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형 포맷과 인스탁스 카메라로 유명한 후지필름(Fujifilm)은 1988년 세계 최초로 센서가 받아들인 빛을 메모리 카드에 저장하는 형태의 디지털카메라 ‘후직스 DS-1P’를 개발한 브랜드다. 메모리 카드 한 장에 고작 열 장 남짓을 담을 수 있을 뿐이었지만, 대중에게 충격을 선사하며 현존 브랜드 중 가장 먼저 디지털카메라 시장을 선도했다. 2000년엔 APS-C 크롭 센서 DSLR을 출시했다. ‘후지필름 S1 Pro’이다. 자체 개발한 슈퍼 허니컴 CCD가 보여주는 아름다운 색채가 인상적인 모델이었다. 

CCD(Couple charged device)는 빛을 받아들이는 이미지 센서의 종류다. 처리 성능에 따라 촬영 결과물의 화질과 색이 천차만별이다. 타 브랜드와 달리 후지필름은 언제나 센서를 직접 개발하고 개발한 센서 전량을 자사 카메라에 사용한다. 그리고 이는 촬영자의 마음을 사로잡는 데 성공했다. 후지필름 카메라를 구매한 사람에게 왜 이 브랜드를 선택했는지 물어보면 열 중 여덟이 후지필름만의 색감과 화질을 거론할 정도다. 특히 미려한 초록색을 상징으로 꼽는다.
자체적이고 독점적인 이미지 센서 개발과 사용 외에 후지필름이 꼭 고집하는 것이 하나 더 있다. APS-C 포맷이다. 후지필름은 2017년, 또다시 최초 타이틀을 가져갔다. 중형 센서를 탑재한 미러리스 카메라 GFX 50S를 시장에 내놓은 것이다. 하지만 풀프레임 미러리스는 발표하지 않았다. GFX 50S가 약 5140만 화소에 무게 740g으로 당시 풀프레임 미러리스 카메라와 유사한 무게에도 불구하고 큰 센서로 압도적인 성능을 보여준 것을 고려하면 기술력이 부족해서는 아니었다. 다만 후지필름은 촬영자에게 근본적으로 ‘풀프레임 센서가 왜 필요한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풀프레임 센서가 APS-C보다 유리한 점은 큰 크기를 바탕으로 많은 빛을 받아들여 구현하는 높은 화질이다. 하지만, 그만큼 무게와 가격 면에서 손해를 본다. 후지필름은 애초에 초고화질이 필요한 이는 상업용 중형 포맷을 구매하면 된다고 말한다. 굳이 어정쩡한 센서 크기 확장으로 APS-C 포맷이 주는 기동성과 편리함, 가격의 밸런스를 무너뜨리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라는 뜻이다. 대신 후지필름은 지속적인 CCD 개발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색감의 APS-C 미러리스 카메라를 약속한다. 그 약속을 한 번 확인해보자. 설을 앞두고 더 많은 사람이 찾는 곳, 수려한 색을 지닌 건축물 경복궁에 후지필름 X-S10과 함께 다녀왔다.
글·사진 김예림 기자

 

F4.5, 1/60s, iSO100
F4.5, 1/60s, iSO100


X-S10은 2020년 11월 출시된 후지필름 X시리즈 최신형 중급기 모델이다. 2021년 1월 출시된 X-E4가 있기는 하지만, X-E4는 클래식하고 미니멀한 디자인을 최우선 가치로 두고 사진 촬영을 즐기는 이를 위해 특별히 고안된 기기인 만큼 이번 리뷰에선 논외로 두자. 

F4.5, 1/60s, iSO100
F4.5, 1/60s, iSO100

X-S10은 APS-C X-Trans CMOS 4 센서와 2,610만의 유효화소수를 지닌 렌즈교환식 미러리스 카메라다. 중급기종 최초로 5축 손떨림 보정 시스템을 탑재해 쾌적한 영상 촬영이 가능하다. 카메라를 처음 손에 쥐면 어딘지 모르게 아날로그 제품 같다는 인상을 받는다. 작고 단단한 모양새와 상단 핫슈에 숨은 사다리꼴 모양의 내장 플래시, 필름 리와인드 모양의 다이얼 때문일까. 레트로 라인업이 아닌데도 그러하다. 

