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방산에서 송악산에 이르는 대한민국 대표 출사지

제주에서 사진을 하는 사람이면 동쪽으로는 성산일출봉, 서쪽으로는 산방산으로 일출에 미치다시피 새벽에 달리곤 한다. 그 한순간의 판단으로 인해 “대박이다”, “꽝이다”를 자주 듣곤 하였다. 이날도 하늘의 구름을 보니 동쪽은 별만 보이고, 서쪽은 저 멀리 구름이 낮게 깔리고 있었다. 동쪽의 기운을 마다하고 서쪽으로 운전대를 돌리고 한참을 가니 중간 중간에 안개가 조금씩 깔려 비가 올 듯한 날씨였으나, 한동안 태풍으로 인한 습한 기운 때문인지 모슬포에 다다르자 산방산 정상에 무언가 감싸있는 게 아니었던가? 부랴부랴 산방산을 지나 형제해안도로로 이어지는 사계해안에 이르자 여러 무리의 사진가들이 여러 포인트에서 산방산의 구름모자를 촬영하느라 자리를 잡고 여명과 일출을 기다리고 있었다. 산방산의 구름모자를 배경으로 할 것인가? 형제섬 사이로 떠오르는 일출을 촬영할 것인가? 판단이 서질 않았다. 사계리 마지막 방파제는 구름모자를 쓴 산방산과 여명을 촬영하는 사람들과 송악산 근처의 잠수함 대기실이 위치한 방파제는 형제섬 사이로 떠오르는 일출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어 그들 사이 갯바위에서 너무 밋밋하게 촬영을 했다. 어찌어찌 여명과 일출을 촬영을 했으나 무언가 아쉬움이 많이 남는 출사였다. 그래도 구름모자 쓴 산방산의 여운이 가시지 않아 용머리해안으로 자리를 옮겨 드론으로 산방산을 배경으로 다양하게 그날의 풍광을 담아보았다.

“옛날 오백장군이 한라산에서 사냥을 하며 살고 있었는데, 이들은 제주도를 만든 설문대할망의 아들들이었다. 하루는 오백장군의 맏형이 사냥이 잘 되지 않자 화가 난 나머지 허공에다 활시위를 당기며 분을 풀었다. 그런데 그 화살이 옥황상제의 옆구리를 건드리고 말았다. 화살에 찔린 옥황상제는 크게 노하여 홧김에 한라산 정상의 암봉을 뽑아 던졌다. 그러자 암봉을 뽑아낸 자리에 백록담 분화구가 생겨났고, 뽑아 던진 암봉은 사계리 마을 부근에 떨어져 산방산이 되었다.(제주문화예술재단)”는 전설이 있는 만큼 다양한 이야기 거리가 있고, 용머리 해안 또한 “용머리에는 중국 진시황 때의 고종달에 관한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진시황은 이웃나라에서 제왕 감이 태어나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다. 어느 날 제주도에 왕후지지(王侯之地)가 있어 제왕이 태어날지도 모른다는 소문을 들은 진시황은 풍수 술법이 능한 고종달을 곧바로 제주도로 파견하였다. 진시황의 명을 받은 고종달은 왕후지지로 소문난 산방산 일대를 조사하던 중 용머리를 찾아내어 먼저 용의 꼬리 부분을 한 칼로 자르고 이어서 잔등이 부분을 두 번 잘랐다. 그러자 바위에서 피가 흘러내리고 산방산이 신음소리를 내며 울었다고 한다. 이런 연유로 인하여 제주도에서는 왕이 나지 않는다고 전해진다(제주문화예술재단)”는 전설이 있어 많은 상상과 유추를 곁들린 출사를 기대하도 좋다.

 

여명이 깃드는 산방산과 한라산 풍광
여명이 깃드는 산방산과 한라산 풍광

 

서서히 붉게 타오른다.
서서히 붉게 타오른다.

 

드디어 떠오른 일출 풍광
드디어 떠오른 일출 풍광

 

구름모자 쓴 산방산
구름모자 쓴 산방산

 

하늘에서 내려다 본 산방산 전경
하늘에서 내려다 본 산방산 전경

 

멀리 한라산의 여운이 손을 뻣듯 가깝다.
멀리 한라산의 여운이 손을 뻣듯 가깝다.

 

구름 위를 날고 싶다.
구름 위를 날고 싶다.

 

구름 사이로 햇살이 투영된다.
구름 사이로 햇살이 투영된다.

 

한라산을 산방산 위로 가져다 본다.
한라산을 산방산 위로 가져다 본다.

 

산방산 일대가 한 눈에 보인다.
산방산 일대가 한 눈에 보인다.

 

용머리해안과 산방산을 동시에 담아본다.
용머리해안과 산방산을 동시에 담아본다.

 

제주도 전부를 한 눈에 담고 싶다.
제주도 전부를 한 눈에 담고 싶다.

 

산방산의 반영
산방산의 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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