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 한가운데 위치한 고립무원의 섬나라인 아이슬란드는 표독스러울 정도로 고독한 풍경이다. 쉽게 마음을 열어주지 않을 것 같은 황량하고 시린 단단함 속에 감추어진 속살의 풍경은 가장 아픈 기억을 들쑤시듯 상처를 덧나게 하고 그리움에 사무치게 한다. 지구의 시작과 끝과 같은 풍경 속에서 존재에 대한 끊임없는 질문과 회의(懷疑)를 가져오게 하며 고백하게 한다.

글•사진 | 남인근 작가

 

 

 

기억이란 지나간 것을 정신에 남겨두는 것.

수없이 만들어지는 시간이 기억이 되어 남겨지는 곳.

 

흔적을 지우듯 살아가지만 우리는 망각의 삶을 살아갈 뿐 또 다른 기억을 채우고 다시 비우며 내게 주어진 시간을 소비한다. 기억의 무덤 속에 죽음처럼 누워있는 것은 또 다른 나이기도 하고 지나온 나이기도 하다. 기억의 풍경이란 끊임없이 내가 안고 가는 유의미한 기억 다발의 재구성으로 남겨지는 것이다. 사람에겐 각자의 기억이 만들어낸 기억의 풍경이 존재한다.

 

우리는 그것을 추억이라 부른다.

 

 

INTERVIEW

아홉 번이 넘게 아이슬란드를 찾았는데 작가님에게 아이슬란드는 어떤 곳인가요?

바다 한 가운데 떠있는 섬나라인 아이슬란드는 굉장히 고독한 풍경을 간직한 곳입니다. 시린 풍경은 쉽사리 그 모습을 내 보이지 않습니다. 지구의 시작과 끝을 품은 아이슬란드는 그래서 오랜 기다림을 요구합니다. 그것이 아홉 번이나 이 곳을 다시 찾아가게 만든 이유이기도 합니다.

 

촬영지를 선택하는 기준은 무엇인가요?

여행자는 동선을 계획하지만 사진가는 장소를 선택합니다. 시간에 쫓기기 보다는 여유를 가지고 천천히 주변을 둘러볼 수 있는 곳을 주로 선호합니다. 익숙함에서 점차 멀어져 가는 아련한 이야기들이 숨어 있는 곳을 찾아가 미로처럼 헤매고 돌아 다닙니다. 한번 찾아간 장소는 반드시 다시 찾아갑니다. 첫 만남의 설렘에서 한 발짝 벗어나면 보이지 않던 풍경들이 보이기 시작하니까요.

 

 

평소 어떤 카메라와 장비를 주로 사용하시나요?

대부분의 촬영은 캐논 EOS 1Ds Mark III를 사용합니다. 최근에는 핫셀블라드 X1D-50c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사진 작업을 할 때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점은 무엇인가요?

다른 누군가가 아닌 우선 나에게 사진다운가 하는 점을 생각합니다. 그래서 현란한 기교를 부리기 보다 그저 담담하게 저만의 감성과 색을 찾아갑니다. 내가 바라본 풍경의 감성을 제대로 담기 위해 사각의 틀을 벗어나 더 큰 상상의 그림을 그리는 작업을 계속 해나갑니다.

 

고독 / Solitude (2015)
고독 / Solitude (2015)

 

이번에 발간한 사진집  [아이슬란드: 기억이 머문 풍경]에는 주로 어떤 사진들이 담겨 있나요?

섬나라 아이슬란드의 다양한 풍경을 실었습니다. 단순히 제 개인적 심상을 넘어 지구의 시작과 끝을 품은 아이슬란드의 풍경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아이슬란드가 보여주는 경이로움과 인간은 대자연의 일부로서 이 땅을 공존하고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습니다.

 

물의 반영 / Reflections in the Water (2016)
물의 반영 / Reflections in the Water (2016)

 

촬영 기간 중 기억나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아이슬란드를 촬영하는 내내 변덕스러운 날씨를 자주 마주해야만 했습니다. 이럴 때는 기다림 외에는 할 수 있는 것이 거의 없습니다. 언젠가 아이슬란드를 여행하던 중 바다를 향해 절벽이 펼쳐진 디르흘레이에 도착했을 때, 갑자기 비가 쏟아졌습니다. 평소 같으면 궂은 비를 피하기에 급급했겠지만 제 입가에는 미소가 번졌습니다. 비가 그친 뒤에 떠오를 무지개를 상상했기 때문이지요. 잿빛 구름이 소용돌이치며 빠르게 흘러갔고 꿈결처럼 아름다운 무지개가 절벽부터 바다까지 다리를 놓았습니다. 바로 그 순간 머리보다 몸이 먼저 움직였습니다. 노출을 조절하고 셔터를 누르며 말로 다 표현 못할 희열을 느꼈습니다. 아이슬란드 디르흘레이의 무지개 사진에는 그 순간의 제 마음까지 담겨 있습니다. 이러한 경험을 거쳐 완성된 사진은 보는 이로 하여금 깊은 여운을 느끼게 합니다. 좋은 사진을 완성하는 데는 오랜 기다림이 필요합니다. 기다림 속에서 끊임없이 자연과 이야기하고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집니다. 그제서야 막막함마저 느껴지는 고립무원의 풍경은 그 속살을 드러내 보입니다. 사진가는 그 순간을 포착할 뿐입니다.

 

오로라 램프 / Aurora Lamp (2015)
오로라 램프 / Aurora Lamp (2015)

 

최근 사진 작업의 주제와 사진을 통해 전달하려는 궁극적인 메시지는 무엇인가요?

오랫동안 촬영해 왔던 사진 테마를 정리하고 있습니다. 최근 아이슬란드 사진을 정리하면서 사진 작업이란 때론 마침표가 아니라 쉼표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사진을 통해 말하려는 궁극적인 메시지는 ‘사진 담음’을 통한 자아를 위한 치유와 ‘사진 전함’을 통한 타인을 향한 위로입니다.

 

사진을 배우는 사람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조언이 있다면?

사진은 기다림을 통해 숙성된 직감이 풀어낸 은유의 이미지입니다. 사진 속에는 논리와 질서를 넘어서는 영감과 몰입의 세계가 펼쳐집니다. 스쳐 지나가는 순간을 영원의 한 순간으로 포착한 사진은 보는 이로 하여금 위로를 전해 줍니다. 그래서 사진가만의 직감을 통해 촬영된 사진은 오랜 여운을 남깁니다. 보이는 그대로의 이미지가 아닌 심상을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직감은 사진가의 오랜 경험을 통해 얻어집니다. 이런 의미에서 훌륭한 사진은 기회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는 노력에서 얻어지는 직감의 결과물입니다.

 

남인근 작가
남인근 작가

전세계를 여행하며 풍경에 감성을 담아내는 사진작가

국내에서는 <감성 풍경사진>으로 잘 알려졌다.

그의 사진은 자연의 신비와 경외를 통해 보는 이에게 희망과 위로를 건넨다.

[도서]

2017 사진집 / 아이슬란드: 기억이 머문 풍경

2016 더 가까이 나미비아: 인생의 사막을 건너는 당신에게

2015 사진집 / 위로

[전시]

2017 개인전 <아이슬란드:기억이 머문 풍경> / Gallery NAMIB / 서울

2016 개인전 <위로, Again> / 갤러리 루나, 제주

2015 개인전 <위로 (Consolation)> / 갤러리 이룸, 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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