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다 토시히사 [후지필름일렉트로닉이미징코리아 대표]

2016년이 시작되자마자 후지필름은 기다렸다는 듯이 신제품을 대거 발표했다. 겉모습은 비슷해 보이지만 속을 살펴보면 놀랍도록 진보한 카메라들이다. 후지필름 신제품과 관련된 뒷이야기, 그리고 후지필름이 꿈꾸는 카메라에 대한 이야기를 듣기 위해 이다 토시히사 후지필름일렉트로닉이미징코리아 대표를 만났다.

미러리스 시장의 약진을 보여주는 곳이 유럽과 북미 시장이다. 유럽에서 후지필름의 위치는 높아졌다. 그런데 한국 시장에서는 마니아의 브랜드로 이미지가 굳어지고 있는 것 같다. 조금 더 대중적으로 다가갈 계획은 없는가?

반대로 생각하면 북미나 유럽의 경우 아시아보다 미러리스를 받아들인 타이밍이 조금 늦었다고 볼 수 있다. 최근 2년을 보면 해당 지역의 미러리스 시장이 급속히 성장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전 몇 년간은 미러리스가 거의 팔리지 않았다. 유럽이나 북미에서 급격히 증가한 시점은 2013년부터인데 그때 후지필름에서는 X-T1, 올림푸스에서는 OMD EM-1, 소니에서는 a7을 출시했다. 즉 본격적인 미러리스 카메라가 세상에 나오면서 DSLR과 콤팩트의 중간쯤에 있던 미러리스가 DSLR을 대체할 수 있는 위치에 오게 된 것이다. 한국 시장에 있어서도 로우앤드에서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하이앤드부터 확실한 포지션을 갖춘 다음에 확산해 가는 전략을 생각하고 있다. 예를 들어 일본에서 삼성 카메라는 거의 팔리지 않는다. 유럽에서도 전체 쉐어 중 1자릿수 정도 밖에 차지하지 못한다. 그러나 한국만 삼성의 쉐어가 높다. 이렇듯 삼성과 소니가 접전을 벌이고 있는 한국 시장에 서둘러 침투하려면 경쟁하기 힘들다. 이런 특수한 한국 환경에서는 유럽과 차이점이 있는 것 같다. 시간이 걸릴 수 있겠지만 현재는 하이앤드 사용자 층에서 확실한 브랜드 이미지를 높이는 게 우선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X-Pro2는 현재 판매중인 디지털 카메라 중에 유일무이한 파인더 시스템을 가진 카메라다. 철학이 분명하다. 특히 레인지 파인더 시스템의 장점을 그대로 가져오고 디지털의 장점을 더한 특수한 바디다. 그런데 기존 RF카메라는 두께가 얇다는 장점이 있지만 X-Pro2 바디가 조금 두꺼운 느낌이 있다. 후지필름만의 카메라 철학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조금 더 콤팩트하게 만들 계획은 없는가.

사실 이 부분에 있어서 X-Pro2를 개발하며 사내에서도 여러 의견이 있었다. 올 해 초 일본 본사에서 진행했던 후지키나에서 터치 앤 트라이 존을 진행했는데 거기에는 초기단계 목업도 전시했다. 초기 단계에서는 이것보다 더 슬림한 버전도 만들 었다는 사실을 알아줬으면 좋겠다. X 포토그래퍼 중에 X-Pro1을 오래 사용하신 작가들이 많아 그 분을 대상으로 인터뷰를 진행했다. 그때 압도적으로 많은 분들이 X-Pro2를 만들 때 사이즈는 그대로 갔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이정도가 카메라로서 손에 잡기도 쉽고 사용하기도 쉬운 크기와 무게라고 이야기 했다. 이것보다 더 얇아지면 렌즈에 따라 밸런스가 무너지는 경우가 있는 것도 문제였다. 후지필름이 X-Pro2를 얇게 만드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다만 카메라를 잡았을 때 그립감이라던가 안정감을 고려했을 때 이 두께와 무게가 최적이라고 판단했다.

X-Pro1을 오랜 시간 사용한 유저의 불만 중에 하나가 있는데 도장과 관련된 것이다. 해당 사용자들이 굳이 비교하는 바디가 라이카다. 오래 사용하다 보면 칠이 벗겨지기 마련인데 그 느낌이 아름답지 않다는 것이다. 혹시 X-Pro2의 도장도 X-Pro1과 동일한가?

마그네슘 바디에 반광택을 하는 동일한 방법으로 제작했다. 카메라를 견고하게 만들기 위해 기존 방식을 그대로 가져왔다. 바디 재질에 주석을 사용하면 조금 예쁘게 벗겨지는 느낌을 줄 수 있지만 대신 매우 무거워진다. 따라서 경량화와 견고성을 함께 생각하면 마그네슘이 최적이라고 생각한다. 

