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건축 사진학의 개척자, 김철현 교수

해외에서 사진을 전공하고 국내로 돌아와 건축학을 배웠다. 스튜디오를 운영하기도 했고 각종 사진협회 회원과 사진전 심사위원을 다수 역임했다. 그는 국내에 건축•산업 사진학에 대한 개념을 불러일으킨 장본인이다. 최근에는 항공 영상 촬영까지 광범위하게 촬영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경민 대학교 디지털방송영상과 김철현 교수를 VDCM이 만났다.

정리 | 남정완 편집장 / 사진 | 조주현 기자

 

의정부에 위치한 경민 대학교 충의관을 찾았다. 4층 교수 연구실로 들어서자 빼곡한 책들과 스크랩 자료가 눈에 들어왔다. 그의 이력은 여러 가지면에서 흥미로운 점이 많다. 국내에서 영문학과를 졸업하고 미국으로 건너가 AAU(Academy of Art University)에서 패션•건축 사진을, 브룩스 인스티튜트(BrooksInstitute)에서 산업•건축 사진을 전공했다. 1991년 미국 유학을 마치고 국내에 돌아와서 유명 기업들의 브로슈어 사진을 촬영했다. 당시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기업 브로슈어에 파노라마 사진을 적용하기도 했다. 하지만 10여년의 기간 동안 그의 마음 속에는 늘 교육에 대한 열망이 끊이지 않았다. 1994년부터 현재까지 경민 대학교 교수로 재직 중이다.

 

사진은 어떤 계기로 접하게 됐나.
부산에서 태어났다. 아버지와 형이 사진을 좋아했다. 1960년대 무렵 아버지가 라이카 카메라로 필름 사진을 즐겨 찍으셨다. 사진을 시작하게 된 데는 가족의 영향이 컸다. 국내에서 대학을 다닐때에도 사진에 관심이 많았다. 사진을 본격적으로 배우기 위해 미국을 건너갔다. 지독하게 공부했다. 주변에서 ‘자료 김’이라고 부를 정도로.


미국 유학 시절은 어땠나.
당시만 해도 국내에서 접하기 어려웠던 진귀한 사진 관련 자료를 기록하고 또 기록했다. 아마 이때부터 교육자로서의 꿈을 꾸기 시작한 것 같다. 새로운 것을 배우면서도 동시에 가르치고자 하는 욕구가 솟아 올랐다. 보다 기술적인 사진을 배우려고 브룩스 대학교에 들어갔다. 두 대학에서 모두 건축 사진을 배우고 한국으로 돌아와서 더욱 절감한 것은 ‘한국 전통 건축’에 대한 제대로 된 자료가 거의 없다는 현실이었다.


건축 사진에 대한 얘기를 들려달라.
1991년부터 1998년까지 건축잡지 “空間(공간:SPACE)” 사진 전문위원을, 1999년부터 2011년까지 ‘건축인 POAR’ 사진 전문위원으로 활동했다. 건축사진 과목을 국내에 처음으로 개설하게 된 것도 그 만큼 공간에 대한 이해가 사진에 있어서 절실한 요건이기 때문이었다. 밥을 먹으려면 숟가락, 젓가락질 같은 기초를 배워야 하듯이 사진이나 영상도 마찬 가지다. 공간에 대한 공감없이 우리는 일상 생활조차 하기 어렵다. 눈으로 보는 것과 카메라의 프레임은 다르다. 이 사각 프레임 안에 어떻게 공간을 배치하느냐가 사진의 기초다. 이런 의미에서 공간을 이해한다는 것은 사진을 배우는 데 훌륭한 도움을 줄 수 있다.

 

건축 사진을 제대로 찍기 위해 건축학을 배웠나.
내가 관심을 갖는 것은 ‘기록’이다. 지금 남겨두지 않으면 사라져 버리는 것, 특히 우리 나라의 ‘전통건축’이 마음을 사로잡았다. 한 나라나 도시를 이해한다는 것은 다른 말로 하면 건축을 이해하는 것과 다름 없다. 사진의 토대는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공간에 대한 이해에서 비롯된다. 대전에 있는 한남대학교 건축학 박사 과정을 밟았다.
금요일 아침 수업을 듣기 위해서 전날 밤 대전을 내려가서 찜질 방에서 잠을 청하기 일쑤였다. 공간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한 나의 이런 몸부림은 박사 논문 주제를 세 번씩이나 바꿀 만큼 컸다. 하지만 수백 페이지에 달하는 논문 자료를 앞에 놓고 박사 과정을 수료로 끝마쳤다. 마지막 즈음되니 학위에 대한 집착이 의미 없어졌다. 10여년이 넘는 사진과 건축 공부의 끝에 다시 출발점으로 돌아온 셈이다.

