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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식 교수의 사진이야기 내가 사랑한 사진가 오마주 - 랄프 깁슨

이 사진은 2008년 “On Blurscape”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바움아트갤러리에서 전시했던 작품 중 하나이다. 복잡하고 삭막한 현실에 투항하거나 외면하고자 했던 표현을 선명하고 뚜렷한 이미지에 대항하는 형태로 기획했다. 단순한 형태와 색채로 표현한 흐린 이미지의 미학이 정화의 메타포로 이용되길 희망했던 작품이다.

<On Blurscape_울릉도전망대 #01>

사진을 하는 사람은 대게 사진 활동을 하면서 그들의 사진 세계에 영향을 준 사진가를 적어도 한 사람 이상 간직하고 있을 것이다. 필자에게도 그런 영향을 준 사진가가 세 명 정도 있는데,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된 인간 가족전 (Family of Man)을 기획한 에드워드 스타이켄(Edward Steichen)과 풍경사진가이자 존시스템(Zone System)으로 널리 알려진 안셀 아담스(Ansel Adams) 그리고 인간의 내면세계를 독특한 프레임과 톤의 이미지로 구성한 랄프 깁슨(Ralph Gibson)이 그들이다.

인간 가족전을 기획한 에드워드 스타이컨의 경우엔 필자가 대학원 논문 프로젝트를 진행했을 때 ‘어떤 타이틀로 연구하면 좋을까?’하고 고민하는 과정에서 영향을 받았다. 그가 초창기 검 프린트와 팔라디움 프린트 등의 넌실버 프린팅을 이용해 회화적인 사진을 만들었던 시기가 있었는데, 그 당시에 선보였던 그의 작품들이 필자의 마음을 움직여 논문 프로젝트를 진행하게 했다. 논문은 그의 작품과 같이 회화적인 사진을 디지털 이미지 기법으로 개발하는 것으로 진행했고, 그 프로젝트와 함께 석사논문을 마칠 수 있었다.

세계적인 풍경사진가이자 흑백사진 톤과 콘트라스트 조절에 과학적 접근을 시도한 안셀 아담스는 필자의 아마추어 시절에 그의 작품집을 통해서 드라마틱한 대자연의 웅대함을 경험하게 해주었다. 그때의 경험이 학부 시절 특별과목이었던 존시스템 워크숍에 더욱 몰입해 좋은 결과물을 만들도록 자극했다.

<On Blurscape_울릉도전망대 #01>

필자에게 충격적 영향력을 안긴 또 다른 사진가는 랄프 깁슨이다. 앞의 메인 사진인 <On Blurscape_율동공_#02는 2008년 ‘On Blurscape‘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전시했던 작품 중 하나인데, ’내가 사랑한 사진가 오마주-랄프 깁슨‘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그리고 또 다른 위의 작품 <On Blurscape_울릉도전망대 #01> 역시 함께 전시했던 작품으로 울릉도 전망대에서 촬영한 사진인데, 랄프 깁슨의 독특한 프레이밍과 단순미 그리고 긴장감이 닮아있는 사진이다. 빨간색 외투에 흰 숄더백을 맨 단발머리 여성이 먼 바다를 바라보며 쉬고 있는 뒷모습을 흐린 이미지로 담은 사진이다. 이렇게 필자의 오마주 대상인 랄프 깁슨은 84세의 나이에 지금도 사진 활동을 하고 있으며 최근엔 부산에서 그의 이름을 딴 <랄프 깁슨 사진미술관>을 개관하여 그의 작품을 상설 전시하고 있다.

80년대 초 필자는 대학에서 사진반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유명사진가 초청 강연을 기획한 적이 있었다. 그 당시 필자에겐 고등학교 스승이면서 신구대학교에서 사진학과 교수로 계셨던 홍순태 교수를 특강 강사로 초청하였는데, 특강 주제는 <현대 사진의 흐름>이었다. 강의 내용 중에는 동시대 작가들의 작품을 소개하는 시간이 있었던 걸로 기억되는데, 특히 필자의 가슴에 크게 흔적을 남긴 사진가가 한두 명 있었다. 그중 한 사람이 초현실주의 사진가로 잘 알려진 그 당시 40대 초반의 랄프 깁슨이었다. 랄프 깁슨의 사진으로는 <몽유병자 The Somnambulist>, <데자뷰 Deja Vu>, <바다에서의 날들 Days at Sea>, <Infanta>등이 소개됐다. 현실의 이미지로부터 현실 너머의 세계로 이끄는 그의 독특한 사진들은 상상하기 어려운 프레이밍으로 만들어졌다. 그들 이미지로부터 받은 충격은 필자의 뇌와 심장이 잠시 멎는 것 같은 느낌일 정도로 컸다. 어떻게 사진을 저렇게 자를 수 있을까? 사진이 아무리 마이너스 예술이고 프레이밍의 예술이라 해도 옆의 사진1<Days at Sea, 1974>와 같이 감히 사람의 목을 자른다든지 혹은 사진2<Infanta, 1961-2005>나 사진3<Infanta, 1961-2005>과 같이 얼굴의 일부만 잘라 표현한다는 것은 그 당시 필자에겐 너무도 충격적이었고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사진 <On Blurscape_율동공원_#02>는 그런 의미에서 랄프 깁슨의 <Days at Sea, 1974>과 상당 부분 닮아있음을 볼 수 있다. 한낮에 바다를 배경으로 흰 반팔 셔츠를 입은 사람의 옆 모습을 웨이스트 샷으로 촬영하였는데, 목과 턱의 일부만을 남기고 정작 중요한 모델의 얼굴을 잘라내 연출했다. 보여지지 않은 부분의 낯설고 생소한 느낌을 극대화하여 그 장면이 더 이상 현실적이지 않은 부분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도록 연출했다. 이와 같은 촬영 방식이 필자에겐 매우 신선했고, 어느새 이런 방식이 필자에게 스며들어 분홍색 옷을 입고 산책하는 여인의 옆모습을 촬영한 사진 <On Blurscape_율동공원_#02>를 탄생시킨 결정적 근거가 되지 않았나 돌이켜본다. 사진하는 사람이 어떤 특정 사진가의 작업을 늘 존경하는 마음으로 가슴에 담아두고 있다면 그 누구도 그 사진가의 작품 분위기를 닮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것은 마치 필자가 랄프 깁슨의 작품을 자연스레 오마주하여 표현한 것처럼 사진 작업을 하는 그 누구에게나 작업을 하는 힘의 원천과 지속적인 아이디어 발상의 밑거름이 되어주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사진1<Days at Sea, 1974> &#9400;랄프 깁슨
사진2<Infanta, 1961-2005> &#9400;랄프 깁슨
사진3<Infanta, 1961-2005> &#9400;랄프 깁슨

글쓴이 소개


이준식은 한양대 수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브룩스 사진 대학(Brooks Institute of Photography)과 동대학원에서 광고사진과 일러스트레이션 그리고 디지털사진을 전공하여 학사와 석사학위를 취득하였으며, 숭실대학교 대학원에서 미디어 아트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개인전 "Woman" Brooks Gallery, Santa Barbara, USA, "A Memory of Eternal Land" Gallery Fine, Seoul, "On Blurscape", Baum Art Gallery, Seoul, "Purification" Baum Art Gallery, Seoul 등을 전시하였으며 현재는 신구대학교 사진영상미디어과에서 교수로 재직 중이다.

김한수 기자  vdcmag@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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