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는 수려한 자연경관과 다양한 볼거리로 내국인은 물론 외국인도 자주 방문하는 한국의 대표 관광 명소다. 그러나 단순히 관광지로만 여기기엔 우리의 아픈 역사가 묻힌 장소이기도 하다. 70년 전제주도는 이념의 갈등으로 수많은 제주도 주민들이 희생당한 학살터였다제주 4.3은 무장대와 토벌대 간의 무력 충돌 중 토벌대의 진압 과정에서 약 2 5000~3만 명의 주민들이 희생된한국현대사에서 한국전쟁 다음으로 인명 피해가 있었던 사건이다. 70년이 지난 지금제주 4.3의 오늘을 걸어봤다.

찾은 곳은 제주시 봉개동에 위치한 제주 4.3평화공원출입구 왼편에 자리한 평화기념관에 입장했다처음 긴 터널을 지나 마주한 건 하얀 비석.

1947 3.1절 기념식에서 남한의 단독정부 수립을 반대하는 가두행진 중 구경하던 군중들에게 경찰이 총을 발포하면서 민간인 6명이 숨지는 사건이 발생했다유혈 진압에 반발해 3 10일부터 대부분 사업장이 총파업을 시작했다미군정은 총파업에 나선 2500여 명을 구금했고이 중 3명이 고문으로 사망해 도민들의 반발심을 자극했다. 1948 4 3일 새벽 2남로당 제주도당 총책 김달삼 등 350여 명의 무장대는 도내 24개 경찰지서 중 12개 지서를 일제히 공격했다. 4.3의 시작이다.

“언젠가 이 비에 제주 4.3의 이름을 새기고 일으켜 세우리라

백비(白碑). 하늘이 뚫려 있는 원형의 천창 아래 백비(비문 없는 비석)가 놓여 있다. 70년이 지난 지금 4.3 ‘사건’으로 불리며 제대로 된 이름을 갖지 못한 4.3의 역사와 비문이 없는 비석이 다를 바 없었다역사에 부합해 올바른 이름을 찾기 위한 정명(正名운동은 4.3을 위한 첫걸음이다.

 

제주 4.3 평화공원 내 전시장에 눈에 띄는 문구가 적혀 있다.

“바다로 둘러싸여 고립된 섬 제주도는 거대한 감옥이자 학살터였다.”

1948 11 17일 제주도계엄령 선포와 함께 중산간 마을을 초토화한 대대적인 강경 진압 작전이 펼쳐졌다이때 제주도 전역에서 무장대에 협조했다는 이유로 수많은 주민이 집단으로 죽임을 당했다. 1949 3월 선무를 원칙으로 한 진압 작전이 전개돼 한라산에 피신해 있던 사람들이 하산했고그해 6월 무장대는 사실상 궤멸했다제주 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위원회의 조사 보고에 따르면 신고된 희생자는 1 4000여 명잠정적 인명피해는 2 5000~3만 명으로 추정된다이 중 대다수는 제주도에 살고 있었던 주민이였다.

4.3 평화기념관 끝에 다다르면 통로를 따라 4.3 희생자들의 사진이 빼곡히 걸려있다조용히 희생자들의 넋을 기리며 기념관을 빠져나왔다.

 

기념관을 나와 제주 4.3 평화공원 길을 걸었다. 4.3 당시 아이를 끌어 안고 죽어가는 모습을 형상화한 희생자 변병생(호적명변병옥모녀의 조각상을 지나 다다른 곳은 행방불명인 표석 터다.

김익현, 김봉집김형주변계와안한봉오두생오도천강중반한치욱강계형... 수 많은 표석이 빼곡히 그 공간을 채우고 있다행방불명인 표석 터는 제주 4.3사건 희생자 중 시신을 찾지 못해 묘가 없는 행방불명인을 대상으로 개인 표석을 설치해 넋을 추모하는 공간이다.

행방불명인은 대부분 4.3사건 중에 체포돼 육지부 각 지역의 형무소에 수감된 뒤 돌아오지 못한 희생자들이다이들은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총살돼 암매장됐다그로 인해 유족과 그 후손들은 부모와 자식의 사진 없이 제사를 지내기도 하고 헛묘를 세우기도 했다행방불명인 표석은 현재 제주지역 2,012경인지역 554영남지역 449호남지역 390대전지역 270예비검속 220기 등 총 3,895기가 설치돼 있다

 

북촌 너븐숭이 4.3기념관에는 북촌 지역에서 희생된 300여 명을 촛불 하나가 불을 밝히며 위로하고 있다

북촌 너븐숭이 4.3기념관 일대는 1949 1 17북촌초등학교 서쪽 고갯길에서 무장대의 기습으로 군인 2명이 피살되자 이에 대한 보복으로 북촌마을에 들어온 토벌대에 의해 마을 주민 300여 명이 학살된 장소다. 2009년 위령제단과 북촌4.3기념관 및 위령탑이 설치됐으며 북촌리 사건을 소재로 한 현기영의 소설 ‘순이 삼촌의 문학비도 세워졌다.

너븐숭이 4.3기념관 인근에는 애기무덤이 있다북촌리 학살 사건 당시 어른들의 시신은 다른 곳으로 안장됐으나 어린아이들의 시신은 임시 매장한 상태 그대로 지금까지 남아있다그 곁엔 ‘뽑힌 무처럼 널브러져 있던’ 당시 북촌리 마을 주민의 시신을 형상화한순이 삼촌 문학비가 바닥에 널브러져 있다.

 

“여러분, 제주에 봄이 오고 있습니다

지난 4월 3 4.3 희생자 추념식에서 낭독한 문재인 대통령의 추념사 마지막 문장이다냉전 시대 상황 속 이념의 갈등으로 좌와 우를 가르며 수많은 희생자를 낳은 제주 4.3사건.

대한민국의 현재를 사는 우리는 여전히 4월의 트라우마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우리에게, 그리고 나와 너에게 봄이 오기를 희망한다.

글·사진 이상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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