센서는 후지필름 카메라의 큰 특징 중 하나다. 이번 X-Pro2는 X-Trans CMOS III를 최초로 장착한 카메라다. 화소는 물론 화질까지 비약적으로 업그레이드 됐다. 동시에 기존 자사 렌즈 교환식 카메라보다 프로세싱 속도도 매우 빨라졌다. 이는 X-Trans CMOS 센서의 가장 큰 특징인 색감과는 또 다른 지점이다. 센서가 어떻게 달라졌고 기존 X-Trans CMOS II와 비교했을 때 어느 정도나 개선됐는가?

정말 엄청난 진보라고 말할 수 있다. 구리배선을 후면에 배치해 퍼포먼스가 매우 좋아졌다. 전류가 전달되는 속도가 기존 알류미늄을 사용했을 때와 구리를 사용했을 때는 완전히 다르다. 현재 구리 배선이 알루미늄 배선보다 몇 배나 빠르다고 정확히 말할 수는 없지만 인터넷에서 알루미늄과 구리의 전도성을 검색해보기만 해도 둘의 차이가 얼마나 큰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 우리가 구리를 사용할 수 없었던 것은 구리가 굉장히 부드러운 금속이기 때문에 다루기가 까다로웠기 때문이다. 최신 기술로 동을 가공할 수 있게 된 것이 혁신 포인트다. 데이터 전송 속도가 매우 빠르기 때문에 전기적인 노이즈도 급격히 줄어들게 된다. 노이즈가 없다는 것은 화질이 매우 좋아졌다는 것을 의미하고 스피드가 빠르다는 것은 카메라의 다양한 기능이 빨라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구리 배선 채택은 긍정적인 결과만 가져왔다고 보면 된다. 예를 들어 동일한 센서 면적에 화소를 올렸음에도 불구하고 고감도는 더욱 좋아졌다. 그런데 센서가 아무리 좋아져도 화상 처리기술이 그만큼 따라가지 못한다면 처리를 못하는 경우가 생기게 된다. X-Pro2는 새로운 센서에 맞춰 기존보다 4배나 빨라진 프로세서를 장착했다. 화질면을 놓고 보자면 1.5배 정도 좋아졌는데 이는 타사 기종과 비교했을 때 약 3000만 화소 정도라고 보면 된다. 고감도의 경우 자사 테스트 결과 및 사진가들이 직접 촬영해본 결과에 따르면 ISO 12800까지 화질을 크게 신경 쓰지 않고 촬영이 가능하다.

센서 이야기를 조금 더 물어보자면 X-Pro2의 우수한 퍼포먼스는 스틸사진에만 국한되지 않을 것이다. 동영상도 그만큼 더 우수한 결과물을 기대할 수 있을 것 같은데 혹시 4K 지원은 계획에 없는가.

앞서 밝혔듯 센서 읽기 속도가 매우 빨라졌기 때문에 센서 자체의 실력으로 보자면 4K 촬영은 가능하다. 그러나 만약 4K 촬영을 진행하게 되면 발열 현상 때문에 카메라가 더 커져야 한다. 처음 X-Pro2를 만들 때 파인더를 들여다보면서 스틸사진을 찍는데 집중하는 카메라로 콘셉트를 잡았기 때문에 굳이 4K 기능은 넣지 않았다. 지금까지 후지필름 카메라의 센서는 컬러필터가 독특하기 때문에 동영상 데이터를 읽어 들이는데 아주 복잡한 처리를 해야만 했다. 새로 개발된 X-Pro2는 센서의 읽기 속도도 빨라졌고 프로세서 속도도 빨라졌기 때문에 모아레 현상과 같은 문제점이 현격하게 줄어들었다. 4K는 아니지만 풀HD 동영상만 놓고 봤을 때  타사보다 높은 수준의 결과물을 기대할 수 있다고 본다. 참고로 방열 문제만 해결되면 추후 얼마든지 4K를 지원할 수 있다.

X70의 경우 X 시리즈 최초로 터치를 지원하는 180° 플립 액정을 적용했다. 기존 X100 시리즈보다 확실히 대중 친화적으로 드라이브를 걸었다는 느낌이 든다. 이런 제품을 선보이게 된 결정적인 이유가 궁금하다.

