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캐논은 RF400mm F2.8 L IS USM을 출시했다. 흔히 대포카메라라고 부르는 사양의 초망원 렌즈로 경량화보다는 EOS R 시리즈의 다소 한정적인 렌즈 라인업을 극복하는 데 초점을 맞춘 제품이다. 최근 시장은 ‘가볍고 작다’라는 흐름에 맞춰 초망원 단렌즈보단 줌영역을 넓히고 크기와 무게를 줄인 망원 렌즈가 지배하는 추세인지라 처음 RF400mm F2.8 L IS USM를 봤을 때는 순수하게 놀랐다. A4 잡지를 가뿐히 넘는 길이와 2L 생수 한 통을 넘는 무게는 막막했다. 이런 렌즈를 대포카메라라고 부르는구나, 하는 깨달음도 함께했다. 그만큼 기대도 차올랐다. 손아귀에 쏙 들어오는 작은 단렌즈에서도 뛰어난 광학 성능을 선보이는 캐논이 추구한 극강의 망원 화질이란 어떤 것일까. 아쉽게도 염두에 두었던 장소들(각종 스포츠 경기장과 경마장 따위)이 코로나19로 관중을 받지 않아 그 한계의 일할이라도 발휘할 수 있는 장소를 찾았고, 부족하지만 서울어린이대공원에서 RF400mm F2.8 L IS USM가 보여주는 세상을 체험했다.
글·사진 김예림 기자



1973년 문을 열고 약 50년 동안 어린이를 위해 연중무휴 운영하는 서울어린이대공원은 입구에 7호선 어린이대공원 역이 있어 방문하기가 쉽고 무료입장이지만, 동물원·식물원·테마파크 등 시설이 다양해 사진을 찍기에 좋다. 방문한 날은 동물원을 중심으로 둘러보며 셔터를 눌렀는데 코로나19가 동물에 전염되는 것을 막기 위해 울타리를 보강하고 동물을 가까이서 보거나 만질 수 있는 곳은 대부분 폐쇄하여 모든 사진을 멀리서 울타리가 걸리지 않게끔 구도를 조정하거나 색바랜 유리 너머로 촬영해야했다.

F5.6, 1/320s, iSO400 전체 사진의 1/3 크롭본이다.
F5.6, 1/320s, iSO400 전체 사진의 1/3 크롭본이다.

드물게 가림막과 울타리의 방해 없이 가까이서 찍을 수 있었던 건 사슴과 몇몇 소동물 정도였다. 오돌도돌한 뿔의 질감이나 거친 털 한올까지 모두 담았다. 주의문구에도 불구하고 몇몇 과일을 주는 관람객 탓에 사슴이 계속해서 고개를 흔들었지만, 고속 연속 촬영도 어렵지 않아 선명한 한 장을 얻었다. 곧 출시 예정인 EOS R3의 30fps 연속 촬영에도 완벽하게 대응하는 사양이라고 하니 당연한 결과였다. 

F5.6, 1/400s, iSO400
F5.6, 1/400s, iSO400

그 외엔 썩 좋지 않은 여건이라 아쉬웠지만, 오히려 렌즈의 성능을 확인하기엔 적절했다. RF400mm F2.8 L IS USM은 형석 렌즈 2매와 슈퍼 UD 렌즈를 배치했을 뿐더러 ASC(Air Sphere Coating)을 채용해 각종 색수차의 발생을 강력하게 억제한다. 덕분에 역광에서도 밝고 선명한 사진을 마음껏 촬영할 수 있었다. 심지어 편광필터가 없는 상황에서 더러운 유리창 너머의 피사체도 깔끔하게 담아냈다. 하지만, 하루내 렌즈를 마운트한 채로 다니면서 가장 크게 느낀 장점은 3가지의 IS모드를 지원하며 렌즈 경통에 모드를 선택할 수 있는 스위치가 있어 즉각적으로 적합한 손떨림방지 효과를 누릴 수 있다는 것과 손닿는 가장 가까운 곳에 AF모드 및 촬영 거리 범위를 조절할 수 있는 스위치를 배치했다는 점이었다. 종횡무진하는 동물을 촬영하는 것이니만큼 삼각대가 아닌 모노포드에 카메라를 결착해 사진을 찍었다. 무게만 모노포드가 대신 지탱할 뿐 거의 맨손으로 잡고 찍은 상태라 흔들림이 꽤 발생했는데도 불구하고 천 매가 넘는 사진 결과물에서 초점이 맞지 않거나 흔들린 사진을 거의 발견할 수 없었다.  

정지한 피사체를 촬영할 때는 IS 모드를 1로, 자이로 드롭처럼 수직·수평으로 움직이는 피사체엔 2, 새처럼 불규칙한 움직임을 촬영할 때는 3으로 설정한다.
정지한 피사체를 촬영할 때는 IS 모드를 1로, 자이로 드롭처럼 수직·수평으로 움직이는 피사체엔 2, 새처럼 불규칙한 움직임을 촬영할 때는 3으로 설정한다.

 


마치며
흡족한 촬영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 문들 올려다 본 하늘에는 낮달이 떴다. RF400mm F2.8 L IS USM을 받고 찍지 말아야지, 홀로 결심한 소재가 있다면 달이다. 망원렌즈를 받을 때마다 테스트 용도로 달을 촬영하는 데 그 반복된 루틴이 기자로서 직무유기로 느껴지는 탓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파란 하늘에 흐릿하게 뜬 달과 구름의 조화가 자못 아름다워 셔터를 눌렀다. 낮달은 처음이라 괜찮다고 변명을 주워 삼키며, 그마저도 거리 한복판에서 가방을 열고 렌즈를 다시 바디에 마운트하면서 모노포드까지 꺼내기는 귀찮아 삼각대 마운트를 쥐고 카메라를 치켜든 채 셔터를 눌렀다. 결과는 보시는 바대로다. 바들바들 떨면서 찍었지만, 선명하고 깔끔하다. 강력한 손떨림 보정 효과 덕이다. 기자의 적을 하나 꼽으라면 솟구치는 게으름인데 자꾸만 기자를 게으르게 만드는 좋은 기기가 등장하고 필자를 쉬운 촬영에 익숙하게 만들어 무서울 따름이다. 반면 극한 촬영 현장 속의 프로에게라면 참 든든한 동반자가 될 수 있는 제품으로 과연 프로라고 F400mm F2.8 L IS USM이 선사하는 편리함 속에서 나태하지 않을 수 있을까 재미있는 상상을 부추기는 렌즈였다.

F7.1, 1/500s, iSO100
F7.1, 1/500s, iSO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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