 

본인이 가진 사진 철학은.
나는 우선 작가가 아니다. ‘기록하는 사람’이다. 작가는 작품을 만드는 사람이지만 기록가는 있는 그대로를 최대한 연출을 배제하고 기록한다. 기록을 통해 현 시대를 후대에 전달하는 사람이다. 단지 이미지만 기록하는 데 그치지 않고 사람이 살아가는 라이프 스타일을 기록하는 것이다. 

 

산업 사진가로 잘 알려져 있다.
1992년부터 강원도 사북탄광이 카지노로 변천해 가는 과정을 기록하고 있다. 산업화 시대의 모습에서 자본주의의 카지노로 변해 가는 현실을 기록 중이다. 결국 지금까지 해 온 작업은 한 번으로 끝내는 게 아니라 시간을 두고 같은 장소를 계속 관찰하며 기록하는 일이다. 큰 틀에서 보면 건축사진도 산업 사진의 한 분야이다.


국내 사진계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나.
국내 사진학과가 점차 사라져가고 있다. 사진에 대한 깊이 있는 교육이나 배움의 과정 보다는 장비에 대한 의존도가 지나치게 높다. 강의를 하고 현장에 나가도 모두 하드웨어 얘기뿐이다. 중요한 것은 정작 소프트웨어다. 어찌됐든 결과물만 만들어 내면 된다는 인식은 과정 자체를 도외시하는 우를 범하기 마련이다. 기초를 튼튼히 하고 제대로 배울수록 더 깊은 사진 세계로 들어갈 수 있다. 표피적인 단계를 벗어나야 된다. 기초가 없다 보니 누구나 찍는 사진에 그치고 마는 것이다.

건축물로서의 고택뿐만 아니라 그 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함께 담아내고
싶다. 나는 여전히 기록가로서 남고 싶다.

 

건축 사진 말고 마음을 끄는 피사체는.
내 마음의 고향은 바다다. 그래서 때때로 힘들 때마다 나도 모르게 바다로 달려가곤 했다. 넘실대는 파도를 고요하게, 때로는 격랑 그대로 담아냈다. 이 사진(우측)은 강원도 주문진의 동해 바다다. 아무도 나를 알아보는 이 없는 곳의 편안함. 어머니의 품, 양수 속의 고요함을 가진 바다가 늘 나를 달래주었다. 여태까지 세 번의 개인전만 가졌다. 내게 있어 사진전은 나를 드러내는 것이다. 내 이야기와 마음을 열어 보이는 것은 그리 간단하지도 쉽지도 않은 일이다.


얼마 전 시작한 K.PhotoLab은 어떤 곳인가?
일반 스튜디오는 아니다. 이름을 짓는데 적잖이 고심했다. 결국 내가 잘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 라는 물음에 대한 대답이다. 내 이름 이니셜과 사진과 교육을 뜻하는 K.PhotoLab에서는 교내학생들과 함께 산업사진, 항공, VR, 드론 촬영을 진행한다. 경민 대학교 창업관 6층의 열 평짜리 공간에서 프로젝트와 실기 교육까지 이뤄지고 있다. 내 일의 본질은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이다.
 

앞으로 계획을 들려달라.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마을미술 프로젝트’다. 부산 감천마을처럼 벽화마을을 소재로 다양한 촬영 프로젝트를 진행해볼 계획이다. 얼마 전 해남 우수정 마을을 찾아 드론 촬영을 하기도 했다. 학생들에게는 몇 년 째 골목길 테마 다큐멘터리 과제를 진행하고 있다. 사진가의 일방적인 관점에서가 아닌 사람이 있는 우리네 풍경을 사진과 영상으로 기록하는 일을 하고 싶다. 둘째는 ‘명품 고택 프로젝트’다. 건축가의 관점에서는 이미 많은 결과물이 나와 있지만 기록가로서 접근하고 싶다. 건축물로서의 고택뿐만 아니라 그 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함께 담아내고 싶다.
 

마지막으로 사진 후배들에게 한 마디.
나는 아직도 연구실 한 켠 냉장고에 대형 필름들을 잔뜩 보관하고 있다. 예전에는 건축 사진을 촬영하려면 대형 카메라가 필수였다. 지금은 최신 장비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사진가로서 마지막까지 살아남기 위해서는 기초를 계속 공부해나가는 수밖에 없다. 기술적인 요소만이 아니라 사진과 영상의 토대가 되는 프레임에 대한 이해와 건축과 공간에 대한 인식, 디지털 후 보정에 대한 기술까지 익혀야 한다. 결국 사진은 공간표현이자 공감이다. 내 주변을 이해하는 공감능력을 키워나가는 것을 게을리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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