사실 엄밀히 말하자면 X70은 카메라를 사용하는데 익숙하지 않는 초보를 위해 개발된 카메라는 아니다. 실제로 X70은 그리 사용하기 쉬운 카메라가 아니다. 28mm 광각 단초점 렌즈는 오랜 시간 사진을 찍어온 사람에게 더 익숙할 수 있다. 일반적인 사용자는 센서 크기가 조금 작더라도 줌렌즈가 장착된 카메라를 원한다. 화각이 넓은 만큼 피사체에 더 가까이 다가가야 하기 때문에 활동적인 스냅에 맞는 카메라라고 생각한다. 개발 당시 타깃으로 생각했던 대상은 기존 X시리즈 유저다. 예를 들어 X100을 가지고 있더라고 주머니에 쏙 들어갈 수 있는 광각 콤팩트 카메라를 원하는 분들을 생각했다. X100이 벌써 3세대를 거치고 있다. 그 동안 팬층도 더 두터워졌다. 그런 분들이 조금 더 작고 광각인 카메라가 필요하다고 의견을 줬다. 작게 만들기 위해 파인더를 뺐는데 그렇게 되면 촬영스타일이 바뀔 수밖에 없어 180° 플립 액정을 적용했다. 예를 들어 파인더가 장착된 X100 시리즈는 아이 레벨 촬영이 기본이지만 X70은 웨이스트 레벨로 촬영이 가능하다. 따라서 기존에 X100을 사용하던 사진가라고 해도 X70으로 즐겁게 사진을 찍을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

타사의 경우 몇몇 단렌즈는 접근하기 쉬운 가격으로 선보이고 있다. 최근 후지필름도 XF 35mm F2 R WR을 기존 렌즈보다 합리적인 가격으로 출시한 바 있다. 그 후속으로 단렌즈를 추가로 출시할 계획은 없는가? 이를 통해 조금 더 많은 사용자에게 후지필름을 어필할 계획은 없는가?

많은 고객이 조리개 값을 조금 어둡게 하더라도 소형이고 다가가기 쉬운 가격의 렌즈를 원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지금까지 후지필름 렌즈 라인업 구성은 품질을 최우선을 생각했기 때문에 크기도 크고 가격이 비싼 경우가 많았다. 지금까지 우리가 21종의 렌즈를 갖추면서 촬영 화각은 어느 정도 갖췄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앞으로 F값을 떨어뜨리더라도 우수한 화질에 합리적인 사이즈와 가격을 갖춘 제품을 개발하는 것을 염두에 두고 있다.

타사에는 없는 후지필름만의 가치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그리고 그 가치가 이뤄낸 결과는 또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매우 확실한 부분이라고 생각하는데 첫 번째는 80년 동안 ‘사진’ 관련 사업을 이끌어 왔다는 것이다. 이 부분이 카메라 메이커나 가전 메이커와 다른 지점이라고 생각한다. 카메라 메이커는 껍데기를 만들어 왔다. 그러나 후지필름은 그 내면을 만들어 왔다. 내면을 조금 자세히 말하자면 필름이나 그것을 현상하는 기술, 즉 사진에 관한 것일 텐데 후지필름은 이를 80년 동안 꾸준히 이어오고 발전시켜온 회사다. 무엇보다 카메라에서 나온 사진 자체가 결과물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그 결과물에 있어서는 최고라고 자부한다. 두 번째는 렌즈다. 후지필름의 렌즈 제조 역사도 70년이 넘는다. 이런 긴 역사속에서 커버하고 있는 영역도 넓다. 방송용, 시네마용 렌즈처럼 고품질이 요구되는 영역부터 차량용 블랙박스 같은 시큐리티 영역도 커버하고 있다. 좋은 재료가 없으면 맛있는 음식을 만들 수 없듯 아무리 신호처리가 뛰어나더라도 좋은 빛을 받아들일 수 없다면 좋은 사진을 찍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빛을 모으는 게 렌즈다. 좋은 렌즈를 만들 수 있는 기술을 가지고 있는 게 우리의 강점이다. 세 번째는 센서다. 우리가 선택한 APS-C 포맷이 디지털 시대에서는 최선의 포맷이라 생각한다. 필름 시대에는 포맷을 작게 만들면 반드시 화질이 떨어지는 문제가 생겼다. 작은 카메라를 만들기 위해 포맷을 작게 만들면 화질이 떨어졌다. 그래서 100년 동안이나 라이카가 만든 135포맷이 유지되어온 것이다. 이렇 듯 아날로그 시대에는 포맷을 작게 만드는 동시에 화질을 유지하는 기술을 완성시키지 못했다. 그러나 지금 CMOS가 되면서 센서 기술이 획기적으로 좋아졌다. X-Pro2는 APS-C 센서로 놀라운 화질을 제공한다. 센서를 작게 만듦으로써 렌즈도 작아질 수 있고 바디도 작아질 수 있다. 전체적으로는 2/3에서 절반까지 사이즈를 줄일 수 있다. 지금은 디지털 시대다. 그래서 우리는 굳이 100년 전 포맷에 집착하지 않고 지금에 최적화된 포맷을 찾기 위해 APS-C 센서를 채택한 것이다. 정리하자면 80년 동안 축적된 이미지 프로세싱 기술, 좋은 빛을 모을 수 있는 렌즈, 디지털 시대에 최적화된 이미지 센서가 후지필름만의 정체성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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