각해보니 ‘이미지를 창작하는데 도구를 탓할 일은 결코 아니구나’라는 것을 뼛속 깊이 새길 수 있었다. 그런 이유로 지금도 가끔 사진 촬영 때 사진의 내용보다 카메라 장비에 더 많은 신경을 쓰는 사진 동호인들을 보면 가슴이 좀 답답해질 때가 있다.

 

그래서 필자의 수업 시간에도 사진 촬영 때 사진의 내용보다 장비를 탓하는 학생들에겐 그때의 경험담을 들려주면서 장비보다 사진의 내용에 좀 더 집중할 것을 충고한다.

 

 

한낮에 촬영된 <With diana_Downtown LA>는 고층 건물이 즐비한 LA 다운타운에서 연출된 사진이다. 낮엔 늘 일하는 사람들로 북적거리는 LA 다운타운이지만 촬영 시 빌딩의 하단 부분을 크롭핑하여 연출하니 전혀 색다른 빌딩의 도시풍경을 만들 수 있었다. 마치 실존하지 않는 것 같은 고층 빌딩으로 표현되었다.

 

이 사진은 왼쪽 상단의 플라타너스 열매와 그 옆의 고층 빌딩 그리고 상단부 중간에 빛이 새서 강하게 노출된 하이라이트 모습이 한 장면으로 서로 어우러져 묘한 느낌의 아우라를 만들어내고 있다. 검정과 흰 그리고 중간 계조의 건물 외벽이 나름 풍부한 톤을 연출해내고 있음도 이 사진에 흥미를 더하고 있다.

 

그 시절 장난감 카메라를 이용한 과제를 내주신 리처드 로스 교수도 그의 자연사 박물관 프로젝트에 다이아나 카메라를 적극적으로 사용하였고, 그의 작품 속에 녹여냈다고 하였다.

 

이렇게 다소 하찮은 싸구려 장난감 카메라이지만 그것만의 특장점과 자신의 작업 콘셉트를 잘 조화시킨다면 전혀 새로운 느낌의 작품을 창조해낼 수도 있는 것이다. 고정된 셔터속도와 조리개를 가진 허접한 '다이아나 카메라' 그와 함께 경험했던 시간은 필자의 사진 시각을 한층 업그레이드시켜준 좋은 추억으로 기억된다.

 

다음 사진 <With diana_Santa Barbara Mission #01>와 <With diana_Santa barbara Mission #02>도 다이아나 카메라로 촬영한 것이다. 이 성당은 캘리포니아주의 산타바바라에 있는 성당으로 1786년 12월 4일에 지어진 유서 깊은 건축물이다. 첫 번째 사진은 성당의 외벽 모습의 일부들을 다중 노출하여 구성해본 것으로 우리의 기억들도 때론 중첩되어 보이듯 이미지를 연출하였고, 두 번째 사진은 아기 예수를 팔로 감싸 안은 성모마리아상을 구름 낀 하늘과 함께 촬영해본 사진이다.

<With diana_Santa barbara Mission #01>, 1997 &#9400;이준식
<With diana_Santa barbara Mission #01>, 1997 &#9400;이준식
<With diana_Santa barbara Mission #02>, 1997 &#9400;이준식
<With diana_Santa barbara Mission #02>, 1997 &#9400;이준식

 

글쓴이 소개

 

이준식은 한양대 수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브룩스 사진 대학(Brooks Institute of Photography)과 동대학원에서 광고사진과 일러스트레이션 그리고 디지털사진을 전공하여 학사와 석사학위를 취득하였으며, 숭실대학교 대학원에서 미디어 아트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개인전 'Woman' Brooks Gallery, Santa Barbara, USA, 'A Memory of Eternal Land' Gallery Fine, Seoul, 'On Blurscape', Baum Art Gallery, Seoul, 'Purification' Baum Art Gallery, Seoul 등을 전시하였으며 현재는 신구대학교 사진영상미디어과에서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작권자 © VDC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