F4.5, 1/60s, iSO100
F4.5, 1/60s, iSO100

조작법은 다른 디지털카메라와 다르지 않다. 카메라를 쥐었을 때 오른쪽 엄지가 닿는 부분의 휠로 셔터 스피드를, 검지가 닿는 부분의 휠로 F값을 결정하며 ISO는 상단 버튼을 눌러 조절한다. 특이한 점은 ISO 범위가 160-12800 (확장 80-51200)으로 100에서부터 시작하지 않는다는 것과 좌측 다이얼 레버를 당기면 플래시가 팝업된다는 것 정도다. 익숙하게 쓸 수 있지만, 색다른 결과물을 내어놓아 이젠 루틴이 되어버린 촬영에 활력을 불어넣어 준다.

클래식 크롬, F9, 1/125s, iSO100
클래식 크롬, F9, 1/125s, iSO100
벨비아, F8.0, 1/180s, iSO100
벨비아, F8.0, 1/180s, iSO100

특히 후지필름의 강점인 ‘필름 시뮬레이션’을 가득 담았다. 과거 필름 시절의 컬러를 재현한 일종의 필터 촬영으로 후보정 없이 원본 이미지를 개성 넘치게 찍을 수 있다. 스탠다드인 PROVIA와 써봐야 차이를 느낄 수 있다는 명품 필름 Velvia 이 외 ASTIA, 클래식 크롬, 아크로스, 시네마, 모노크롬 등이 있으며 톤 곡선도 변경할 수 있다. 



마치며

벨비아, F8.0, 1/180s, iSO100
벨비아, F8.0, 1/180s, iSO100

아름다움의 기준은 사람마다 다르지만, 많은 이가 후지필름으로 찍은 사진을 아름답다고 말하는 데에는 분명 이유가 있다. 특유의 색조가 절묘하게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기 때문일 것이다. 사용해본 결과 X-S10은 사용이 아주 편리하다거나 사진이 드라마틱하게 멋지게 찍히는 카메라는 아니었다. 본체가 너무 가벼워 렌즈 쪽으로 무게가 쏠리는 느낌도 받았다. 반대로 말하면 그만큼 가벼운 렌즈를 사용하면 더 편한 촬영이 가능하다는 뜻이다. 더하여 빛을 따뜻하게 표현하는 감각이 매력적이고 필름 시뮬레이션을 고민하고 셔터를 누르는 과정은 보정이 필요 없는 완성된 사진을 안겨줘 만족스러웠다. 

벨비아, F8.0, 1/180s, iSO100
벨비아, F8.0, 1/180s, iSO100

문득 X-S10이 번역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좋은 번역가는 단순히 직역하지 않는다. 화자가 전달하고자 하는 주제와 의도를 파악해 청자가 이해할 수 있도록 문장을 재창조하여 전달한다. 때로는 원문과 전혀 다른 문장이 되지만 청자를 감동시키며 ‘초월 번역’이라고 대중으로부터 인정받기도 한다. X-S10도 그러하다. 분명 사진가가 실제로 본 것과 100% 같은 빛과 색을 표현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촬영자가 하고자하는 말, 담고 싶은 색에 대해 잘 이해하고 이를 ‘사진’으로 번역해 내놓는다. 솜씨 좋은 번역가가 있다면 딱딱하고 어려운 이국의 소설이 베스트셀러가 되듯 X-S10을 사용하면 뻣뻣하고 투박한 솜씨의 아마추어 사진가도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사진을 찍을 수 있다. 보편적으로 모두에게 추천할 제품은 아니지만, 후지필름의 색을 다루는 철학과 솜씨가 마음에 든다면, 좋은 색을 표현하는 카메라가 사진 결과물을 어떻게 바꿔놓는지 느껴보고 싶다면 X-S10을 체험하길 권한다.

벨비아, F8.0, 1/180s, iSO100
벨비아, F8.0, 1/180s, iSO100
벨비아, F8.0, 1/180s, iSO100
벨비아, F8.0, 1/180s, iSO100

 

저작권자 © VDC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