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강원도 원주시 지정면 안창리에 보물로 지정돼 있는 <흥법사지 삼층석탑>은 필자가 2021년에 원주의 문화 유적지를 탐방하며 촬영한 사진 중 하나다. 원주의 문화 유적을 일반인들에게 알리고 원주의 옛 모습과 현재가 어우러져 공존하고 있는 사실들을 시민들과 공유하고자 하는 취지의 전회에 출품된 사진이기도 하다.

<흥법사지 삼층석탑> 2021 &#9400;이준식
<흥법사지 삼층석탑> 2021 &#9400;이준식

우리가 처음 카메라를 접하는 사람들이라면 카메라의 기능을 담당하는 셔터와 조리개 그리고 렌즈에 대한 공부를 하게 된다. 그중 초점 맞추기는 렌즈에 부착된 초점 링을 통하여 조절하게 되어 있다. 그런데 특히 망원렌즈로 촬영한 장면에서 초점 맞추기가 중요한 것은 일반적으로 초점이 맞춰진 피사체가 그렇지 않은, 즉 초점이 흐려진 피사체나 배경보다 중요한 의미를 두기 때문이다. 사진가가 피사체에 초점을 맞춘다는 것은 이미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시선이 그쪽으로 모아지도록 유도함을 의미한다.

 

하지만 사진가의 주관에 따라서 그러한 규칙을 깨고 새로운 시각을 만들어낼 수도 있다. 보통은 주인공에게 초점을 맞추지만 주인공이 아닌 조연이나 배경에 초점을 맞출 수도 있다. 늘 습관적으로 해왔던 방식에서 가끔은 탈피하여 새롭게 도전해보는 것이 창작을 하는 사람에겐 꼭 필요한 부분이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여기 소개하는 고대도시 원주 <흥법사지 삼층석탑>이 그러한 도전의 한 부분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필자에겐 도반과 같은 존재로 오래전부터 알고 지내는 절친한 교수 한 분이 있다. 그와는 여유 시간이 생길 때면 함께 산책하곤 하는데, 잘 알고 지내던 후배 교수와 함께 학회를 통해서 알게 되었고 대학원 박사과정을 같이 하기도 했다. 현재는 같은 동네에 살면서 방학 때면 전국의 힐링할만한 호수나 둘레길 맛집 등을 찾아다니며 산책과 출사를 함께한다. 그분은 이미 전국의 많고 다양한 곳을 취재하며 사진여행을 했던 분이라 그와 함께라면 정말 편하게 다닐 수 있다. 왜냐하면 가고자 하는 특정 지역을 이야기하면 이미 많은 정보를 꿰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사진 이야기의 주인공인 <흥법사지 삼층석탑>이 만들어진 배경도 그분이 소개해준 고대도시 원주의 문화 답사 중에 탄생된 결과물이다. 원주에 있는 대학에서 오랫동안 대학생들에게 사진을 가르치고 지역 동호인들도 지도해 오신 분이어서 원주의 오랜 역사와 문화에 관한 이야기를 들으며 이곳저곳 함께 즐겁게 다닐 수 있었다.

 

원주는 고려시대의 유물들을 많이 볼 수 있는 역사적인 유적지가 여러 곳 있다. 주로 절터인 사지들이 그들인데, 필자가 여기 소개한 사진 <흥법사지 삼층석탑>은 신라시대부터 고려시대까지 이어지던 거대한 사찰로 추정되는 흥법사 터에 남아있는 고려시대의 석탑을 촬영한 것이다. 그 주변 가까이엔 진공대사탑비도 함께 자리하고 있었는데 이 탑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절 마당에 세워진 탑이라고 느끼기엔 그 당시에 대한 공간적 상상력이 필요해 보였다. 주변은 온통 파밭으로 “이곳이 정녕 절터였을까”하는 궁금증을 유발하기에 충분한 폐 절터였다. 지대는 다소 높은 곳이어서 탑 뒤로 마을이 저 멀리 보이고 그 뒤로 산 능선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이 석탑을 어떻게 재현하는 것이 효과적일 것인가? 잠시 고민이 되었다. 단순히 기록사진처럼 혹은 일반 풍경사진처럼 표현하고 싶진 않았다. 켜켜이 쌓인 유구한 역사적 과거를 이 사진 한 장으로 보는 이로 하여금 상상해볼 수 있다면 어떨까 생각해보았다. 그래서 작품을 대하는 감상자에게 생각의 여백을 제공하듯 주 피사체인 석탑의 초점을 흐리게 하여 촬영하였다.

 

200mm 망원렌즈에 초점은 석탑이 아스라이 보일 정도의 모습으로 설정한 후 촬영을 진행하였다. 석탑의 모습이 너무 흐릿하게 보이지 않게 그렇다고 잘 드러나 보이지도 않게 초점을 조절하여 셔터를 누르는 것이 필자가 가장 고민한 결정적 순간이었다. 사진을 잘 살펴보면 장면 하단의 강아지풀에 초점이 살짝 맞아 있음도 알아차릴 수 있을 것이다.

 

오른쪽 사진은 그 당시 함께 촬영했던 다른 느낌의 사진인데 <파밭의 원주 흥법사지 삼층석탑>은 파밭으로 가득한 모습을 강조해 다소 공간의 언발란스한 면을 부각시켜 연출해 보았고, <흥법사지 진공대사탑비와 삼층석탑>은 진공대사탑비를 주피사체로하여 삼층석탑의 모습은 탑비와 많이 대비되어 보이도록 촬영해보았다. 이와 같이 피사체를 어떤 방식으로 사진가의 주관을 녹여 연출하느냐에 따라 그 결과물에 많은 시각적 차이를 느껴볼 수 있는 것이다.

 

<파밭의 원주 흥법사지 삼층석탑> 2021 &#9400;이준식
<파밭의 원주 흥법사지 삼층석탑> 2021 &#9400;이준식
<흥법사지 진공대사탑비와 삼층석탑> 2021 &#9400;이준식
<흥법사지 진공대사탑비와 삼층석탑> 2021 &#9400;이준식

글쓴이 소개

 

이준식은 한양대 수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브룩스 사진 대학(Brooks Institute of Photography)과 동대학원에서 광고사진과 일러스트레이션 그리고 디지털사진을 전공하여 학사와 석사학위를 취득하였으며, 숭실대학교 대학원에서 미디어 아트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개인전 ‘Woman’ Brooks Gallery, Santa Barbara, USA, ‘A Memory of Eternal Land’ Gallery Fine, Seoul, ‘On Blurscape‘, Baum Art Gallery, Seoul, ’Purification’ Baum Art Gallery, Seoul 등을 전시하였으며 현재는 신구대학교 사진영상미디어과에서 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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