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써 찬 바람을 막으려 여러 겹 싸맸던 옷들은 어느새 얇아지고, 옷 사이로 들어오는 바람이 살갗에 닿으면 기분이 좋아지는 계절, 봄이 왔습니다. 일은 손에 잡히지 않고, 멍하니 상상의 나래를 펼쳐 봅니다. 벚꽃 떨어지는 이른 저녁의 산책, 동그란 플라스틱 테이블에 둘러앉아 시시껄렁한 얘기를 나누며 마시는 차가운 맥주 한 잔, 홀로 어디론가 훌쩍 떠나는 여행.

몽상을 잠깐 뒤로하고 홀로 짧은 여행 계획을 세웠습니다. 찾은 곳은 흔하고 식상하지만 봄의 제주. 가벼운 미러리스 카메라 하나 목에 걸고 봄의 제주를 찾았습니다.

 

‘아, 제주’

해안도로를 따라 우연히 들른 해변의 모래사장 끝에 다다르면 바닥이 선명하게 보이는 맑은 바닷물이 발아래 보입니다. 고개를 들어 수평선으로 시선을 옮기면 에메랄드 빛깔에서 푸른 바다로, 그 위로 연한 파랑의 하늘이 그라데이션을 이루며 제주 바다가 눈앞에 시원하게 펼쳐집니다. 문득 ‘아, 진짜 제주도에 왔구나’하고 실감을 하며 에메랄드빛 푸른 바다를 바라봅니다.

 

‘노란 파도’

서귀포시 표선면 가시리에 위치한 녹산로는 벚꽃과 유채꽃이 도로 양옆으로 죽 늘어서 있어 봄날 많은 관광객이 찾는 명소입니다. 녹산로를 따라 달리니 도로 끝까지 노란 유채꽃이 이어져 있습니다. 유채꽃 뒤로 벚나무도 있었지만 아쉽게도 흩날리는 벚꽃잎은 볼 수 없었습니다.

도로 끝에 다다르자 노란 파도가 일렁이는 유채꽃밭이 넓게 펼쳐집니다. 가족과 연인 혹은 친구들끼리 유채꽃밭에서 사진을 찍으며 각자의 추억을 쌓아 갑니다.

 

 

‘봄날의 곰만큼’

"얼마만큼 좋아?"

"봄날의 곰만큼."

"봄날의 곰?" 하고 미도리가 또 얼굴을 들었다.

"그게 무슨 말이야, 봄날의 곰이라니?"

"봄날의 들판을 네가 혼자 거닐고 있으면 말이지, 저쪽에서 벨벳처럼 털이 부드럽고 눈이 또랑또랑한 귀여운 아기 곰이 다가오는 거야. 그리고 네게 이러는 거야. '안녕하세요, 아가씨. 나와 함께 뒹굴기 놀이 안 할래요?' 하고. 그래서 너와 아기 곰은 서로 부둥켜안고 클로버가 무성한 언덕을 데굴데굴 구르면서 온종일 노는 거야. 어때, 멋지지?"

"정말 멋져"

"그만큼 네가 좋아"

무라카미 하루키 <노르웨이의 숲> 中

제주도에는 368개의 오름이 존재합니다. 높고 낮은 봉우리들이 제주도 전역에 펼쳐서 있죠. 게스트 하우스 사장님의 추천으로 찾은 곳은 제주시 구좌읍에 위치한 안돌오름. 바람을 맞으며 쉬엄쉬엄 오름을 오릅니다. 정상에 오르니 ‘봄날의 곰만큼’ 좋은 초록빛의 제주 전경이, 옆으로는 야트막한 밧돌오름이 한눈에 들어옵니다.

‘안녕, 제주’

혼자 여행을 하면 불편한 점이 한둘이 아닙니다. 여행 코스와 숙소, 교통까지 혼자 다 해결해야 해 출발 전부터 스트레스로 다가오죠. 또 유명한 맛집은 왜 2인 이상부터인지, 밥 먹을 때도 고민이 됩니다. 여행으로 지친 몸을 이끌고 잠시 해안가 근처 카페에 들러 휴식을 합니다. 오가는 사람들을 구경하는 중 창가에 적힌 문구가 눈에 들어옵니다.

‘안녕, 제주’

혼자 여행은 역시 힘듭니다. 그럼에도 이런 생각을 합니다.

‘제주도에 오길 잘 했다’

 

글·사진 이상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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