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크로포서드 시스템은 카메라와 렌즈의 소형 경량화가 가능하기 때문에 미러리스의 콘셉트에 적합하다고 할 수 있다. 다만 센서의 크기탓에 배경흐림이 크게 나타나지 않는다는 약점이 있었다. 보이그랜더 녹턴17.5mm F0.95는 이러한 아쉬움을 해소해 줄 수 있는 렌즈다. 밝은 조리개 덕분에 풀 프레임 카메라로 촬영한 정도의 배경흐림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글ㆍ사진┃김범무 기자

MF 렌즈의 손맛은 흑백 사진의 감성과 잘 어울린다.

제품사양 <가격 : 172만원>
초점거리 17.5mm
밝기 F0.95
최소조리개 F16
렌즈구성 9군 13매
화각 64.6˚
조리개 날 수 10매
최단 촬영 거리 0.15m
최대 촬영 배율 1:4
직경×길이 63.4×80mm
필터 58mm
무게 540g
마운트 마이크로 포서드 마운트

우열을 가릴 수 없다


AF 렌즈가 MF 렌즈보다 우월할까? ‘그렇다’고 단정지어 대답할 수 없다. 물론 AF 렌즈의 편리함은 MF 렌즈와 비교하면 앞선다. 그러나 사진을 촬영하는 즐거움과 편리함은 등식이 성립하지 않기 때문에 그것 만으로 AF 렌즈가 우월하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지인 중에 여전히 오래된 수동 카메라와 필름을 고집하는 이가 있다. 그는 쉽고 빠르게 촬영하는 디지털 사진에는 관심이 없다. 필름을 사서 서른 여섯 장을 소중하게 촬영한 뒤 현상을 맡긴다.

그리고 그 필름을 스캔 해서 프린트 한다. 최근에는 전통적인 방법으로 인화하기가 매우 어렵기 때문에 필름을 디지털 파일로 스캔 하는 과정을 거칠 뿐 가능하다면 그는 인화에서도 아날로그의 손맛을 느끼고 싶어한다.

왜 이렇게 어려운 과정을 거치는 것일까? 기계식 다이얼을 돌려 노출을 설정하고, 포커스를 맞추는 것이 사진에 미치는 영향이 분명히 있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느끼는 감각과 감정은 그에게 있어 포기할 수 없는 부분이다.

조리개를 조이면 높은 해상도를 확인할 수 있다. 나무 직물 의자의 표면이 디테일하게 표현됐다.

피사체가 지나갈 만한 자리를 예상한다면 MF로도 역동적인 사진을 촬영할 수 있다.

밝은 조리개 덕분에 공간감 표현이 탁월하다. 보케도 아름답다.

디지털에서 아날로그의 향기를 느끼다


하지만 일반적인 사람이 이러한 과정을 즐기기에는 복잡하고 번거로운 부분이 너무 많다. 보이 그랜더 녹턴 17.5mm F0.95(Voigtlander Nokton 17.5mm F0.95, 이하 녹턴 17.5mm)는 디지털의 편리함과 아날로그의 손맛에서 타협점을 찾은 제품이라 할 수 있다.

녹턴 17.5mm는 100% 아날로그 방식으로 노출과 초점을 조절한다. 최근에는 MF 렌즈의 느낌을 살려 조리개 링과 포커스 링을 클래식한 분위기로 디자인한 렌즈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렌즈에서 아날로그 렌즈의 손맛을 그대로 느끼기는 어렵다. AF 렌즈로 MF 촬영을 하는 경우에는 포커스 링이 톱니로 맞물린 포커스 렌즈를 직접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모터에 신호를 보내 포커스 렌즈를 움직이기 때문이다. 조리개를 조작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이 렌즈로 포커스를 맞출 때는 묵직한 링을 돌리는 손맛을 그대로 느낄 수 있다. 포커스 링은 회전 범위가 180° 이상이다. 때문에 세밀한 초점 조절이 가능하다. 링에는 이른바 ‘꽃무늬’라고 불리는 독특한 패턴이 새겨져 그립이 뛰어나다.


최단 촬영거리가 짧기 때문에 작은 피사체를 가까이서 촬영할 수 있다.

촬영이 더 즐거워졌다

MF 렌즈이기 때문에 상황에 따른 순발력 있는 포커싱은 어려운 편이다. 그럴때에는 조리개를 조금 조여 팬 포커싱으로 촬영하면 된다. 이 때에는 상대적으로 심도가 깊은 마이크로 포서드 시스템의 특징이 장점으로 작용한다. 이미지 센서가 노출계의 역할도 겸하는 미러리스 시스템 덕분에, 노출 설정은 렌즈가 아날로그 방식이라 해도 자동으로 이뤄진다. 최신 모델은 MF에 대응하는 다양한 기능을 제공하기 때문에 초점을 맞추는 것도 편하다.
초점거리는 35mm 필름 환산 35mm 정도이지만, 실제 초점거리는 17.5mm에 불과하기 때문에 최단 촬영거리도 이에 맞춰 15cm 정도로 매우 짧다. 최소 초점거리까지 다가가면 렌즈가 피사체에 닿을 지경이다.
이 렌즈를 사용하면서 AF 렌즈로 촬영할 때보다 셔터를 더 많이 눌렀다. 손수 초점을 맞추는 번거로운 행동이 오히려 사진 촬영에 활기를 더했다. 촬영한 사진은 초점이 정확하지 않은 것 중에서도 마음에 드는 컷이 많았다. 사진의 좋고 나쁨은 수학처럼 숫자로 정확하게 표현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더 편하고, 더 빠르다고 해서 좋은 사진을 촬영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녹턴 17.5mm는 밝은 조리개에 관심이 집중될 수 있는 렌즈이지만, 그보다 더 큰 가치는 사진을 촬영하는 행위 자체를 즐겁게 만들어 준다는 것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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